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와 훗날 도모한 뒤 징표로 누이와 결혼 요구
반대 선덕여왕 설득하려 임신한 누이 화형 쇼 연출
 

김유신의 맏누이는 보희(寶姬)이다. 김서현의 딸로 어릴 때의 이름은 ‘아해(阿海)’였다. 그 아래 누이의 이름은 문희(文姬)이며 어릴 때의 이름은 아지(阿之)이다. 사료에 의하면, 보희가 일찍이 꿈에 서형산(西兄山 : 지금의 경주 서악) 꼭대기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줌이 경주 도성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보희는 좀 바보였던 것 같다. 궁금하기도 하고 자랑하고 싶기도 해서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다 들려주었다.

차남이나 차녀들은 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 경우가 있다. 문희가 듣다보니 참 좋은 꿈인 듯하니 언니한테 졸라서 사기로 했다. 좀 모자랐던 보희는 비단치마 몇 개 받고는 동생에게 꿈을 팔았다.

얼마 후 김유신이 김춘추(金春秋)와 훗날을 도모하기로 하고 그 징표로서 누이에게 장가가라고 강요했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큰 누이인 보희에게 주선하였다. 그러나 보희는 당시까지는 별볼일없던 김춘추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또 꿈처럼 김춘추 역시 아우 문희에게 양보한다. 말이 양보이지 바겐세일을 한 샘이다. 결국 동생 문희가 김춘추와 혼인하게 되었고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되면서 문희는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되었다. 물론 보희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다.

아직도 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전근대사회에서 혼인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다. 왕족일 경우는 근친혼 등으로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왕위 계승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아무리 친하고 함께 공모를 했다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왕위 계승권을 가진 김춘추와의 결혼은 왕의 외척이 된다는 의미를 함유한다.

김유신은 일부러 혼인 전에 누이 문희를 김춘추와 사통을 시킨다. 임신까지 하게 되자 당연히 혼인이 될 줄 알았는데 당시 사회가 ‘성’에 개방적이었던 것인지 혼인은 선덕여왕을 비롯한 기존 왕족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왕이 반대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왕통과 깊이 관련이 있는 것이며, 선대부터 김유신이나 그 아버지 서현의 모습이 달갑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결국 김유신이 임신한 누이 문희를 화형(火刑)시키려는 쇼를 연출하자 알아도 모르는 척하려고 했던 선덕여왕이 부득이 말려들었다. 선덕여왕을 엮는데 성공한 김유신은 누이 결혼의 일등공신이 된다. 처남 매부 지간이 된 김유신과 김춘추의 관계가 신라의 300년을 결정지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유신의 어머니는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어머니의 증조부는 지증왕, 할아버지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이다. 결국 아버지 숙흘종(肅訖宗)은 진흥왕의 동생이 된다. 숙흘종은 딸 만명을 감금하면서까지 서현과의 혼인을 반대한 바 있다. 그런데 하늘이 서현의 편임을 알리고 싶었던지 만명이 감금된 곳에 갑자기 벼락이 쳤다. 말은 그렇고 실제로는 서현에게 충성을 다하는 결사대가 난입하여 만명을 탈출, 아니 납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왕족과 혼인을 한 아버지에 이어, 김유신은 자신의 누이를 왕족과 혼인시킨다. 2대에 걸친 혼인으로 이제 누구도 김유신가를 함부로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김씨’라는 표현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명실상부한 왕족의 일원이 된 김유신에게는 이제 그다지 아쉬울 게 없다. 누이들도 그렇다. 다만 역사적으로 크게 뭐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보희는 두고두고 그 일을 후회했을 듯하다. 꿈이야 팔 수 있지만, 결혼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꿈 이야기를 넣은 것은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보희와 오빠가 꿈꾸는 미래를 함께 보았던 문희의 이야기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유신은 칠요의 정기를 품고 태어났기 때문에 등에 칠성문(七星文)이 있었다고 한다. 칠요는 동·서양 모두 일, 월, 화, 수 ,목, 금, 토의 7요일을 말한다. 해와 달과 5개의 별. 일월오성(日月五星)을 말하며, 오성은 목성(木星), 화성(火星), 토성(土星), 금성(金星), 수성(水星)의 다섯 개의 별이다. 칠정을 칠요(七曜)라고도 하며, 별과 해와 달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운행되는 것이 정치가 일정한 법규와 제도에 따라 집행되는 것과 같고, 또 옛날사람들은 우주의 변화와 원리에 따라 순천(順天:하늘의 뜻을 좇는 것)하는 정치를 행하였으므로 하늘의 주된 현상인 일월과 오성을 정치의 근원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일요(日曜)는 태양, 월요(月曜)는 태음(太陰), 화요(火曜)는 형혹(熒惑), 수요(水曜)는 진성(辰星), 목요(木曜)는 세성(歲星), 금요(金曜)는 태백(太白), 토요(土曜)는 진성(鎭星)에 비정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러한 칠요를 북두칠성이 주관한다는 신앙이 존재한다. 그래서 김유신이 칠용의 정기를 품고 태어났으며, 칠성문이 등에 있다는 말은 김유신을 신격화와 함께 흥무대왕으로 추봉한 것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 이 글은 일연 스님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따라 원문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관점을 부여했다. 《삼국유사》자체가 일연 스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후대인들에 의해서 재편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원문(밑줄) 내용 일부를 조목 안에서 순서 등을 재배치하는 등 바꾸었음을 알린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