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할 데 없이 오묘한 보물인 보살은 모든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 인간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샤카족 마을에, 룸비니 동산에.” - 《숫타니파타》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날입니다.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시고, 6년의 고행 끝에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시어 45년간 법을 설하시다가 80세를 일기로 입멸하셨습니다.그러나 부처님은 단지 80년 동안만 이 세상에 머무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억겁의 세월동안 온갖 중생의 모습으로 세간에 몸을 나투시어 중생들을 위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며 거룩한 부처님 전에 치유의 등, 희망의 등, 지혜의 등을 밝힙니다.우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멀리 터널의 끝에서 밝은 빛이 보이고 있으나, 그 빛은 마음처럼 빠르게 다가오지 않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공덕에도 유루(有漏)와 무루(無漏)가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유루법이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 즉 유한한 법을 일컫습니다. 무루법이란 영겁이 다하도록 변치 않는 것, 즉 무한한 법을 일컫습니다.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모두 유루법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없어지므로 유루에 속합니다. 하지만 자성(自性)을 반조(返照)하여 원력을 세원 뒤 남을 위해 자비행을 실천하면 그 공덕은 세세생생 사라지지 않으므로 무루에 속합니다.
올바른 기도는 흔들림 없는 마음, 즉 일념(一念)으로 불보살님께 지극하고도 극진하게 정성을 다해 올리는 기도입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입니다.기도에는 중요한 차례가 있습니다.첫째, 기도를 올릴 때는 참회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참회란 몸〔身〕, 입〔口〕, 마음〔意〕으로 지은 삼업(三業)을 뉘우치는 의식을 일컫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인생사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닥친 삶의 문제는 결국 과거 자신이 지은 과보로 말미암아 생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길었던 장마가 끝났다. 지난 몇 년간 폭염과 마른장마가 이어지더니, 올해는 긴 장마와 집중호우가 닥쳤다. 전 세계도 오랜 가뭄과 이로 인한 산불, 예측 불가능한 태풍과 홍수 같은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 변화는 이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일상이 되었다.지구라는 터전에 기대어 살아가는 뭇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할 것을 강요하는 욕망과 무지가 근본 원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은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를 초래하고,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는 인류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세상살이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졌고, 인류가 앞으로 헤쳐가야 할 세상은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전염병이 몰고 온 우울한 풍경이다.병(病)은 늘 인류와 함께해 왔다. ‘병듦’이 태어남〔生〕, 늙음〔老〕, 죽음〔死〕과 함께 삶의 네 가지 고통〔四苦〕 중 하나인 걸 보면 병은 인생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자 요소임을 알 수 있다.어느 날 나쿨라라는 장자가 부처님께 “늙고 병들어 근심과 괴로움이 많다”며 가르침을 청했다. 부처님은 “몸에 의지하면 잠시 동안만 즐거움이 있을 뿐”이라며, “몸에는 병이 있더라도 마음에는 병이 없게 하라.”고 당부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태어난 직후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은 뒤 ‘하늘 위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온 누리가 고통으로 가득하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치셨습니다. 탄생게는 뭇 생명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선언이었고,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셨습니다.부처님은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아니하고 괴로움을 함께하는 도반으로서 항상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어디에서나, 우리가 고뇌하고 있는 어느 순간에도 외면한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항상 우리와 더불어 있고,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합니다. 착한 친구로서, 스승으로서, 또한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5월이 돌아왔다. 따뜻한 기온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산천은 푸르름을 더해간다. 그러나 현실은 당나라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의 한 구절처럼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春來不似春〕” 계절이다. 코로나19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은 탓이다. 불교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러 법회와 기도, 행사가 미루어졌거나 취소됐다. 올해 봉축법요식도 윤 사월초파일(5월 30일)로 미루어졌다.부처님의 가르침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는 연기설(緣起說)이 근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하고 관계하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연기의 가르침을 외면한 결과이다. 나와 이웃,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돌아보지 않고, 물질적 욕망과 편리함을 쫓아 생명을 해치고, 자연환경을 파괴해 온 업보가 코로나19 사태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면서 전염병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이웃을 지키려는 여러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도 그중 하나다. 서로 만나는 일을 줄여 전염병 확산을 막고 예방하자는 것인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영세사업자는 폐업에 몰리고 있고, 취약계층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다. 제석천의 궁전에 걸려 있다는 인드라망의 그물코처럼 가족, 마을, 직장, 종교단체 등 어느 것 하나 유기적으로 얽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웃이 고통 받으면 내 삶도 영향 받는 것은 서로 연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코로나19’가 우리나라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붐비던 거리와 상점은 한산해졌고, 반갑게 손잡던 사람들은 눈인사로 안부를 대신한다.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바꾸어 놓은 일상의 풍경이다.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 혐오의 그림자를 다시 드러냈다.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특정 국가와 지역을 비난하거나 폄훼하는 일이 생겨났다. 아픔을 함께하기보다 편견, 혐오에 휩싸여 차별심을 드러낸 탓이다.
한 해의 결과가 좋다면 더욱 분발하는 계기를 삼으면 되고, 좋지 않다면 그 속에서 실패의 원인을 밝혀 성공의 열쇠를 찾아내면 될 일이다. 성공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선물이다.《경율이상》에 “곡식을 얻으려면 마땅히 갈고 씨를 뿌려야 하며, 큰 부자가 되려면 마땅히 보시를 행해야 하며, 오래 살려고 하면 마땅히 큰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지혜를 얻으려면 마땅히 학문을 닦아야 하니, 이 네 가지 일을 행하면 그가 심는 바에 따라 그의 열매를 얻는다.”고 했다.12월은 한 해의 마무리하는 달이 아니라,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달이다. 물러섬이 없는 정진을 기대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거나 만족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현대사회는 물신주의(物神主義)가 팽배해지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불확실성을 담보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푼돈으로 복권을 사고 십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 힘겹고 고
대규모 가축 살처분은 육식문화가 가져온 폐혜 중 하나다. 육류 소비가 많아지면서 좁은 곳에서 수많은 가축을 기르는 공장식 축산이 성행하고, 치명적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대규모 살처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불살생의 원어는 ‘아힘사(Ahimsa)’다. 죽이거나 해치는 것 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생명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는 평화의 정신을 의미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제석천의 궁전에 걸려 있는 인드라망의 그물코처럼 서로 관계 맺고 의지하는 존재이다. 모든 존재의 고귀함을 알고 생명, 나아가 평화를 지키려는 불살생(아힘사)의 정신을 돌아볼 때이다.
경전을 읽는다고 해서 한 번에 그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한 권의 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통한다〔讀書百篇義自通〕”는 말처럼 뜻을 깨우칠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숙독완미(熟讀玩味)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숙독’은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는 것이고, ‘완미’는 뜻을 잘 생각하여 음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숙독완미’는 곧 익숙하도록 읽어 뜻을 깊이 음미하는 것이다.‘간경자 혜안통투(看經者 慧眼通透)’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의 경전을 읽는 이들 모두가 지혜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 가을 불자 여러분도 부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지혜의 눈이 활짝 열리기를 기원한다.
일본의 경제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다. ‘한일 청구권 협정’을 지키지 않는다며 지난달에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을 수출 규제하더니, 이달엔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탈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100여 년 전에는 군사력을 앞세웠다면, 지금은 경제력으로 굴복시키려는 것이 다를 뿐이다.우리가 지금 번영을 누리며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건 일제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선각자와 항일운동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금의 경제 침탈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선각자와 항일운동가의 정신을 계승해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자 광복이다.
한 줌 햇볕은 대낮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작은 촛불은 칠흑 같은 어둠을 환히 밝힌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작은 결심이 큰 빛을 발한다. 삶이란 끊임없이 배워가는 여정이다. 그러니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평생을 번뇌 속에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법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시절의 조류에 몸을 맡기는 것은 강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고 물결 따라 흘러가는 죽은 물고기의 삶과 같다.고된 삶이 눈앞에 놓이고 온갖 욕망이 유혹하여도 게으르지 않고,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삶이다.
“입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깨나니, 악한 말 때문에 사나운 마음을 일으켜 온갖 죄를 늘임으로써, 모든 재앙을 낳는다.”는 《제법집요경》의 말씀처럼 나쁜 말은 남보다는 자신을 더 파괴한다. 가짜뉴스도 다를 리 없다.“모든 등불 가운데 진실한 말의 등불이 제일”(《정법념처경》 )이라 했다. 말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나도 남도 고통 받지 않는 말, 도리에 맞는 말, 애정이 담긴 말, 진실한 말을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 걸림없는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온 법계의 모든 사람들을 두루 살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기하고 신기하구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여래의 지혜를 다 갖추고 있구나, 그러나 어리석고 미혹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구나.” - 《화엄경》 〈여래출현품〉 부처님께서 이 땅에 출현하심은 인류역사상 가장 크고 기쁜 일입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의 참다운 가치와 존엄성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다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후, 크게 외친 말씀은 “사람이 부처이다”.(一切衆生 悉有佛性)라고 하셨습니다.
“화단에 심은 연산홍은 봄이 되면 다시 연분홍 꽃을 피우는데, 한 번 간 사람은 움도 싹도 없습니다. 평생 먹이고 입히며 가꾼 몸뚱이가 초목만도 못 합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날, 어느 노보살이 먼저 떠난 거사를 그리면서 한 말이다. 북풍한설에 낙엽을 떨구고 생명을 잃은 듯 메말랐던 초목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니 한 평생 의지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건 인지상정이겠다. 하지만 봄마다 새싹을 틔우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초목도 태어나 늙어가고 언젠가는 죽어 없어지는 존재다.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이야 여기저기 옮겨 다닐 수 있지만, 평생 한자리만 지켜야 할 초목은 누가 제 몸을 자르려고 들면 도망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해야 한다. 그러니 그 처지가 사람보다 나을 리 없다. 《잡아함》 에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먹고 산다”며 걸식을 비난하는 바라문에게 세존께서 답한 게송이 있다. “믿는 마음은 씨앗이 되고, 고행은 비가 된다. 지혜는 보습이 되고, 부끄러움은 멍에가 된다. 바른 생각을 스스로 지키면 이것이야말로 좋은 농사꾼. 몸과 말과 뜻을 잘 단속한다. 진실로 수레를 삼고, 즐겁게 살되 게으르지 않으며, 정진하되 황폐하지 않게 하니 편안하면서도 새롭다. 우회하지 않아서 곧은 길, 근심 걱정 없는 곳에 도달한다. 이러한 밭갈이라야 감로의 열매를 맺고, 이러한 밭갈이라야 다시는 갈등을 받지 않는다.” 다시 봄이 돌아왔다. 새로 돋아난 싹과 화사하게 핀 꽃을 바라보며 젊고 건강했던 날을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시각각 사그라지는 내 몸을 관찰하며 더욱 정진의 채찍을 내리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진 스님 | 본지 발행인·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