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9회부터 설봉의존의 제자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다. 설봉교단은 중국의 남쪽 지방인 항주(杭州) 등을 중심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북쪽의 조주종심과 더불어 ‘남설봉(南雪峰) 북조주(北趙州)’라고 불릴 정도로 큰 교단을 형성하였다. 설봉은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현사사비·경청도부·장경혜릉·보복종전·운문문언이 유명하다. 이번 호에서는 장경혜릉 선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 선사는 속성이 손(孫)씨이며,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염관(鹽官) 출신이다. 13세에 강소성 소주의 통현사(通玄寺)에서 출가하였다.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현사사비·설봉의존 등을 참학하였으나 12년 동안 ‘일곱 개의 방석이 헤지도록 참선하였으나(坐破七個蒲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선방의 발[簾]을 말다가 크게 깨치고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대단히 어긋났네. 대단히 어긋났네. 也大差也大差
발을 걷어 올리니 천하에 가득해라. 卷上簾來滿天下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알았는가 물으면, 有人問我會何宗
불자를 들어서 입을 쥐어박으리. 拈起拂子驀口打

한편 설봉의 제자 중에서도 장경혜릉과 경청도부, 보복종전은 사형사제로서 친하게 지냈는데,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극근은 ‘세 사람은 모두 깨달음을 얻고, 함께 실천하고 서로 절차탁마하였다. 그들은 죽 같이 지냈기 때문에 물음을 제기하면 바로 요점을 알아차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12년 동안 일곱개의 방석이 헤지도록 참선
 어느날 선방의 발 말다 깨치곤 오도송 읊어

특히 보복종전(保福從展, ?~928)과 장경혜릉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벽암록》제23칙과 제95칙은 두 사람 사이의 선문답에 관한 것이다. 우선 제23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장경과 더불어 산보를 하고 있던 보복이 손으로 산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곳이야말로 묘봉의 꼭대기[妙峰頂]군요.”하였다. 그러자 장경이 말하기를 “옳기는 옳지만 조금 아깝구나.”하였다. 두 사람이 후에 경청도부에게 이 일을 전하자 경청이 말했다. “만약 손공이 아니었다면 해골이 들판에 나뒹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묘봉(妙峰)이란 수미산(須彌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방문할 때 최초로 찾아간 덕운비구(德雲比丘)가 거주하는 곳이 바로 묘봉이기도 하다. 같이 산보를 하던 보복이 눈앞의 산을 수미산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장경은 ‘옳기는 옳지만 조금 아깝구나’라고 하면서 긍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필자는 잘 모르겠지만, 이 문답에 대해 경청도부 선사는 ‘만약 손공이 아니었다면 해골이 들판에 나뒹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고 평가하였다. 손공이란 장경의 속성이 손씨였기 때문에 손공이라고 한 것이고, ‘해골이 들판에 나뒹군다[髑髏遍野]’란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광경을 묘사한 말이다. 따라서 경청은 ‘장경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것이다’고 장경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벽암록》제 95칙은 다음과 같다.

장경이 하루는 말하기를 “설령 아라한에게 삼독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여래에게 두 가지 말[二種語]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여래에게 말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두 가지 말이 없었을 뿐이다.”했다. 그러자 보복이 묻기를 “무엇이 여래의 말씀인가?” 하니 장경이 “귀머거리가 어찌 들을 수 있었겠는가?”했다. 보복이 “참으로 당신이 제 2의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알겠다.”했다. 그러자 이에 대해 장경이 묻기를 “무엇이 여래의 말씀인가?”하니 보복이 말했다. “차나 마시러 가게[喫茶去].”

▲ 삽화=장영우 화백

《대지도론(大智度論)》등의 경전에 의하면 아라한은 81품(品)의 번뇌를 끊었다고 말해지므로 당연히 가장 근본적인 번뇌인 삼독은 끊고 있다. 삼독이란 탐(貪, 욕심)·진(瞋, 성냄)·치(痴, 어리석음)를 가리키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근본적인 번뇌이다. 따라서 원래 아라한에게는 삼독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장경은 ‘설사 아라한에게 삼독이 있다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래에게 두 가지 말이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두 가지 말이 없다’는 것은 여래는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으로, 《법화경》에서 ‘오직 이 한 일[一乘法]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두 개[二乘과 三乘]는 진실이 아니다[唯此一事實, 餘二則非真]’고 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일음교(一音敎)라고 하기도 한다. 석가모니가 300여 곳에서 근기에 따라 수많은 가르침을 폈으나 오직 진실만을 말씀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보복은 바로 불법의 핵심을 물었다.‘그렇다면 너는 여래의 말씀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해 장경은 ‘귀머거리가 어찌 들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답한다. 이때의 귀머거리란 장경 자신을 말한다. 아무리 부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경전을 수만 번 읽는다고 해서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것은 음식에 관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배가 불러지지 않는 것과 같다. 장경의 이 말은 자신이 아직 깨닫지 못했음을 자백한 것이다. 그러자 이를 알아차린 보복은 ‘너의 말은 제 2의문에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제2의문(第二義門)이란 세속제(世俗諦)를 말한다. 즉 진실이 아니라 방편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자 도리어 장경은 보복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네가 이해하는 여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보복은 ‘차나 마시러 가게’하고 답한다. 끽다거(喫茶去)는 단순히 ‘차나 한잔하고 가게’라는 뜻이 아니라 ‘차 한잔 마시고 정신차려라’라는 의미임은 제20회 조주종심 선사를 다룰 때 말씀드린 적이 있다. 따라서 이 문답을 보는 한 보복종전이 장경혜릉보다 한수 위임을 알 수 있다.
《조당집》에는 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전한다.

어떤 스님이 장경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만법의 근원입니까?” 그러자 장경이 답하기를 “나를 이상하다 여길 필요 없다. 그저 ‘이것뿐[此事]’이니라.” 했다. 스님이 문득 절을 하니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갑자기 어떤 이가 그렇게 말한 것을 긍정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여전히 긍정하겠는가? 만약 그대가 긍정한다면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만일 긍정하지 않는다면 도리가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만일 이 문제를 가려낸다면 그대에게 그러한 안목이 있음을 인정하겠지만 그대가 가려내지 못한다면 그러한 안목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감히 보증하노라.”

선에서는 종종 진리를 ‘이 일[此事]’이라고 부른다. 진리란 어떤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에서는 진리를 표현할 때 ‘진리는 지식으로 알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거나 혹은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는 연기도 아니요 공도 아니다’는 식의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를 차전(遮詮)이라 한다. 반대로 긍정적인 표현, 즉 ‘진리란 연기이다. 연기는 공이다’와 같은 것을 표전(表詮)이라 한다. 이와 같이 진리란 어떤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단순히 ‘이 일’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이것[這箇]’이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장경이 하루는 주장자를 들고 말하기를 ‘만약 이것[這箇]을 알면 일생의 참학하는 일이 끝난다’고 말하였다. 이때의 ‘이것’이란 단순히 주장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동국대불교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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