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布施)란 인도 말인 ‘다나’를 의역한 말이다. 다나는 본래 희생 제의를 마치고 나서 신에게 바쳤던 제물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나누어 가졌던 데서 비롯되었으며, 후대에는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 일체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보시라는 말은 전자 본(本) 팔만대장경을 통해서 단순 검색을 해도 수만 건이 훌쩍 넘을 만큼 불교의 핵심 용어이자 대표 용어이다. 물론 다나를 음역한 다양한 단어들, 예컨대 단나(檀那), 타나(?那), 단(檀), 단시(檀施), 시(施) 등을 검색 수에 포함한다면, 그야말로 붓다 내지 불(佛)이라는 말을 제외한 최대 빈출어가 보시가 될 것으로 추정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왜 이렇게 보시를 강조하고 있는가?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도의 토양에 뿌리 내리고 있는 슈라마나적 문화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

보시의 뿌리는 슈라마나 전통
슈라마나 전통이란 간략히 말해서 불교의 모태가 되는 문화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고해(苦海)일 따름이고, 욕망 때문에 윤회의 세계를 헤어나지 못한다는 존재론에 입각한 슈라마나적 이상(理想)은 한시바삐 고해를 벗어나 해탈의 세계에 도달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든 현존재 상태에서 욕망을 떠난 최선의 상태를 고안해 냈는데 그것이 슈라마나, 즉 출가 수행자로 금생을 마치는 것이었다.
슈라마나는 음역하여 사문이라 하는데, 가우타마 붓다 스스로도 ‘사문 구담’(沙門 瞿曇)이라고 불렀던 것은 경전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구담은 가우타마의 음역어이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기 전부터 열반에 들기까지 슈라마나 전통에 따라 출가하여 수행자로서 일생을 보냈다. 우리는 붓다가 출가자로서 일생을 보내는 동안 재가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했었던 사실은 경전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그에게 귀의하는 제자들이 차츰 늘어나서 교단이 거대해졌어도 그 구성 기반은, 남녀 출가자와 남녀 재가자로 이루어진 사부(四部) 대중이었다. 이러한 교단 구성은 기존의 슈라마나 전통에서 사회의 인적 구성을 크게 재가자와 출가자로 나누어 놓았던 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슈라마나 전통에서는 사회 구성원을 재가와 출가라는 이원으로 대별한 뒤에 양자 간의 관계를 보시의 수수(授受) 관계, 즉 보시를 주고받는 관계로 정립시켜 놓았던 것이 큰 특징이었다.
▲ 붓다에게 우유죽을 바치는 수자타.
그런데 슈라마나 전통 사회에서 보시를 매개로 하여 재가자와 출가자 집단이 상호 의존 관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양자 간의 관계가 항상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에게 보시를 줄 수 없는 상황과 그럴 때 붓다와 교단의 응대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정황도 경률 문헌에 적잖이 등장한다.
예컨대 『비나야』제 8권에는 붓다가 499명의 비구들과 함께 비라연(?羅然)에서 여름 안거를 보낼 때의 이야기기 실려 있다.

그 때 비구들은 걸식을 나가도 음식을 얻기 힘들었다. 그러자 마우드갈리야야나는 붓다에게 신통력을 쓰자고 간청했다.
수미산 북쪽의 웃타라쿠루(uttarakuru)에 절로 자라나는 멥쌀[粳米]과 33천에 사는 신들이 먹는 감로를 가져다가 비구들에게 먹이자고 하였다.
그러나 붓다는 “너에게 그런 신통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 모든 비구들에게는 숙세의 인연이 있으니 가져온다 한들 어디에 둘 것인가?”라고 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비라연에서 말을 기르는 사람이 걸식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비구들을 보고서 말했다.
“이곳에는 곡식이 귀해서 걸식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말을 먹이는 사료[飼料 ; 馬麥]가 있으니 필요하시면 그것이라도 드리겠습니다.”
비구들이 말했다.
“세존께서 허락하지 않았으나, 말 사료를 먹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구들이 붓다에게 가서 말씀드리자 말 사료라도 먹으라고 했다.
그 때 마침 말이 500마리였고 비구들 수가 499명이었다. 말은 하루에 사료 한 말을 먹고, 마부는 한 되를 먹었는데, 그것을 각각 반으로 나누어서 붓다와 비구들에게 보시했다.

『비나야』에 따르면 비라연에 머물던 안거 중 석 달 동안을 그렇게 말먹이를 나누어 먹고 지냈다고 한다. 이것은 단편적인 한 예일 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에서는 가뭄이나 기근 등의 재난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 빈발했었고, 그럴 적마다 붓다와 승단이 얼마나 곤란에 처했던가를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 때마다 이어지는 선한 재가자의 자기 희생적인 고귀한 보시를 기반으로 승단이 유지될 수 있었다.

주고받는 이의 마음 헤아리기
경전에서 누누이 말하고 있듯이 보시의 제일 공덕은 요익(饒益) 중생이다. 유정(有情) 중생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 보시 행위라면,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득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보시 중 제일은 음식 공양일 것이다.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기대어서 보시를 받았던 제일은 아무래도 생존에 가장 필요한 먹을거리를 꼽아야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음식 공양만 보시에 해당하지 않고 유형, 무형 온갖 형태로 다른 존재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모두 보시라는 이름으로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보시행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점은 보시의 물품이라기보다는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였다. 불교를 포함하여 자이나교, 힌두교도 모두 보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상으로 강조했던 것은 보시하는 사람의 순수한 마음 상태였다. 인도인들은 보시 그 자체보다도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그 과보의 선악이 결정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단 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참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보시가 이루어졌다고 하자. 그래도 그토록 청정한 보시가 있기 전에 먼저 보시하는 자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시를 받는 이는 잘 헤아려야 한다. 이 점은 보시, 즉 다나의 말뜻에 ‘포기’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선물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선물은 어떤 식으로든 내 것의 일부를 할애하고서 내놓게 되는 법이다.
이쯤 살고 보니,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평생토록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주고만 살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받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은 대체로 주는 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외로 보고 느끼게 된다.
사실, 주는 사람은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터이니, 상대방이 주면서 포기한 것이 무얼까 헤아리지 않아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주든지 받든지 그 상대방의 마음을 진실로 알아준다는 것도 아름다운 자비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그나마 남아 있었던 보시 전통이 갈수록 희박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만 알고 상대를 헤아리지 않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며, 이것은 당연한 추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출가자를 전제하는 한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보시하고 출가자는 그 답으로서 진리의 법음을 보시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붓다 이래로 변함없이 유지되어 오고 있는 불교적 사회 질서, 즉 보시 원리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불자들 스스로가 뭇 생명들에게 두루 차별 없이 베푸는 보시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불교가 뿌리를 둔 슈라마나적 도덕 원리이고, 붓다가 강조했던 최상의 선행이기 때문이다.

김미숙/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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