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논리적 해석 어려워 수행 더욱 필요 유학전 선공부 통해 얻은 '그것' 일본서 꺼내놓자 '유치해' 지적영화평론가란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직업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평론가는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할까? 만약 불교를 전공한 필자가 영화평론을 한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평론가가 되려면 적어도 이전에 영화계에 관계했
평안도 대동강 출신 개성 오관산으로 출가 앙산혜적 문하에서 공부 고려태조 왕건과 연관 사대팔상 등 사상 전개조계종이란 명칭은 조계혜능(曹溪慧能)에서 유래한 것으로, 혜능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계종은 고려시대에 성립된 이후로 현재에는 한국불교 종단이나 신도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우리나라의 선종이 전부 조계종
염관은 범일 근기를 알고 '동방의 보살' 찬탄 동래연기에 '혜능의 목 쌍계사 봉안' 전해져 "우리나라에서 혜능 잇는 7대 조사 나온다" 우리나라에 선이 전래된 것은 중국에 유학한 스님들에 의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종파인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조들 중 희양산문(曦陽山門)의 도헌(道憲) 이외에는 전부 중국에 유학
이제 2년여를 연재해 온 조당집 읽기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래서 《조당집》에 기록된 한국의 선사들을 이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쳐서 서술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에 선이 최초로 전래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법랑(法朗, 7세기~8세기)에 의해서이다. 법랑에 대해서는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는데, 그는 중국에 유학하여 4
중국 선종의 종파는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나누어진다. 오가란 임제종·조동종·위앙종·법안종·우두종을 가리키며, 칠종이란 임제종에서 양기파(楊岐派)와 황룡파(黃龍派)가 나왔기 때문에 합쳐서 칠종이라고 부른다. 우두종의 개조는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선사로서 4조 도신(道信)의 제자이다. 도신에게는
보자혜랑(報慈慧朗, 唐末五代) 선사는 현사사비에게 나아가 출가하였으나, 구족계를 받은 이후에는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선사에게 참학하였다. 장경의 26인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났으며, 보통 낭상좌(朗上座)로 불리었다고 한다. 후에 장경의 법을 이었으며, 복건성(福建省)의 보자원(報慈院)에 주석하였다. 우선 《조당집》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실려
초경도광(招慶道匡, 생존연대미상)선사는 원래 조주(潮州, 오늘날의 廣東省)사람으로 속성은 이(李)씨이다. 어릴 때 출가하여 여러 선지식을 참학하다가,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이 천주(泉州, 오늘날의 福建省)의 초경원(招慶院)에 주석할 때부터 입실하여 공부하였다. 후에 장경의 법을 이었으며, 명성이 사해(四海)에 떨치자 민왕(閔王)이 자의(紫衣)를
7세에 출가해 설봉 참학 후에 구봉선사의 법 잇고 강서성 화산에서 교화 펼쳐, '해타고'가 중심 문답화산무은(禾山無殷, 884~960)선사의 속성은 오(吳)씨이며, 오늘날의 복건성(福建省) 연강현(連江縣) 출신이다. 7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설봉의존선사에게 참학하였으나 후에는 구봉도건(九峰道虔, ?~921)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가를 이룬 후에는 강서성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는 출가 후 목주도명(睦州道明)선사에게 참학하여 일시적인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 후에 설봉의존(雪峰義存)선사를 만나 최후의 깨달음을 얻고 그 법을 이었다. 운문이 설봉선사에게서 인가를 받는 과정을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운문이 설봉의 처소에 도달해 보니 한 스님이 보였다. 그에게 말하기
매우 짧은 답이 특징 "정법안장이 무엇입니까?" "보" "어디서 참해해야 합니까?" "로"지금까지 몇 회에 걸쳐서 설봉의존선사의 제자들에 대해 다루어왔다. 이번 회에는 그 마지막으로서 운문문언 선사에 대해 2회에 걸쳐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의 속성은
보복종전(保福從展, ?~928)선사는 설봉의존의 법사이다. 속성은 진(陳)씨이며, 복주(福州, 현재의 福建省) 복당현(福唐縣) 사람이다. 15세에 설봉에게 출가하였으며, 18세에 대주(大州) 대중사(大中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설봉에게 출가한 후 제방을 돌아다니면서 아호지부(鵝湖智孚)·장경혜릉(長慶慧稜) 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는
지난 39회부터 설봉의존의 제자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다. 설봉교단은 중국의 남쪽 지방인 항주(杭州) 등을 중심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북쪽의 조주종심과 더불어 ‘남설봉(南雪峰) 북조주(北趙州)’라고 불릴 정도로 큰 교단을 형성하였다. 설봉은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현사사비·경청도부·장경혜릉&mi
경청도부(鏡淸道怤, 864~937)선사는 속성이 진(陳)씨이며, 온주(溫州)의 영가(永嘉)출신이다. 6세에 출가하여 개원사(開元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온주는 오늘날의 절강성(浙江省)으로서, 영가는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의 고향이기도 하다. 제방을 행각하다가 후에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에 참학하여 그의 법을 잇게 된다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선사의 속성은 사(謝)씨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현(閩縣) 출신이다. 864년에 개원사(開元寺)의 도현(道玄)율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고, 나중에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선사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설봉회하에 있으면서 오직 베누더기를 입고 도에 전념하였으므로 비두타(備頭陀)라고 불리었고, 사가
지난 32회에서는 석상경저(石霜慶諸)선사에 대해서 다루었다. 경저선사에게는 많은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는데, 신라 출신의 제자들이 많은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아마도 중국의 선승들 가운데 신라출신의 제자가 가장 많은 것이 석상경저선사일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흠충(欽忠)·행적(行寂)·법허(法虛)·도연(道緣)·
최근의 연재에서는 주로 조동종의 개조인 동산양개의 제자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번 회에는 소산광인선사와 용아거둔 선사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소산광인(疎山匡仁, 생몰연대 미상)선사는 무주(撫州)출신으로 어렸을 때 출가하여 먼저 향엄지한(香嚴智閑, ?~898)선사에게 참학하였다. 소산은 몸집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향엄선사는 그를 왜사숙(矮師叔)&midd
19세 출가해 동산양개에 참학 동산양개가 법기로 여겨 몇 해 만에 법맥 계승하고 법거량 통해 교화 이끌어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선사의 속성은 황(黃)씨이며,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 오늘날의 杭州) 출신이다. 19세에 출가하여 25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선사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동산양개와 더불어
운거도응(雲居道膺, ?~902)선사의 속성은 왕(王)씨이며, 유주(幽州, 지금의 하북성) 옥전현(玉田縣) 출신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제방을 편력한 뒤 3년 동안 취미무학(翠微無學)에게 참학였다. 그 후 동산양개(洞山良价)선사를 찾아가 그의 법을 이었다. 운거는 그가 주석한 산명인데, 험준하여 산꼭대기에는 항상 구름이 떠있었기 때문에 운거산(雲居山)이라고 불
'남방엔 설봉, 북방엔 조주' 세력 떨쳐 고려에서도 많은 스님이 방문 제자가 돼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선사는 속성이 증(曾)씨이며 복건성(福建省) 출신이다. 12세 때 부친과 함께 복건성 옥한사(玉澖寺)의 경현(慶玄)율사를 알현하고 사미가 되었으며, 17세에 삭발하고 법휘를 의존(義存)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동산양개(洞山良价)선사
예부터 승려들의 수행방식은 여러 곳을 행각하면서 많은 스승을 찾아다니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스님을 ‘운수(雲水)’라고 부른다. 또 자신을 깨우쳐 줄 참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인연이 닿아야 한다. 현생에서 뿐만 아니라 숙세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자신의 스승이 된다. 선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