올해는 조선 민중이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통치에 맞서 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선언한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3·1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재단법인 선학원의 설립조사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다. 스님은 3·1운동을 주도하였을 뿐 아니라 독립선언서의 행동강령이라 할 공약삼장을 직접 추가해 넣었다. 선학원의 설립은 간악한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민족불교의 전통을 지켜내려는 노력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3·1운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3·1운동으로 수감된 만해 스님이 풀려나게 되자 스님을 중심으로 친일을 일삼던 사판계에 맞서고자 이판계의 수도원으로 설립된 것이 선학원이다. 출옥한 만해 스님은 선학원에 머물면서 선리참구와 항일운동, 불교활동, 계몽활동, 문학활동을 치열하게 전개했고, 선학원의 설립조사들은 만해 스님을 중심으로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정책에 맞서 한국선불교의 전통을 지켜냈다. 최근 일부 단체가 선학원 설립조사인 만해 스님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있다. 만해 스님 선양사업이 선학원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거나, 만해 스님을 ‘선학원에 얹혀살던 식객’이라고 폄훼하는 것 등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학원의 역사와 설립 정신을 왜곡해 이해한 데서 벌어진 일이다. “풍란화 매운 향기 님에게 견줄쏜가 / 이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더 빛날까 / 불토가 이외 없으니 혼아 돌아오소서.” 위당 정인보가 만해 스님을 추모하며 지은 시조이다. 일제의 간악한 탄압에도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정진해간 만해 스님은 선학원의 자랑이자 우리 민족의 사표(師表)이다. 스님의 생애와 사상, 수행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재단법인 선학원 구성원의 도리이자 책임이다.
부처님 가르침 중에 열반에 이르는 여덟 가지 길이 있다.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인데, 세 번째가 바른 말〔正語〕이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고,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말이 오가는 현대에서 바르게 말하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전하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때로는 남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칼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말은 때로 마음에 죽음보다 깊은 상처를 낸다. 보이지 않는 말이 날카로운 칼보다 무서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입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깨나니, 악한 말 때문에 사나운 마음을 일으켜 온갖 죄를 늘임으로써, 모든 재앙을 낳게 되는 것”(《제법집요경》)이라고 타이르신 것이다.
수행자들은 여름과 겨울에는 안거를 하고, 봄과 가을에는 두타행, 즉 만행을 한다. 안거를 할 때나 만행을 할 때 수행자들이 꼭 갖추어야 할 필요한 물건을 도구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도구라는 말이 일을 할 때 쓰는 연장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도구의 본래 의미는 도道,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갖추는 것을 말하는 불교용어이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오직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시며, 일체중생의 안목을 맑게 하시며, 일체중생의 온갖 장애를 끊게 하기 위해 출현하시니라.(大法炬陀羅尼經) 부처님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셨다. 젊은 시절 왕자로서 안락한 생활을 누렸으나, 인간의 노, 병, 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괴로움과 죽음을 뛰어 넘는 열반의 경지를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출가 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등불은 한 줄기 빛이자 희망이다. 절망의 끝에서 들어 올린 등불은 찬란한 희망을 품게 하고 나아갈 의지를 돋우며 헤쳐 갈 길을 밝혀준다. 등불은 자신을 태워 빛을 낸다. 그 빛은 세상을 비추고, 어둠이라는 절망에 갇힌 이들을 광명의 세상, 희망의 세계로 이끌어 낸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한국불교의 등불이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2015년 12월 말 현재 249만 명가량이다. 전체 인구의 4.8%, 국민 20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라는 이야기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국가 차원의 정책과 지원도 확대돼 장애인의 생활환경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경우가 많다. 경전에는 장
북한의 핵 개발과 한·미 두 나라의 강경 대북정책으로 긴장감이 감돌던 한반도에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평화와 화해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남북이 개막식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합의하면서 평창 동계 올림픽은 적대 관계에서 나아가 화해와 공생의 관계가 구현되는 대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그리스인은 올림픽
올 한 해 한국사회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촛불 혁명’이 될 것 같다. 지난겨울 광화문광장과 전국 곳곳을 촛불로 밝힌 국민은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며 국민주권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돌아보면 촛불 혁명은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측근의 이익 추구나 생각이 다른 이 탄압 등에 사사로이 쓰면서 비롯됐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참나’를 찾자는 말은 현대인의 방황과 갈등에 대한 지표로 제시되는 구호다. 거짓된 내 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진짜 나’를 찾아 희망과 행복을 일구자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진짜 나’를 찾으라는 가르침은 불교의 근본 주제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루벨라 지방으로 전
인간의 경제행위에는 윤리가 존재한다. 경제윤리의 근본은 분배에 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수행자들에겐 “일체의 생산 활동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셨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출가 수행자가 노동이나 생산 행위에 종사함으로써 물질적 욕구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가자들에겐 올바른 직업윤리로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권장하셨다. 《심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가 아잔브람 스님이 한국을 다녀갔을 때 불교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특별히 용서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남아공에서 있었던 ‘용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아공의 한 여성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남편을 고문하고 살해한 남자를 용서했다는 내용이다. 남자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를 것으로 알았던 대중
불교에선 의혹심의 반대말이 결정심(決定心)이다. 결정심은 의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정법(正法=진리)을 확고히 믿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결정심은 불자가 갖춰야 할 신행조건의 하나로 열거되고 있다. 정법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못한다면 실천행이 뒤따를 수 없을뿐더러 삼보에 대한 예경(禮敬)을 기대하기 어렵다.
요즘 우리 사회는 ‘참된 스승이 없다’고 한다. 위기와 갈등이 깊어지는데 이를 풀어줄 어른이 없다는 지적이다. 부처님께서는 《숫타니파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존경받아야 한다. 배움이 깊은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라. 그러면 그는 너에게 마음을 다하여 길을 가르쳐 보일 것이다. 생각이
부처님이 코살라의 순타리카 강가에 있는 명상의 숲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이 강가에 사는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순타리카 강가에 들어가 목욕을 하자고 권했습니다.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강물에서 왜 목욕을 해야 하는지, 목욕을 하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바라문이 답했습니다. “사문이여, 순타리카 강은 구원의 강이요,
방일(放逸)은 산스크리트어로 쁘라마다(Pramāda)다. 선법(善法)을 닦지 않으려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부처님은 법을 성취하기 위해선 부지런히 갈고 닦을 것을 강조하셨다. 열반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씀도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였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담금질하며 억척스레 노력한
사람들은 누구나 심신이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편안한 삶은 경제적 풍요나 명예나 권력이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가진 것 없을지언정 마음이 편안하면 부러울 게 없습니다. 욕심과 성내는 마음, 어리석음을 여의게 되면 누구나 안락(安樂)한 경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잡아함경》에서는 안락한 마음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배척하는 행위는 증오와 적개심을 키울 뿐 평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증오보다는 이해를, 배척보단 포용을 우선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해와 포용은 분별심을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나보다 가진 게 적고 배움이 짧다고 해서 차별하는 마음을 내면 온당한 포용은 이루어질 수 없다. 모든 사람을 차별 않고 포용해야 한다는 뜻으
“나는 모든 것을 이긴 자요, 일체를 아는 사람. 나는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노라. 스스로 욕망을 파괴하여 자유를 얻었고 위없는 지혜를 성취하였거늘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랴. 나에게는 스승이 없고 천상에서나 지상에서나 견줄 자 없도다. 나는 이 세상의 성자요, 가장 높은 스승이며 진리를 깨달은 부처이니라. 모든 감정으로부터
내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처신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남을 위한 배려에 앞서 당장 자신만의 입장을 견지하기 급급하다. 그래서 끊임없는 분란과 갈등을 야기한다. 충분히 이해하고 대화로 풀 수 있는 작은 문제도 양보 없이 팽팽히 대치하다가 원망과 분심이 커져 결국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을 남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파트
일명 ‘김영란법’ 즉 이 지난달 말로 시행되었다. 이 법 시행의 입법취지는 우리 사회를 보다 청정하게 가꾸자는 것이다. 당대를 호령하는 지도자일지언정 옳지 못한 처신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은 패가망신하기 쉽다. 실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