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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의 한 사찰에서 만난 불자는 “기와불사를 하면 복 많이 받는다며 얼마나 소매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지 할 수 없이 기와불사를 했다”며 불쾌함을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불교와 인연을 맺은 지 수 십년 된 불자나, 초심자나 ‘보시’하면 사찰의 건물을 새로 짓거나 보수 그리고 절에 돈을 내는 행위만을 떠올린다.
그렇다고 이것이 보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에서 보시의 의미와 공덕을 설하고 있는데, 자비심으로써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를 권하고 있다. 결국 보시는 집착 없는 마음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 보시는 곧 ‘나’를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불자들의 의식을 가장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사례가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적는 기와, 범종, 불보살상 조성 등의 불사다. 특히 삼천불, 1만 불 조성불사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풍토가 만연하다 보니 일부 불자의 경우 ‘나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보시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한탄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돈을 내는 행위를 보시의 전부로 여기는 풍토가 문제다.
부산 성불사 주지 성산 스님은 “보시는 지혜와 자비의 표현으로서 보시할 때는 아끼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하며 조건도 없어야 한다.”며 “잘못된 보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스님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님은 “보시는 사찰에서 받는 것만이 아니라 법문, 상담 등 불자들에게 베풀어주는 것도 보시다”고 덧붙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시’ 하면 불자들만이 행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스님들이 독경을 하거나 법문을 하는 것 그리고 불교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것도 훌륭한 보시다. 결국 보시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를 초월해 어떠한 상(相)에도 집착함이 없는 보살행이다.
『화엄경』에는 “보시는 젖을 먹여 키워준 어머니”『대품반야경』에는 “보시할 때에 자기를 붙잡지 않고, 받은 이를 붙잡지 않고 베푸는 물건을 붙잡지 않으며 또한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주변을 눈여겨보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음에도 적극적으로 보시행을 펼치는 불자들도 많다. 그리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합장주 비롯해 불서, 쌀, 약, 김장, 이불, 떡, 과일 등 다양하다. 심지어 군 장병 불자들을 위해 ‘차 한 잔 나누기 캠페인’을 벌여 보시하는 불자들도 있다.
또한 사찰의 행사를 돕는 것도 보시요.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보시이며, 법률상담, 의료서비스 등 자신의 전문직을 살려 봉사하는 것도 보시다. 사찰마당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것, 목마른 이에게 물 한잔 주는 것도 보시다.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등 남을 위해 베푸는 보시는 참불자의 길을 가는 신행의 첫걸음인 셈이다. 사섭법과 육바라밀의 첫째 덕목이 보시인 까닭은 보시 그 자체가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행이기 때문이다.
‘내 것’ 이라는 집착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는 보다 많은 내 것을 추구하게 된다. 그 욕망의 불길은 친구도 아내 혹은 남편도 태우는 것이다. 반대로 ‘네 것’이길 즐기는 사람은 늘 고요하고 즐겁다. 나 보다는 너를 먼저 생각하는 그 아름다운 여백의 삶에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꽃이 핀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의 경지는 단순히 베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베푼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조차 벗어나는 것이다. 『금강경』의 가르침이 바로 보시를 하되 보시를 한다는 생각도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무주상 보시라고 하거니와, 하노라는 드러냄 없이 보시를 함으로 그 공덕이 우주에 골고루 회향 되게 하라는 것이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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