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불교 인구는 1천 32만 명인 반면 개신교 876만 명, 천주교는 295만 명으로 개신교와 천주교를 더한 기독교 인구는 1천 171만 명이었다. 기독교 인구가 139만 명 더 많은 셈이다. 2005년 같은 조사에서는 불교 인구가 1천 72만 명인 반면 개신교 862만 명, 천주교 514만 명이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더한 기독교 인구는 1천 376만 명으로 불교보다 304만 명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를 ‘기독교 국가’라고 일컫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1995년과 2005년 두 조사의 차이를 살펴보면 불교 인구는 40만 명가량 증가하였고, 개신교는 14만 명가량 감소하여 늘어나고 줄어든 수치가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천주교는 220만 가량 증가하여 천주교 인구가 ‘폭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조사 결과를 연령별로 살펴볼 경우, 천주교는 각 연령별로 고루 분포하고 있고 개신교는 70대 이상을 제외하고는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은 반면, 불교의 경우에는 70대 이상을 제외하고는 나이가 많을수록 불교인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의 경우와 개신교의 경우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개신교는 연령별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은 데 비해, 불교는 각 연령별 격차가 무척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불교인구 가운데 10세 미만의 경우 불자가 그 연령층의 13.2%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연령별 인구 가운데 불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60대의 34.1%의 3분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이가 많을수록 불자가 많다는 것인데, 그러한 인구분포는 불교의 앞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전 국민을 20년 단위로 묶을 경우, 20세 미만 연령층의 불자 비율은 15.7%, 20~30대는 19.4%, 40~50대는 28.6%, 60대 이상은 32.8%이다. 현재의 추세로 진행될 경우 40대 이상이 사망하는 시점인 30~40년 후에는 불교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전 국민의 15%에 불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교는 교리가 훌륭하므로 나이가 들면서 불교로 귀의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95년 조사 당시 2백 7만 명이던 30대 불자는 2005년 조사에서 40대는 214만으로 다소 늘어났으나, 95년 174만 명이던 40대 불자는 10년 후 163만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그 ‘희망’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어린이·청소년 법회, 그리고 군포교 뿐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린이법회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어린이법회를 하기 위한 현실은 실로 갑갑한 점이 많다.

사실 스님들 가운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해마다 초파일 보시(동참)금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이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더욱이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서 어린이법회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린이법회를 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짚어본다.

첫째, 인력부족 문제이다.

스님들은 말한다. 어린이법회는 젊은 스님이 맡아야 하는데, 절마다 젊은 스님들이 없으니 법회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스님의 나이가 아니라 어린이법회를 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비록 나이가 많은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이법회를 할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충분히 있다. 교사를 활용하면 된다.

법회 교사는 ①초등학교 교사 ②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교사 ③기타 교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어린이를 가장 잘 다루는 것은 당연히 초등학교 교사이다. 따라서 어린이법회를 하고자 하는 사찰에서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초등 교사를 확보하여 법회의 중심에 세우고 어린이집·유치원 교사는 저학년이나 유치부를 맡게 하며, 그밖에 다른 분들은 법회 도우미로 활용하면 된다.

둘째, 절과 주거지역의 거리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찰은 주거지역과 떨어져 있다. 어린이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면 오지 않는다. 어쩔 수없이 승합차를 사야 하는데, 여의치 않을 경우 승합차를 가진 신도들을 동원해야 한다.

셋째, 법회 공간 부족 문제이다

어린이법회를 하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기저귀를 찬 아기까지 모인다. 형이나 언니가 절에 오면서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이미 육체적으로 성숙한 고학년 아이들이랑 기저귀 찬 아기를 ‘어린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 모아둘 수는 없다. 억지로 한 곳에 모아둔다고 하더라도 고학년 아이들은 “유치해요”를 연발하면서 절에 오지 않는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년별 법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가피할 경우 2년 단위로 묶어 유치부 포함, 네 개의 반으로 나누어야 하며, 그것조차 불가능할 경우 두 그룹으로라도 나누어야 한다. 만약 한 반으로 법회를 진행하면 3~4학년 중심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넷째, 재정 문제이다

불교에 대해 아이들에게 확고하게 심어주기 전까지는, 불교는 선택할 수 있는 ‘놀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설령 아이들이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물량공세에 아이들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어른들의 생각보다 아이들은 영악하기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게 나은지, 절에 가는 게 득인지, 집에서 게임하거나 TV 보는 게 좋은지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을 절로 오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교회만큼’은 해줘야 한다. 물론 돈 들이지 않고 아이들을 많이 모을 재주가 있다면 그 방법이 최선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을 모으고 모은 아이들의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돈이 필요하다. 사찰 재정이 넉넉하다면 아끼지 말고 쓰기를 권한다. 글로 표현하긴 좀 그렇지만, 앞으로는 돈이 들어가지만 뒤로는 남는다. 아이들이 절에 다니게 되면 젊은 부모들이 반드시 절에 다니게 된다. 한 아이에게는 몇 년만 쏟아부으면 되지만, 하기에 따라 부모는 꽤 오랜 기간 절에 다니게 된다. 그러니 ‘뒤로 남는다’고 한 것이다. 재정이 어려우면 신도들로 후원회를 만들면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님이 하고한 날 돈타령을 해야 한다. 그게 하기 싫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다섯째, 스님들의 의지 부족이다

어린이법회를 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이것 말고도 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스님의 의지 문제이다. 스님이 열정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를 보더라도 공부 못하는 애는 공부 못할 핑계 뿐이고, 공부 잘 하는 애는 공부할 핑계 뿐인 법이다. 일단 시작하면 문제가 드러날 것이고, 드러난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어린이법회를 하고자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오직 유일한 문제는 스님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한북 스님/대구 보성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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