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대장경 마쳐야 세상 하직하겠다” “스님이 동국역경원 부원장직에 계셨을 때 10년 동안 지각이나 결근 한 번 안하고 출근했습니다. 스님 생신이라고 신도들이 보시한 돈을 전부 역경원 후원금으로 주시기도 했습니다.”(최철환 동국역경원 편집부장) 스님의 역경에 대한 원력은 남달랐다. 한글대장경이 완간될 수 있었던 것
근현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석주 스님을 학문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석주정일문도회(대표 월호 스님)와 한국불교선리연구원(연구원장 법진 스님)이 개최하는 학술회의가 4월 8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석주 스님의 생애와 사상ㆍ교육ㆍ포교ㆍ종단개혁ㆍ근현대 한국불교 등 5개 주제로 나누어 진행되는 학술회의는 송운 스님(보문사 주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날(5월 12일)을 앞두고 24일 청계천에 한지로 만든 농악 연주자모형과 연등이 설치돼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청계천 주변에 걸린 연등에 불이 밝혀지는 날 불자들은 “올해 연등축제의 쾌거”라며 한마음으로 기뻐했습니다, 옛날처럼 복원되어 이름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하 선리연구원’)이 오는 5월 20일 제2회 학술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이번 학술상에는 문을식 박사(원광대 강사)가 ‘용수의 『십주비바사론』에 나타난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의 계에 대한 연구’로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와 함께 공만식 박사(동국대
‘수행 정진으로 세상을 향기롭게’를 슬로건으로 삼은 불기2552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았다. 지난 4월 21일 오후 7시 시청 앞 봉축장엄물 점등을 기점으로 곳곳에서 마련되는 ‘부처님 오신날’ 행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열릴까? 5월 12일까지 펼쳐지는 풍성한 봉축문화행사의 주요일정을 살펴본다. 서울에서는 올해 부처
요즘 이런 물음을 자꾸 갖는다. “나는 과연 남 앞에서 ‘불자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전에는 가끔 생각나곤 하던 것이었는데 요즘 들어 잦아졌다. 왜 그런가 따져 보니 그 동안은 내가 제법 불교를 아는 축에 든다고 여겼던 것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데 그 연유가 있었다. 또 하나는 게으름을 피우고 정
우리 불교의 전통에서 이상적인 치자(治者)는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형상화되어 왔다. 전륜성왕은 글자 그대로 수레바퀴를 굴려 세상을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의미한다. 여기서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고, 동시에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통일하여 평화롭고 풍요로운 정치를 이루겠다는 의미도 될
“내일 당신 곁에 진정 부처님이 오신다는 귀중한 정보를 입수한다면…?”라는 질문을 드려보니 열에 아홉은 자신이 이루어야할 소원을 잔뜩 나열하였습니다. 오신 부처님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더욱이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태어나신 생일날 부처님을 예경 찬탄하고 장엄하기 위해 도량에 등을 달고 향화로 장엄하는 줄 알았더니 와서 보니
수계 지계는 필수 자신이 불교신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오계를 받는 일은 불자가 갖춰야할 첫째 요건으로 꼽힌다. 수계는 불·법·승 삼보를 진실로 믿고 따르겠다는 다짐이요 서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를 받는 시점이야말로 불교에 들어서는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계를 받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지계다. 계를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이 참불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불자적 삶을 살고 있다. 생생한 부처님의 법문을 멀리하고 나만의 복락을 구하거나 불설(佛說)을 가장한 비불교에 현혹되는 예가 허다하다. 참불자는 어떻게 되는 것이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에서 ‘불
불자란 부처님에 귀의한 중생으로서 삶 자체를 불세계에 맡긴 이이다. 귀의란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모든 것을 버리고 큰 어른[大雄], 곧 부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이는 곧 자신도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인물, 그릇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절에서는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는 복(福)이란 부처가 되는 공부에 있어 잘
사월초파일은 부처님이 오신 날입니다. 니련선하에 빗소리가 떠나간 밤, 둥근달이 뜨듯 부처님은 그렇게 오셨습니다. 캄캄한 밤에 불이 켜지듯, 부처님은 가릴 수 없는 지혜를 가지시고,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알고 찾아오셨습니다. 누군들 위없는 당신의 빛과 소리를 덮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온 누리에 가득한 법신, 우리들이 천리만리 밖에 도망가도 천년만
보시는 돈이 있는 사람도 하고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시란 결코 재보시만 아니라 자기가 가진 능력껏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생각해보면 그 분은 평생 신도들의 보시에 의존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셨지만 한 편으로 평생 법을 중생들에게 보시한 분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할 바를
보시(布施)란 인도 말인 ‘다나’를 의역한 말이다. 다나는 본래 희생 제의를 마치고 나서 신에게 바쳤던 제물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나누어 가졌던 데서 비롯되었으며, 후대에는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 일체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보시라는 말은 전자 본(本) 팔만대장경을 통해서 단순 검색을 해도 수만 건이 훌
베풀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끊은 뒤에 베풂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시가 일상화 된 세상, 그곳이야말로 보살이 사는 정토일 것이다.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은 정토가 될 수 없다. 우리 사는 세상은 어떤가? 욕망의 구렁텅이가 존재하기도 하고 연꽃 같은 보살의 삶이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베풀며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
마블링이 기가 막힌 꽃등심이나 쫄깃한 가죽과 고소한 곱이 뒤엉켜 맛을 내는 곱창에 열광하는 ‘식도락가’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채식인’이란 단지 음식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하나 둘씩 들어 온 외국 환경·생태학자의 연구를 접하면서부터 채식을 선
며칠 전 이제하의 『초식(草食)』, 김이태의 『식성』, 오수연의 『부엌』을 다시 꺼내 봤다. 『식성』의 주인공은 거식증에 걸린 여자이다. 그녀가 거식증에 걸린 것은 애인의 정액을 받아먹은 후부터이다. 화자에게 토악질을 유발하는 것은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세상 그 자체인 것이다. 『부엌』은 연작 장편소설이다 보니 동일한 제재와 주제를 가져가면서도 단편인 『식성
대승불교에서는 음식을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올바른 삶을 향한 일, 즉 수행을 하기 위한 약으로 바라본다. 아울러 음식을 공양이라고 통칭하는 것처럼 공덕을 쌓기 위해서 먹는 것이다. 음식의 맛을 탐하거나 즐기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고 도과를 이루기 위한 수행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곧 나와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
1995년과 2005년 두 조사의 차이를 살펴보면 불교 인구는 40만 명가량 증가하였고, 개신교는 14만 명가량 감소하여 늘어나고 줄어든 수치가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천주교는 220만 가량 증가하여 천주교 인구가 ‘폭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조사 결과를 연령별로 살펴볼 경우, 천주교는 각 연령별로 고루 분포하고 있고 개신교는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라고 얘기하지만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절에서 어린이가 법회를 보고 어린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기 때문이다. 2007년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실시한 어린이법회 현황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법회에 참가하는 어린이는 6000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약 100만 명 정도의 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