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에 김유신 장군 활약 보면 신으로 여길정도 김춘추 즉위 삼국통일, 김유신 원맨쇼 아닐까? 96. 제29대 태종대왕 ⑧ [당]태종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 머리는 하나에 몸은 둘이고 다리는 여덟 개인 돼지를 바치는 사람이 있었다. 논자가 “이것은 반드시 천하를 병합[六合]하는 좋은 징조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왕대에 중국의 의관과 아홀
왕과 태자, 대신, 백성 등 1만 2807명 당 압송 의자왕 당에서 병사…금자광록대부위위경 추존 당나라 군사가 이긴 기세를 몰아서 성에 들어가니 왕이 어쩔 수 없음을 알고 탄식하며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른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마침내 태자 융〔혹은 효(孝)라고 하나 오류이다〕과 함께 북쪽 지역으로 달
백강·탄헌에서 막으라는 성충·흥수 충언 외면5천 결사대 황산에서 패전…계백 장군은 전사 이때 좌평 흥수(興首)가 죄를 입어 고마미지현(古馬旀知縣)에 유배가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으냐?”고 묻자, 흥수는 “좌평 성충의 말대로 하면 됩니다.
배탄 승려들 왕흥사에 들어온 것은 ‘전쟁 대비’ 신라 태종무열왕, 김유신 보내 당과 백제 공격 왕흥사(王興寺)는 왕이 흥하는 절인데 승려들이 탄 배가 큰 물결을 피하려고 했는지, 여하튼 절 안으로 들어온 것은 ‘전란이나 재해로부터 피신할 일’이 생긴다는 암시로 보인다. 그런데 사명대사의 호국불교도 후대에 나온 것을
‘해동증자’로 불린 백제 의자왕, 효심과 우애 깊어신라 심리전에 ‘흔들’…유언비어 난무, 도둑질 극심 왕이 태자였을 때 고구려를 치고자 군사를 청하려고 당나라에 간 일이 있었다. 그때 당나라 임금이 그의 풍채를 보고 칭찬하여 신성한 사람이라 하고, 당나라에 머물러 두고 시위(侍衛)로 삼으려 했지만, 굳
동일 인물 용수·용춘, ‘화랑세기’에는 형제로 기록 쌀·술 6말, 꿩 10마리 대식가…통치 스트레스인 듯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이며 성은 김 씨이다.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된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 각간의 아들로,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인 천명부인(天
신김 씨 권력과 재력 겸비…원찰 송화방 건립 백석, 김유신 고구려로 유인 시도하지만 실패 나이 18세 되던 612년에 검술을 익혀 국선(國仙)이 되었다. 이때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던 백석(白石)이란 자가 낭도의 무리에 여러 해 동안 있었다. 유신랑은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밤낮으로 깊이 모의하고 있었다. 백석이 그런 모의가 있음을
김춘추와 훗날 도모한 뒤 징표로 누이와 결혼 요구 반대 선덕여왕 설득하려 임신한 누이 화형 쇼 연출 김유신의 맏누이는 보희(寶姬)이다. 김서현의 딸로 어릴 때의 이름은 ‘아해(阿海)’였다. 그 아래 누이의 이름은 문희(文姬)이며 어릴 때의 이름은 아지(阿之)이다. 사료에 의하면, 보희가 일찍이 꿈에 서형산(西兄山 : 지금의 경주 서악)
김흠순, 김유신 도와 황산에서 백제 결사대 물리쳐 고구려 정벌 때도 출정…당에 다녀온 후 기록 전무 아우는 흠순(欽純)이다. 맏누이는 보희(寶姬)이며 어릴 때의 이름은 아해(阿海)이다. 그 아래 누이의 이름은 문희(文姬)이며 어릴 때의 이름은 아지(阿之)이다. 유신공은 진평왕(眞平王) 17년 을묘(乙卯)에 태어났는데, 칠요(七曜)의 정기를 품고
진덕왕대 설날 조례 시행 시랑 호칭도 처음 사용 낭비성 전투 후 사륜계와 상호 긴밀한 협조 관계 진덕왕대 사영지에 대해서 한 가지 말 못 한 게 있다. 진덕왕 때에 비로소 설날 조례를 행하였다는 대목이다. 왕이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가들은 이때부터 국가 기강이 잡히고 왕권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 웃기는 이야기이다. 누구는 못 해서 안 한 게 아니라
오지암에서 중신 모임 후 김유신에게 힘 쏠려 우지산은 남산, 청송산과 파전 위치 비정 못해 신라에는 네 곳의 신령한 땅이 있어 나라의 큰일을 의논할 때, 대신들이 모여서 의논을 하면 일이 꼭 성공했다고 한다. (사령지의) 첫째는 동쪽의 청송산(靑松山)이고, 둘째는 남쪽의 오지산(亐知山)이다. 셋째는 서쪽의 피전(皮田)이고, 넷째는 북쪽의 금강산(金剛山)이다
가야왕족 신라 편입 초기 따돌림 당한 듯 금관가야 구해왕과 신라 지증왕의 증손자 꼬마 호랑이를 들어 메친 알천공을 유신공은 어떻게 다뤘을까? 유신공의 위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슨 일을 하면 그런 위엄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김유신은 595년(진평왕 17)에 태어나서 673년(문무왕 13)에 죽을 때까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한
우리에게 현대사는 아픔과 고통의 시간의 연속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은 우리에게 ‘가난’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가르쳐줬다. 하지만 어느덧 가난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고 그 자리에 ‘쾌락’이나 ‘디지털’과 같은 단어가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일상의
왕위 계승 결정…선덕·진덕왕 즉위 문제와 연관 깊어 중고기 화백회의와 연관…알천 왕 추대회의로 보기도 탐사역사학의 방법론을 들이대보면, 알천공·임종공·술종공·호림공·염장공·유신공이 모인 남산의 오지암 또는 우지암이 어느 곳인지 궁금해진다. 우지암은 신라에서
족첸(Dzogchen)이란 모든 실체의 '위대한 완성'이다. 뵌교와 가까운 티베트 불교의 4대종파 가운데 하나인 닝마파에서 가장 높은 가르침과 수행으로 여겨진다. 오직 자신의 본성을 깨닫기만 하면 되는 이 수행의 다른 이름은 '자아의 해방'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고통 등에 대하여 부정적인 집착이나 혐오를 갖지 않고 받아들이
명진 스님의 단식 7일 째가 되는 23일 시민사회단체 1인천 선언단은 조계종 총무원 앞 우정총국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백기완 선생을 비롯해 최종진(민주노총), 정연순(민변), 박래군(인권), 용산 유가족(전재숙), 세월호 유가족(호성엄마), 조천준(전노련), 김영표(민주노련), 장남수(유가협), 조순덕(민가협), 김영호(전농), 김주업(공무원노조), 박석운
삼국시대 한반도 개념 없어…백제·고구려도 외세 ‘태평가’, 당을 꼭두각시 만들려고 만든 외교문서 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거대한 당나라가 왕업을 개창하니, 높고 높은 황제의 모책(謀策)은 더욱 창성하여진다. 전쟁이 끝나니 군사들은 안정을 얻게 되고, 문치를 숭상하니 백왕(百王)의 뒤를 잇게
과거 황제나 왕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새로운 군주가 즉위하면 자신의 재위 연대, 즉 치세연차(治世年次)에 붙이는 칭호로 연호를 사용했다. 연호의 사용은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건원(建元)에서 시작됐으며, 일본, 월남, 대만 등에서도 사용했다. 우리는 536년 신라 법흥왕 23년에 독자적으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사용했다. 조선은 독자적 연호를
김흠순 석방 청하기 위해 당에 사신 보내 진덕여왕대를 기준으로 신라사 시대 구분 제28대 진덕여왕이 즉위하여 <태평가(太平歌)>를 짓고 비단을 짜서 수놓았다. 사신을 당(唐)에 보내 바치게 하였다. 당나라 임금이 기뻐하며 그것을 포상하고 (진덕여왕을) 계림국왕(鷄林國王)으로 고쳐 책봉하였다. 다른 기록〔一本〕에는 “춘추공(春秋公)이 사
전 국민 97%가 ‘나는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나라가 부탄왕국이다.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을 도입했던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의 은퇴 후 2006년 12월 17일 즉위한 아들 케사르 남기엘은 절대 왕권을 포기하고 나라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치러진 최초의 하원 총선에서 왕당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