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처신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남을 위한 배려에 앞서 당장 자신만의 입장을 견지하기 급급하다. 그래서 끊임없는 분란과 갈등을 야기한다. 충분히 이해하고 대화로 풀 수 있는 작은 문제도 양보 없이 팽팽히 대치하다가 원망과 분심이 커져 결국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을 남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칼을 휘두르고 주차시비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처님은 《잡아함경》 <영군특경>에서 “사람은 출생에 따라 천한 사람이 되거나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한 성자가 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은 신분과 지위의 여하를 떠나 천한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남을 앞세우는 배려심은 고결한 인품을 돋보이며 그 주변마저 널리 향기롭게 만든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서거정(1420~1488)이 쓴 《필원잡기(筆苑雜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승 하정 유관(1346~1433)은 흥인문 밖의 작은 초가에서 살았는데 비오는 날이면 비가 새서 우산을 받아야 했다. 그는 이런 딱한 자기 사정은 에둘러 외면한 채 부인에게 “우산도 없는 집에서는 어떻게들 살지”라고 능청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하루는 임금이 그의 집에 갔다가 울타리가 없는 것을 보고 선공관에게 말해서 몰래 울타리를 둘러주라 일렀다. 유관이 청렴하여 사양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뒤에 아들 계문이 집을 자못 높다랗게 짓자 당장 헐어 고쳐 짓게 했다. 집 없고 헐벗은 사람들한테 죄가 된다는 이유였다.

이로부터 100년 뒤 병조판서를 지내던 이희검(1516~1579)이 유관의 옛집을 짚으로 이엉을 잇는 등 소박하게 고쳐 살았다. 사람들이 너무 소박하고 누추하다고 말하자 이희검은 “그래도 우산에다 비하면 너무 사치스럽지 않은가?”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탄복했다.

이웃과 어울릴 줄 아는 배려심은 이렇게 아름다운 법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자.

법진 스님 | 본지 발행인·(재)선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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