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신 곁에 진정 부처님이 오신다는 귀중한 정보를 입수한다면…?”라는 질문을 드려보니 열에 아홉은 자신이 이루어야할 소원을 잔뜩 나열하였습니다. 오신 부처님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더욱이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태어나신 생일날 부처님을 예경 찬탄하고 장엄하기 위해 도량에 등을 달고 향화로 장엄하는 줄 알았더니 와서 보니 손님맞이에는 뜻이 없고 손님에게 부탁할 소원만 가득 놓여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아마 대자대비하신 부처님도 중생을 위해 하염없는 원생(願生)으로 오시었지만 섭섭할 것입니다. 또한 삼보의 하나로써 부처님처럼 신도들에게 예배를 받으면서 제 역할을 못한 스님들을 크게 나무라고 실망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중생들은 참 요령도 없고 어리석은 것 같아요. 이냥 하는 향?화?등을 오시는 손님을 위해 한다면 선물을 받아도 곱으로 받을 텐데 말이죠. 안목도 없고 여유가 적은 불안한 업생(業生) 중생들의 한계이긴 하지만,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가, 남을 위해서 하는 가, 이것은 한 생각 차이입니다.
이 한 생각은 쉽기로 치면 손바닥 뒤집기지만, 어렵기로 보면 바닷물을 다 마시는 만큼 한없이 어렵습니다. 사실은 한 점 같기도 하고, 순간 같은 실체도 없는 한 생각이지만 이 한 생각 안에 중생들의 함이 없는 세월과 업이 녹아 있고 잉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나 ‘무엇이 불교적인가?’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이 한 생각을 말하고, 참 불자란 이 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지어가는 불자라 생각합니다.
첫째 ‘세상엔 공짜가 없다.’, ‘세상엔 인과 앞에 예외 없다.’라는 확실한 한 생각입니다. 중생들은 심력이 얕아서 인과에 매합니다. 이로 인해 불자들은 영험불교에 매달리고 인연불교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 합니다. 사바는 인토(忍土)입니다. 이는 자제하고 인내해야만 무엇인가 이루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식물도 굳히기를 거쳐야 건실하고, 매화도 뼛속을 에이는 추위를 겪어야 향기가 코를 찌르는 법입니다.
예전에 일타 큰스님을 10년간 시봉해온 스님이 큰스님께 말했습니다. “전생에 제가 큰스님께 빚을 많이 졌나 봅니다.” “아니네, 너는 지금 인연 복을 짓고 있네. 그래서 다음 생에는 내가 너를 시봉하지 않겠어!” 불자들이 ‘업타령’ ‘복타령’을 제일 많이 하지요. 업과 복은 한 생각 차이입니다.
둘째는 ‘세상엔 씨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한 생각입니다. 불자들은 모든 것을 분별하고 집착해서 씨가 따로 있고 그 그릇도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기복불교에 의지하고 수행불교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하지만 좋은 입, 나쁜 입 따로 있나요. 사용하기 나름입니다. 돈, 권력, 지식, 건강도 마찬가지 입니다. 운전하기 나름입니다. 한 생각 돌이켜 먼저 부처님오심을 예경하고 봉축합시다.

관암 스님/불광선원장, 전 해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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