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거나 만족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는 물신주의(物神主義)가 팽배해지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불확실성을 담보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푼돈으로 복권을 사고 십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 힘겹고 고된 세상살이에서 일확천금을 바라는 심정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뜻밖의 행운을 바라는 모습이 결코 올바른 삶의 태도는 아니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는데 갑자기 좋은 꽃을 얻을 수 없듯,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데 행운이 저절로 찾아올 리 없다.

《인과경(因果經)》에서는 과거의 삶을 알고자 하면 현재 삶의 과보를 보고, 미래의 자신을 알고자 하면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바로 보라고 하였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관자(管子)도“현재가 의문이면 옛일을 살펴보고, 내일을 모르겠거든 지난날을 돌아보라.”고 하였다. 일확천금을 쫓기보다 내가 머문 지금 이 자리에서 더욱 노력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보조 국사 지눌 스님은〈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에서“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난다.”고 했다. 넘어지는 입장에서 땅은 아픔이고 절망이지만, 일어서려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의지해야 할 존재이다.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는 것도,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도 모두 내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이다.

불교의 정진(精進)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경책(警策)이다. 삶이 힘들고 괴롭다 해도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