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짧은 답이 특징
 "정법안장이 무엇입니까?"
 "보"
 "어디서 참해해야 합니까?"
 "로"

지금까지 몇 회에 걸쳐서 설봉의존선사의 제자들에 대해 다루어왔다. 이번 회에는 그 마지막으로서 운문문언 선사에 대해 2회에 걸쳐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의 속성은 장(張)씨이며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 출신이다. 17세에 출가하여 목주도명(睦州道明, 생몰년미상) 선사에게 참학하다가 후에 설봉의존의 법을 이었다. 만년에는 운문산에 주석하면서 광태선원(光泰禪院)을 세우고 제자들을 지도하였다.

운문선사는 오가칠종 중 하나인 운문종(雲門宗)의 개조로 일컬어지는데, 예부터 운문종의 가풍은 ‘운문천자(雲門天子)’로 불릴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보통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마치 천자의 명령처럼 한 번에 만기(萬騎)가 결정되어, 두 번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준엄한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운문종의 특징을 일자관(一字關)이라고도 하는데, 한 글자를 가지고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어떤 승이 운문에게 물었다. “정법안장(正法眼藏)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운문이 답했다. “보(普).” 승이 또 묻기를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죽이면 부처님 전에 참회하면 되지만,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면 어디에서 참회해야 합니까?” 하자 운문이 답했다. “로(露).”

보(普)는 ‘보편, 즉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로(露)는 ‘어디에나 드러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되지만 어쨌든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외에도 운문의 문답은 대체적으로 짧은 것이 많아서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조당집》은 운문문언에 대해서 대단히 짧게 다루고 있다. 그것은 《조당집》이 임제종과 조동종 선사들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벽암록》에서는 총 100칙 가운데 14칙이 운문에 관한 것일 만큼 운문선사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벽암록》의 모태가 되는 《설두송고(雪竇頌古)》의 저자인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운문종 스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운문종은 운문문언 이후 설두중현과 불일설숭(佛日契嵩, 1007~1072) 등의 뛰어난 제자를 낳아 일시 교세를 떨쳤으나, 겨우 200년 후에 계보가 끊기고 말았다. 어쨌든 본회와 다음 회는 《벽암록》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운문선사는 출가 후 지징(志澄)선사에게서 《사분율(四分律)》을 배우다가 목주도명선사를 찾아가 선을 배웠는데, 목주선사에게서 인가를 받게 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운문이 목주도명선사를 찾아갔는데, 목주는 그가 오는 것을 보자 바로 문을 닫아버리고는 열어주지 않았다. 운문이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자 사흘째 되는 날 마침내 목주선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운문이 바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목주가 운문의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말해라, 말해!”하고 재촉하였다. 운문이 뭐라고 답하려고 하는 순간 목주는 또 문을 닫아 버렸다. 이때 운문의 발이 문에 끼여 운문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운문은 이때 바로 깨달았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운문의 문답은 대단히 짧은 것이 특징이다. 그 중 하나를 들면, 《벽암록》 제47칙은 다음과 같다.

▲ 삽화=장영우 화백

어떤 승이 운문선사에게 묻기를 “법신이란 무엇입니까?”하니, 운문이 답하기를 “여섯 개에 다 담을 수 없다[六不收].” 했다.

육불수(六不收)란 ‘법신은 광대하여 육근(六根) 혹은 육식(六識)이라는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다 담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법신은 인간의 감각과 지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선정을 통해 체험해야만 한다. 옛날에 중국에 부상좌(孚上座)라는 강경승(講經僧)이 살았다. 하루는 그가 법석에 올라서 경전을 강의하던 중 법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법신은 세로로는 삼제(三際, 과거·현재·미래)에 걸치고 가로로는 시방(十方)에 미친다.” 이를 듣고 있던 선객이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강의를 마치고 난 부상좌가 선객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강의 도중에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웃는 것입니까?”하니 선객이 말하기를 “당신은 법신의 양(量)에 대해서 강의를 했을 뿐이지 법신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부상좌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니 선객이 “잠시 강의를 멈추고 방에서 좌선하시오.”했다. 선객의 말대로 좌선을 하던 중 오경(五更)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문득 깨친 부상좌가 말하기를 “앞으로 다시는 부모님이 낳아주신 코를 비틀지는 않겠습니다.[결코 자신의 본래면목에 대해서 이치로 따지지는 않겠습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의 문답에서도 운문선사는 법신은 결코 인간의 지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 것이다.
법신에 관한 문답은 《벽암록》 제39칙에도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떤 승이 운문에게 묻기를 “청정법신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운문이 답했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작약(芍藥)이 가득 찬 화단[花藥欄].” 승이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하니 운문이 또 말했다. “금빛 털의 사자[金毛獅子].”

청정법신이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로자나불은 온 세상을 광명으로 비추고 있으므로 ‘광명편조(光明遍照)’라고도 불린다. 작약으로 가득 찬 화려하고 빛나는 화단은 비로자나불을 묘사하기에 손색이 없다. 반면에 ‘금모사자’라는 것은 선에서 ‘예리한 기용을 지닌 인물’을 비유한 것으로서, 사자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예리한 발톱을 지니고 있음을 비유한다. 예를 들어 ‘금모사자불거지[金毛獅子不踞地, 금빛 털의 사자는 함부로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에 해당된다. 작약으로 가득 찬 화단처럼 화려하지만, 그 속에는 예리한 작용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벽암록》 제27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승이 운문에게 묻기를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질 때는 어떠합니까[樹凋葉落時如何]?”하니 운문이 답했다. “가을바람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體露金風].”

수조엽락(樹凋葉落)이라는 말은 《대반열반경》 권39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기에는 ‘사라림(沙羅林) 가운데 한 나무가 있어 백년이나 된다. 그 나무가 마르고 껍질과 잎이 모두 떨어져, 오직 진실만이 남았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또 금풍(金風)은 가을바람을 의미하며, 체로(體露)는 ‘온전히 드러나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체로금풍은 ‘진실이 온전히 드러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한편 운문문언의 유명한 공안에 건시궐(乾屎橛)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떤 승이 운문에게 묻기를 “불(佛)이란 무엇입니까?” 하니, 운문이 답하기를 “마른 똥막대기니라[乾屎橛].” 했다.

건시궐(乾屎橛)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우선 ‘똥을 닦는 막대기’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옛날에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나뭇잎이나 막대기로 닦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똥이 말라서 막대기모양으로 된 것’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 지금도 거리에 보면 개똥이 말라서 막대기처럼 굴러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필자는 후자가 옳다고 본다. 그렇다면 건시궐의 의미는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흔하디 흔한 것’이라는 뜻이 된다. 불(佛)이란 어디에나 존재하는 흔하디 흔한 것이다.

동국대불교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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