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관은 범일 근기를 알고 '동방의 보살' 찬탄
 동래연기에 '혜능의 목 쌍계사 봉안' 전해져
 "우리나라에서 혜능 잇는 7대 조사 나온다" 

우리나라에 선이 전래된 것은 중국에 유학한 스님들에 의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종파인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조들 중 희양산문(曦陽山門)의 도헌(道憲) 이외에는 전부 중국에 유학하여 중국 선사들의 법을 잇고 있다. 특히 수미산문(須彌山門)의 이엄(利嚴)을 제외하고는 모두 홍주종의 법을 잇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많은 선승들이 중국에 유학 가서 중국선을 배워왔을 뿐만 아니라, 후대 스님들은 중국선을 한국선의 뿌리라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지눌이나 혜심, 휴정 등 한국스님들의 저서를 읽는 것보다 혜능이나 임제에 더 익숙하다. 즉 동아시아선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중국이며, 한국선은 그 가지 내지 지류(支流)라고 하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선이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시작한 당대(唐代)부터 이미 한국의 선승들이 뛰어나며, 선의 중심이 우리나라로 이동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생기고 있었다. 《조당집》에 그것이 잘 드러나 있는데,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조인 범일(梵日)에 대해서 《조당집》권17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범일이 순례의 길에 올라 선지식을 두루 참문하던 끝에 염관제안 대사를 뵈니, 대사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동국(東國)에서 왔습니다.” 염관이 다시 물었다. “수로(水路)로 왔는가, 육로(陸路)로 왔는가?” 범일이 답했다. “두 가지 길을 모두 밟지 않고 왔습니다.” 염관이 “그 두 길을 밟지 않았다면 그대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물으니 범일이 말했다. “해와 달, 동(東)과 서(西)가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 이에 염관이 칭찬하였다. “실로 동방(東方)의 보살이로다.”

구산선문 중 사굴산문의 개조인 범일(梵日, 810~889)은 83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염관제안(鹽官齊安, ?~842)에게 참학하였는데, 첫 만남에서 염관은 범일의 근기를 알아보고는 ‘동방의 보살’이라고 찬탄하였던 것이다. 또 가지산문의 개조인 도의(道義, 생몰년 미상)도 784년에 입당하여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를 뵈었는데, 백장은 도의를 보자마자 ‘강서(江西)의 선맥이 몽땅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라고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자산문의 개조인 도윤(道允, 798~868)은 825년에 사신들을 따라 입당하여 중국의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을 사법하였는데, 남전보원은 ‘오종(吾宗)의 법인(法印)이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라고 탄식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위에서 백장이 말한 ‘강서의 선맥이 몽땅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라든지 남전의 ‘오종의 법인이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라는 발언은 단순히 해동승에 대한 칭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선의 법맥이 해동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즉 선의 법맥은 한 사람의 스님에게만 전해진다는 중국선의 전통에서 볼 때, 해동승이 중국선의 적자(嫡子)가 된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육조혜능대사정상동래연기(六祖慧能大師頂相東來緣起)》(이상 동래연기)라고 하는 문헌이 존재한다. 《쌍계사지(雙溪寺志)》에도 실려 있는 이 문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성덕왕 재위(702~737) 시에, 삼법화상(三法和尙)이 일찍부터 혜능을 사모하여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지만 이룰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혜능의 입적을 알고 슬퍼하였는데, 바로 그 때 미륵사승인 규정(圭晶)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법보단경초본(法寶壇經抄本)》을 보니 혜능이 ‘내가 입적하고 나서 30년 후, 어떤 사람이 나의 목을 훔치러 올 것이다’고 하는 예언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혜능의 목을 가져와서 해동의 복전이 되련다’고 결심하고 김유신(金庾信)의 부인인 법정 비구니에게서 2만금을 받아서 당나라에 건너가 소주(韶州)의 보림사(寶林寺)에 도착했다. 그러나 경비가 삼엄하여 혜능의 목을 훔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홍주 개원사에 신라의 백율사(栢栗寺)승인 김대비(金大悲)가 머물고 있는 것을 알고 공모하여, 중국인 장정만(張淨滿)으로 하여금 혜능의 목을 훔치게 했다. 장정만은 곧 혜능의 목을 훔쳐서 삼법화상에 건네주고 삼법화상은 그것을 가지고 해동으로 돌아왔다. 그 후 혜능이 삼법화상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목을 안치할 곳을 예언해 주었다. 삼법은 혜능이 예언한 장소를 찾아서 목을 봉안하고 암자를 세웠다. 그 후 암자는 불에 타버렸는데, 진감국사 혜소(慧昭)가 그 터에 절을 세우고 육조진전(六祖眞殿)을 건립하였다.

이것이 쌍계사의 육조진전에 얽힌 유래이다. 이 《동래연기》에 의하면 혜능의 목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쌍계사에 봉안되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쌍계사에 봉안되어 있는 것은 혜능의 목이 아니라 진영(眞影)이다.

▲ 삽화=장영우 화백

사실 《동래연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후대의 창작이다. 왜냐하면 중국에는 아직 혜능의 목이 미이라의 형태로 무사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아무 근거가 없는 낭설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그 근거는 중국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존재한다. 《경덕전등록》권 5 혜능대사조에는 혜능이 자신이 죽고 나서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훔치러 올 것이라는 예언을 한 것과 그 사건을 모의한 것이 해동의 김대비임을 기록하고 있다.

《경덕전등록》은 중국정부의 공인을 얻어 간행된 권위있는 책으로서, 황제의 서문을 싣고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그 속에 실려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놀랐을까는 짐작이 간다. 조사선의 창시자로서 동아시아 모든 스님들의 숭배의 대상인 혜능의 목을 훔치려 한 사건도 놀라울 뿐 아니라, 그 주모자가 신라의 승려라니! 그런데 《경덕전등록》에는 이 사건이 실패로 끝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범인인 장정만(張淨滿)이 체포되었는데 그를 심문한 결과 신라승 김대비(金大悲)의 사주로 사건을 일으켰지만, 김대비도 불순한 의도에서가 아니라 ‘혜능을 모시고 공양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는 《경덕전등록》에 기록된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며, 김대비란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기 위해 중국의 문헌들을 모두 뒤졌지만 알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도 ‘왜 하필이면 혜능의 목을 훔치려 했던 사람이 신라승 김대비인지?’ 알 수 없다. 독자들의 조언을 바란다.

한마디로 말하면, 《동래연기》는 《경덕전등록》에 근거해서 그 사건이 성공한 것처럼 창작된 것이다. 《동래연기》는 1915년 전후에 창작되었다고 생각된다. 1910년대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민족주의가 흥기한 시기이며, 불교계에서도 일본불교에 맞서서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주장하던 시기이다. 이때 쌍계사에 봉안되어 있던 혜능의 진영이 《경덕전등록》에 기록된 사건에 의해 전래된 것임을 창작한 것이다.

그러나 비록 《동래연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첫째는 우리나라에서 혜능에 대한 신앙이 그만큼 강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삼국시대 이후 수많은 승려들이 중국 보림사(寶林寺)에 있는 혜능의 탑을 참배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 선적(禪籍)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간행된 것이 《육조단경(六祖檀經)》이었다. 둘째는 우리 선조들이 ‘해동의 선이 동아시아선의 중심이 된다’는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다. 혜능의 목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과 깊은 인연이 있는 땅’이라는 사실과 ‘우리나라에서 혜능을 잇는 선종 7대 조사가 나온다는 사실’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는 석가모니 진신사리의 전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진신사리는 자신이 봉안될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동래연기》에서 혜능은 자신의 목이 봉안될 장소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은 현존하지 않지만 《해동칠대록(海東七代錄)》이라는 문헌이 존재했다고 전한다. 《해동칠대록》이라는 제목에서 봤을 때 해동에서 선종칠대가 나온다는 내용이 아닐까? 어쨌든 우리 선조들은 해동선이 단순히 중국선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선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일찍부터 꿈꾸어 왔던 것이다.

-동국대불교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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