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란 욕망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바로 쓰면 활인검이지만 잘못 쓰면 오히려 사람을 해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시주, 화주, 그리고 보시받는 교단이 모두 청정하여 시주자의 큰 뜻이 세상에 향기롭게 퍼져 나가게끔 교단이 역할할 때 더욱 많은 보시로 부처님의 큰 뜻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보시는 돈이 있는 사람도 하고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시란 결코 재보시만 아니라 자기가 가진 능력껏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생각해보면 그 분은 평생 신도들의 보시에 의존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셨지만 한 편으로 평생 법을 중생들에게 보시한 분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할 바를 다한다는 것 자체도 어쩌면 이미 보시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여기서 재보시를 크게 하신 분들을 다루어 보려는 것은 재물이란 욕망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과감히 그것을 보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불교 수행의 근본이 되는 욕망에서 해탈한 모습의 가장 상징적인 투영이기 때문이다.
이미 초기불전에는 기원정사를 기진한 급고독장자의 이야기, 모든 재산을 보시하고 불가에 귀의한 기녀 암바팔리의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우리나라에도 석굴암과 불국사를 세운 김대성의 전생이야기 등 많은 설화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와 동시대 혹은 조금 앞 시대의 우리와 현실과 가까운 재보시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려 한다.
가까운 시대의 재보시를 생각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분으로는 동국제강의 창업자인 고 장경호 거사를 들 수 있다. 구구히 그 분의 신행이력을 쓰는 것은 이 글에 맞지 않으므로 장경호 거사의 임종게를 소개해 본다.
“우주 만유는 현상계뿐 아니다. 변만법계중에 일부분이다. 자타가 분별없는 진법계(眞法界)에서 분쟁하는 것은 하루살이와 같다. 나는 20대에서부터 그 신념(信念)은 확고하였으니 아는 것으로 되는 것 아니다. 수소(修)를 하여 체득하여야 진인(眞人)이 되는 것이다.”
장경호 거사는 이미 20대에 법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였다. 그리고 세상살이 자체를 수행삼아 이 믿음을 실천하여 큰 부를 이루었다. 그가 임종할 때 불법진흥을 위해 쾌척보시한 돈의 금액이 30억 6천만원인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약 3,000억에 이르는 거금이다.
불교포교에 큰 역할을 하는 불교라디오방송이나 70년대 이후 한국 재가불교 교육의 메카라 할 대원정사는 다 장경호거사의 유지에 따라 이루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장경호거사의 불교교육에 대한 열정이 드러나는 소탈한 일화가 있다. 요즘은 나오지 않지만 불교잡지로 크게 호평을 받았던 대중불교의 전편집장인 김희균 선생은 이와 같이 술회하고 있다.
“1974년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저녁, 동국대 목정배 교수 강의시간으로 기억된다. 강의가 한참 진행되는데, 살짝 문이 열리더니 노인 한 분이 들어섰다. 워낙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는 바람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노인이 들어오시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키가 자그마하고 허름한 차림새의 노인은 나는 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천천히 교실 뒤편에 가 앉으셨다. 때마침 교수님의 질문이 학생들에게 떨어졌다. ‘도단학성(道斷學成)이 뭐지요? 이게 어디에 나오는 말입니까? 도단학성, 도단학성.’ 그날 강의는 그런 식의 질문이 많았다. 학기 초인 탓이었던지, 아니면 교수님의 밀어붙이는 강도가 커서였던지 대답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가 않았다. 누구에게 지목이 떨어질지 몰라 강의실 안에 약간의 긴장감이 돌던 어느 순간, ‘와 이리 대답을 못하노. 척척 대답을 해야제.’ 하는 투박한 음성이 들려왔다. 학생들의 대답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바로 이 음성의 주인공이 장경호 거사로 74년도 같으면 열반하기 한 해전인 76세에 이른 고령으로, 또 동국제강이라는 굴지의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바쁜 중에도 이와 같이 세심함을 보여준 점은 그의 불교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기인한 것은 물론이다.
가마니와 못을 팔던 대궁양행이라는 가게에서 시작한 동국제강은 이런 오너의 철저한 불교정신에 입각하여 70년대 중반에는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가는 기업이 되었으며 3대를 통하여 자손들이 재계에서 활동하는 명문가를 이루었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898호 에서는 동국제강의 욱일승천하는 발전상을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5년 연속 매출 신기록을 기록하고 있다. 2001년과 2006년을 비교하면 매출은 70% 성장, 당기 순이익은 1,327% 성장하는 성과를 보였다. 70년대와 90년대 1, 2차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를 거치며 사라져 갔던 수많은 민간 철강회사의 쇠락 속에서도 동국제강은 건재하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경기 변동 영향을 크게 받는 철강기업임에도 생존을 넘어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이러한 동국제강의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창업주 장경호회장의 철저한 불교정신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록 장경호거사와 같은 거금은 아니더라도 평생의 노고로 모은 모든 재산을 불교교육에 보시하신 분들이 여럿 계신데 그 중 한 분이 청신녀 조동성(법명: 연화성)보살이다. 조동성보살은 인재양성에 관심이 남다르셨던 구산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하여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신 퇴직금을 기금으로 1995년에 구산장학회를 설립하였다. 이 장학회는 1996년도 김방룡박사(현 충남대 교수), 김호성박사(현 동국대 교수), 고 이현옥박사(전 동국대 강사), 최연식박사(현 목포대 교수)를 제1기 수혜자로 2007년도 제 12기까지 매 년 박사 3-4인에게 200만원, 석사 2-3인에게 100만원의 논문장학금을 수여해오고 있다. 제1기 장학금수혜자의 면면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구산장학회 장학생들은 불교학계의 동량으로 성장하여 학계를 중심으로 불교계 곳곳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특히나 조동성 보살의 보시를 소개하는 것은 그의 보시가 그가 평생의 노고로 얻은 재물인 퇴직금이라는 것이다. 조동성 보살이 남보다 많은 재산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장학회를 만든 것이 아니다. 부군이신 구산장학회의 이사장인 이범세거사는 대령으로 예편한 예비역 군인으로 민족정신과 봉사정신이 투철한 분으로 연로함으로 인한 지병에도 아랑곳없이 구산장학회를 거친 장학생들이 하나로 모여 불교계의 큰 동량이 되어주길 늘 발원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 많이 볼 수 있는 두 노부부가 이와 같은 뜻을 세우신 것은 참으로 불자의 큰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서울 길상사의 터를 보시한 김영한(법명: 길상화)보살, 서울 법련사의 터를 보시한 김부전(법련화)보살의 보시도 근년의 큰 보시의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라는 것은 재물의 보시가 위의 장경호거사와 조동성보살에서 보듯이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용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대개 전통적으로 불상의 건립 등에는 많은 보시가 있다. 이는 아마도 기복적인 측면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물론이 역시도 지극한 신앙심을 나타내는 보시로 찬탄할 만하지만 차제에 교육불사와 복지불사 등에 좀 더 많은 보시금이 사용되고 뜻있는 보시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또 2003년도에 모 사찰의 스님들의 노후복지 시설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이남기 전 공정위원장이 모 그룹의 사장에게 화주를 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에서 보듯이 비록 그 뜻이 높고 일체의 사적인 부정이 있지 않다 해도 혹여 대중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 재물이란 욕망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바로 쓰면 활인검이지만 잘못 쓰면 오히려 사람을 해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시주, 화주, 그리고 보시받는 교단이 모두 청정하여 시주자의 큰 뜻이 세상에 향기롭게 퍼져 나가게끔 교단이 역할할 때 더욱 많은 보시로 부처님의 큰 뜻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심준보/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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