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선사의 속성은 사(謝)씨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현(閩縣) 출신이다. 864년에 개원사(開元寺)의 도현(道玄)율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고, 나중에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선사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설봉회하에 있으면서 오직 베누더기를 입고 도에 전념하였으므로 비두타(備頭陀)라고 불리었고, 사가(謝家)의 3남(男)이란 뜻에서 사삼랑(謝三郞)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후에 독립하여 현사원(玄沙院)을 개창하였고, 898년에는 민왕(閩王) 왕심지(王審知)의 명에 따라 안국원(安國院)에 주석하였다. 입적 후 종일대사(宗一大師)의 시호를 받았으며, 제자로는 나한계침(羅漢桂琛)·국청사정(國淸師靜) 등이 유명하다.
먼저 스승인 설봉의존과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존재한다.

현사가 스승인 설봉을 시봉하여 산속을 거닐고 있을 때 설봉이 산 밑을 내려다보며 말하기를 “이 땅으로 장생지를 삼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사가 답하기를 “제가 보건대는 무봉탑을 세우기에 좋은 땅입니다”하였다. 이에 설봉이 측량하는 자세를 취하자 현사가 말하기를 “옳기는 옳습니다만, 저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했다. 그러자 현사가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물으니 현사가 “탑을 세우겠습니다.”했다. 그러자 설봉이 답했다. “옳다.”

장생지(長生地)라는 것은 사찰소유의 땅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 세우는 푯말을 장생표(長生標)라고 한다. 즉 설봉은 산 밑의 땅을 보고 사찰소유의 땅으로 삼고 싶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자인 현사는 ‘스승님을 위해 무봉탑을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무봉탑(無縫塔)이란 난탑(卵塔)이라고도 하는데, 계란모양의 탑으로서 하나의 돌로 만들기 때문에 이음새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봉탑이라고 불린다. 보통 스님의 묘석으로서 많이 사용된다. 좋은 땅을 발견하자 설봉은 우선 사찰소유의 땅으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현사는 설봉입적 후에 묘석을 세우고 싶다고 하여 제자로서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현사사비는 수많은 스님들을 지도했는데, 다음의 고사가 전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듣건대 스님께서는 ‘시방세계가 모두 하나의 명주(明珠)이다’라고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현사가 답하기를 “시방세계가 하나의 명주인데, 이해해서 뭘 하겠느냐?”했다. 다음날 현사가 다시 그 승려에게 묻기를 “시방세계가 하나의 명주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했느냐?”하니 승려가 “시방세계가 하나의 명주인데, 이해해서 뭘 하겠습니까?”답했다. 그러자 현사가 말했다. “네가 흑산 하 귀굴에서 활계를 치는 놈인 것을 비로소 알았다.”

▲ 삽화=장영우 화백

명주(明珠)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비유한 것으로, ‘시방세계가 모두 하나의 명주이다’라는 말은 ‘만물이 나의 본성의 드러남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나 할까? 그런데 일체유심조는 이해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사는 ‘이해해서 뭘 하겠느냐?’고 통박했던 것이다. 다음 날 그 승려가 제대로 알아차렸는지 걱정이 된 현사는 다시 그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그 승려는 어제 현사가 했던 말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었으므로, 현사는 ‘흑산(黑山) 하 귀굴(鬼窟)에서 활계를 치는 놈이로구나’하고 비난한 것이다. 《구사론(俱舍論)》에 의하면, 인간이 사는 남섬부주에는 아홉 개의 흑산이 있는데 이 흑산에는 악귀가 산다고 한다. ‘흑산 하 귀굴에서 활계를 친다’는 것은 ‘정식(情識)이나 사려분별에 사로잡혀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제자인 나한계침과의 사이에는 다음의 문답이 존재한다.

어느 날 현사가 나한에게 묻기를 “삼계유심(三界唯心)을 너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러자 나한이 의자를 가리키며 “스님께서는 이것을 무어라고 부르십니까?”하고 물었다. 현사가 “의자라고 부른다.”고 하자 나한이 답하기를 “스님은 삼계유심을 하나도 모르십니다.”했다. 현사가 “나는 이것을 대나무의자라고 부르는데, 너는 뭐라고 부르느냐?”고 묻자 나한이 “저도 역시 대나무의자라고 부릅니다.”했다. 이에 현사가 말했다. “천하에 불법을 아는 사람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문답이다. 삼계유심이란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모든 세계는 오직 마음 뿐이다는 것이다. 현사가 삼계유심의 의미를 나한에게 묻자 나한은 구체적인 의자를 가지고 삼계유심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의자를 가리키며 현사에게 무어라고 부르는지 물어서 현사가 ‘의자’라고 답하자 ‘당신은 삼계유심을 모른다’고 비난한다. 눈앞에 있는 의자는 내 마음이 드러난 것[三界唯心]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을 의자라고 불렀기 때문에 비난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에 현사가 말한 ‘천하에 불법을 아는 사람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는 것은 나한을 통박한 듯 느껴지지만 필자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맹인 · 농아 · 벙어리를 만나면 어떻게 교화하겠는가?
 見 · 聞 · 語를 일깨우는 '현사삼종병인' 공안 유명해


현사사비를 이야기할 때는 《능엄경》과의 관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사는 일찍부터 《능엄경》을 중요시하여 ‘《능엄경》을 읽고 심지를 발명하였다[閱楞嚴經, 發明心地]’고 전해진다. 《능엄경》은 원래 8세기 초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이지만, 당대(唐代)부터 선승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은 불교의 가르침을 3교로 나누고 있는데, 그것은 밀의의성설상교(密意依性說相敎:人天敎·小乘敎·唯識이 해당)·밀의파상현성교(密意破相顯性敎: 般若空觀)·현시진심즉성교(顯示眞心卽性敎: 如來藏思想)이다. 이 중 현시진심즉성교가 가장 수준이 높은 가르침인데, 경전으로서는 《능엄경》·《원각경》·《화엄경》등이 해당된다고 한다.

《능엄경》은 특히 송대 이후에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게 되는데, 《능엄경》을 중심으로 한 신앙결사가 성행하여 능엄주(楞嚴呪)를 독송하는 능엄회(楞嚴會)가 빈번하게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중기 이후 《능엄경》이 유행하여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 특히 중요시하였다. 위의 문답에서 현사는 ‘삼계유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인간의 마음[眞心]의 문제에 있어서 현사는 《능엄경》을 많이 참고 하였다고 생각된다. 현사의 사상은 법안종에 영향을 미쳤는데 법안종의 서룡우안(瑞龍遇安, ?~995)은 언제나 《능엄경》을 읽고 있었으므로 ‘안능엄(安楞嚴)’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한편 예부터 선림에는 ‘현사삼종병인(玄沙三種病人)’의 공안이 전해 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현사가 하루는 시중하여 말하기를 “제방의 노숙들은 모두 ‘사물을 제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말하는데, 만약 세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교화하겠는가? 맹인은 불자(拂子)를 세워도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언어삼매(言語三昧)를 설하여도 듣지 못하고, 벙어리는 말하게 해도 말하지 못하니 도대체 어떻게 교화해야 하겠는가? 만약 이 사람을 교화하지 못한다면 불법이 영험이 없는 것이다.” 했다. 그러자 어떤 승려가 이 사실을 운문문언(雲門文偃)선사에게 물으니, 운문이 말하기를 “너는 우선 예배부터 하거라.” 승이 예배하고 일어나자 운문이 주장자로 때리려고 하였다. 승은 뒤로 물러났다. 운문이 말했다. “다행히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다시 승을 가까이 오라고 부르자 승이 다가왔다. 운문이 “다행히 귀가 멀지도 않았구나!” 그리고는 운문이 즉각 물었다. “알겠느냐?” 승이 “모르겠습니다.”답하니 운문이 말했다. “다행히 벙어리는 아니로구나!” 승이 이에 깨닫는 바가 있었다.

여기서 장님·귀머거리·벙어리의 세 가지 병은 반드시 육체적인 병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참된 견(見)·참된 문(聞)·참된 어(語)가 없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교화시킬 것인가? 이에 대해 운문은 승으로 하여금 스스로 보고·듣고·말하게 함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신을 알아차리도록 유도한 것이다.

-동국대불교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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