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이 기가 막힌 꽃등심이나 쫄깃한 가죽과 고소한 곱이 뒤엉켜 맛을 내는 곱창에 열광하는 ‘식도락가’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채식인’이란 단지 음식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하나 둘씩 들어 온 외국 환경·생태학자의 연구를 접하면서부터 채식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그들은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채식모임(veg.or.kr)’,‘생명사랑채식실천협회(bevege.or.kr)’,‘한국채식인협회(vegetus.or.kr)’,‘한국채식연합(vege.or.kr)’등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팔팔한’ 20∼30대다.
소에게 먹이면 한 사람분의 고기와 우유밖에 얻을 수 없는 콩과 옥수수(1,350㎏)를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22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는 그들에게 채식에 시대적인 정당성과 필연성을 부여했다. ‘채식은 동물 애호를 떠나 아사·질병·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국제채식주의자동맹(IVU)의 정의 또한 그들에게 힘을 주었다.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아직도 고기를 먹을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쇠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 7㎏이 필요하며, 이 정도 분량의 곡물을 기르려면 물 7,000㎏이 필요하다. 곧 햄버거 1개를 포기하면 마흔 번 샤워할 물을 아끼는 셈이다.
나아가 가축 사료용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가 사용된다. 쇠고기로부터 단백질 1kcal를 얻기 위해 소요되는 화석 연료는 78kcal이다. 반면 콩에서 단백질 1kcal를 얻기 위해 소요되는 화석 연료는 2kcal면 충분하다. 미국의 영양학자인 프랜시스 무어 라페가 일찍이 지적한 대로, 이처럼 고기 중심의 식사법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낭비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녹색평론선집』).

가축, 기아 지구 온난화 부추겨
육식은 자원 낭비일 뿐 아니라 환경 파괴적이기도 하다는 것이 환경론자들의 지적이다. 1960년대 이래 중앙아메리카 숲 가운데 25% 이상이 목초지 조성을 위해 벌채되었다. 열대 우림이 파괴됨으로써 멸종된 생물종만 천여 종에 이른다(『새로운 미국을 위한 다이어트』존 로빈스 지음). 과도한 방목은 전 지구적인 사막화 또한 가속화시킨다.
더욱이 화석 연료를 태워 가축 사료를 생산하고 실어 나를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 또한 지구를 데우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메탄가스는 온실 가스의 18% 가량을 차지하는데, 이 중 15%가 가축 분뇨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가이아 이론을 제창한 제임스 러브록은 연소(combustion), 기계 톱(chain saw)과 더불어 가축(cattle)을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는 치명적인 세 가지 요인(3C)으로 꼽았다.
뿐만 아니다. 환경·에너지·식량 부문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월드워치 연구소에 따르면, 소를 비롯한 가축은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 가운데 3분의 1을 먹어 치우고 있다. 미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 전 국토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 이상이 가축의 먹이로 제공된다.
이를 두고 미국의 환경운동가 제레미 리프킨은 ‘곡물이 사람이 아니라 가축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그러나 거의 인식되어 있지 않은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축이 풀 아닌 곡물을 먹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들어서이다. 가축 먹이를 완전히 풀로 바꾸면 1억3천만t의 곡물을 절약해 4억 명이 넘는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코넬 대학 데이비드 피멘텔 박사의 추정이다[전 세계에서 매년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약 2천만 명이다].

채식인을 ‘왕따’ 놓는 한국 사회
유제품은 먹지만 달걀은 먹지 않는 ‘락토(lacto) 채식주의자’, 유제품·달걀을 모두 먹는 ‘락토 오버(lacto-ovo) 채식주의자’, 벌꿀이나 유제품마저 입에 대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s)’에 이르기까지 채식연합에 속한 채식주의자의 면면은 다양하다. 그러나 채식의 사회적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점차 ‘채식 전도사’로 변모하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물론 채식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동물성 단백질 신화’는 이들을 괴롭히는 첫 번째 걸림돌이다.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은 1 대 1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라는 고전적 정의가 영양학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채식주의자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채식주의자를 ‘왕따’시키는 한국 사회 특유의 분위기는 채식주의자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시킬 때도 ‘어묵 빼고요’를 덧붙여야 하는 이들로서는 주변의 호기심 어린 시선 내지 삐딱한 시선이 못내 부담스럽다. 더욱이 웬만한 식당치고 한국에서 채식주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고기 빼고 달걀 뺀’비빔밥이 고작이다.

채식은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
채식은 지구와 환경을 살리는 가장 손쉬운 실천 방법이며, 더 이상 식습관 문제가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문제이다.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1970년과 비교해 오늘날 한국의 육류 소비는 6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를 끄는 것은, 고기 소비 유형이 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변모해 왔다는 인류학자들의 주장이다. 한 예로 인도에서는 본래 소의 살생을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 전 600년께 전쟁·가뭄·기근이 닥치며 소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 같은 환경적 고갈 상태에서 ‘동물 살생을 금한 세계 최초의 종교’ 불교가 탄생했다는 것이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주장이다.
앞으로 50년 사이에 미국인의 식습관에 혁명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데이비드 피멘텔의 전망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오는 2060년이 되면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데 반해 경작지 면적은 38%로 줄어들고, 화석 연료는 완전히 고갈된다. 이때가 되면 소·돼지·닭이 먹는 곡물 전부를 인간이 먹게 되리라는 것이 피멘텔의 예견이다. 그의 암울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만약 식습관이 바뀌지 않을 경우 미국은 그 해결책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채식주의자는 식량·물·화석 연료가 고갈되는 문명사적 위기 상황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선각자 집단일지도 모른다. 제레미 리프킨의 말마따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개인적인 결정이지만, 그것은 지구 및 인류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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