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가 아잔브람 스님이 한국을 다녀갔을 때 불교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특별히 용서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남아공에서 있었던 ‘용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아공의 한 여성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남편을 고문하고 살해한 남자를 용서했다는 내용이다. 남자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를 것으로 알았던 대중들은 오히려 포옹하며 용서하는 그 여성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그의 교육에세이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에서 용서에 대해 언급했다. 도 장관은 이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마음이 온유해지고 다른 사람을 너그러이 대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용서이고 다른 이에 대한 용서가 아닐까요?”

용서란 참으로 아름다운 행위다. 지혜와 경륜과 너그러운 포용력이 없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고결한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옛말에 이르길 “아무리 어리석을지라도 남을 책망하는 데는 밝고, 아무리 총명할지라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는 어둡다[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고 했다.

영국의 불교학자 리스 데이비스는 “붓다가 다른 스승들과 다른 점은 그의 심원한 열정과 만민에 대한 박애정신이다.”고 했다. 부처님의 정신은 중생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무한한 사랑에 있다는 말이다. 지극한 연민과 무한한 사랑은 용서와 통한다.

경전에 나오는 살인마 ‘앙굴리 마라’도 부처님에겐 용서의 대상이었다. 용서는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에 대해 한없이 사랑을 베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실천과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사회 속에서 실천될 때 세상을 변하게 하는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감동이 없다. 불교는 용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종교다.

법진 스님 |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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