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교구본사 주지 스님이 선학원에 회의하러 간다고 대답한 내게 말했다. “적당히 타협해서 잘 해보라 하세요.” “종단에서 선학원을 해체하려는데 어떻게 양보할 수 있겠습니까?” 그 스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선학원 해체가 가능하기나 해요?” &ldq
가추(家醜)란 것은 ‘제 집안의 허물’되는 것이니 제 집안의 허물되는 일을 드러낸다면 누구나 다 불가하다고 생각하리라. 그러나 가추에는 두 가지 차별이 있으니 하나는 사소하고 비열한 일이요, 하나는 광대하고 특수한 일이다.어떤 것이 사소하고 비열한 일인가. 개인이 지은 일이 타인에게 파급되면 크게 수치스러운 일과 대중이 공동으로 지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진실의 힘은 어김없이 준엄하다. 국회가 ‘친일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 편찬을 위한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하자 이름 없는 민초들이 편찬기금 모금운동을 벌인지 11일 만에 목표액 5억 원을 달성했다고 한다. 하기야 일제치하 때도 독립자금을 낸 사람들은 지배층이나 재산가들이기보다는 일반국민들이었다. 당시 불교계도 예
【세상사】 식당에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 두고 간 신문을 펼쳤다. 논설위원의 칼럼을 읽다가 얕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내용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50에 지천명(知天命)한다는 공자(孔子)의 말씀은 ‘헛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갈수록 주변의 남성 동지들은 오히려 예전엔 없던 흔들림과 감성을 문득문득 분출한
윤후명 '둔황의 사랑'달빛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시간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아니면 서역 삼만리를 아득히 울어 온 공후 소리인가. 작가는 대개 창작 초기에 자신의 문학인생을 결정지을 명작을 남긴다. 이번에 소개하는 〈돈황의 사랑〉도 ‘윤후명식 글쓰기’의 틀을 완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후명식 글쓰기
“선학원뿐만 아니라 종단 형태의 모든 법인을 해산하고 종단에 귀속하는 걸 목표로 해요.”사석에서 내가 조계종의 한 인사에게 법인법 제정의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개인적인 소견을 말한 것인지 아니면 종단 핵심부의 생각인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으나 법인법을 들여다보면 그의 말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씨잡변≫은 조선건국의 설계자,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1398년(태조 7)에 저술한 불교비판서다.불교의 윤회설·인과설·화복설 등 15편의 글을 통해 세속의 신앙과 결부된 불교의 교설을 비판한 것과 인간의 마음(心)과 본성(本性)에 대한 불교적 관점의 오류를 비판하였다. 아울러 중국과 우리나라의 각 왕조가 불교를 섬
선학원의 창설과 중흥 속에는 적지 않은 스님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만공(滿空) 스님이나 용성(龍城)·만해(萬海) 스님처럼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선학원 창설을 주도한 남전(南泉,1868~1936)스님처럼 세간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납자(衲子)도 있다.남전 스님은 1868년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동에서 태어났다. 인근에 있
세상사 아무리 잘해도 욕먹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남의 얘기하는 것이다. 평가라는 것이 그 의도야 어떠하든 간에 결국 호불호(好不好)를 따지는 일이다. 호감이라는 것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보면 남의 얘기하는 것은 그 끝이 아름답기 어렵다. 사람의 한 살이가 바위 같지는 못해서, 저마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어떨지는 예단할 수 없고
선사에 의하면 우리는 망령된 반연(攀緣)을 여의면 곧 어엿한 부처가 되는 마음의 본래 성품을 망각하고 있다. 그 대신에 번뇌 덩어리의 가짜 마음[妄心]을 진짜 마음[眞心]인 줄 고집하면서, 자심(自心) 밖에 부처가 있고 자성(自性) 밖에 법이 있다고 고집하면서 불도를 구하려 한다. 그 결과 번뇌 덩어리와 고집스럽게 얽혀있는 망심(妄心)을 기반으로 하여 우주
금강신품에서는 부처의 법신을 금강에 비유하여 법신이 구족한 무량공덕을 설하고 있다. 앞의 〈장수품〉에서는 여래의 장수(長壽)하는 법(法)에 대해 설했다면, 이 〈금강신품〉은 여래의 장수하는 인(人)에 대해 설하였다. 또한 「장수품」에서는 여래의 영원한 수명을 설했다면〈금강신품〉에서는 여래의 영원한 몸을 설한다. 따라서 앞의 〈장수품
진실하여 결코 허망하지 않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설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1. 반야(般若)의 다양한 모습반야(般若)는 2종반야·3종반야·5종반야로 분류됩니다. 2종반야는 공반야(共般若)와 불공반야(不共般若)를 말합니다. 이는 판교(判敎)를 위한 구분입니다. 천태종에 의하면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지용(鄭之溶, 1902-1950)은 충북 옥천 출생으로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다. 해방 후 좌익 문학단체에 가입했다가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1930년대 한국문단을 대표하였던
우리나라 불교 영화에서 주로 많이 다루는 주제는 '승려의 길 찾기'입니다. 수행을 꼭 산중에서 해야 하는가, 세속에서 욕망과 부딪치면서 얻어가는 것들이 있지 않는가, 이런 양 극단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수행자들을 그리고 있으며, 또한 다른 방식의 수행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비교하는 형태로 영화가 구성된다고 봅니다.임권택 감독의 나 &
부처님오신날을 오신날을 전후해 대표적인 한국 불교소설인 김성동의 《만다라》를 소개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만다라》의 문학적 성취는 작가가 제재를 정확히 장악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정각(正覺)이라는 법명을 지니고 수행했던 승려출신인 까닭에 불교사상은 물론이고 사찰문화의 세부적인 것까지 몸소 체득해 알고 있었
삼국시대 촉(蜀) 땅이었던 사천(四川)에서 몽정차(蒙頂茶)가 중국 전역으로 그 명성을 드날리며 전파되어갈 때, 강남(江南)의 양선(陽羨)과 고저(顧渚)에서는 ‘자쟁차(紫箏茶)’의 명성이 일시에 전국을 강타하였다. 북송(北宋) 때의 채관부(蔡寬夫)가 지은《시화(詩話)》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당조(唐朝)의 차품(茶
“복(福)은 베풂에서 나오고, 덕은 겸손과 양보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복이란 원래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畐)’이 합쳐져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복의 어원은 “사람의 힘을 초월한 운수”라는 뜻과 “오붓하고 넉넉하다”는
1. 본각의 이익분황은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신론소/별기》 및 《보살영락본업경소》와 《열반경종요》 등에서 깨달음의 정의와 의미를 ‘일심의 신해성’과 함께 ‘본각의 결정성’으로 해명하고 있다. 그는 일심의 신해지성(神解之性)이 일심(一心)과 일심지원(一心之源) 사이의 ‘역동성’ 혹은 &lsq
올해 2월 말 서울시 용산구 철도회관 화단에서 연복사 중창탑비가 발견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행방불명되었던 유물이다. 1392년 우여곡절 끝에 중창된 연복사 5층탑은 불교를 둘러싼 왕조교체기의 다양한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연복사는 고려 초기 수도 개경에 창건된 사찰이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한때는 전각 천 칸에 세 개의 연못과 아홉
선학원이 종이신문 을 창간했다. 보시다시피 풍성한 내용을 싣지도 못하였고 심도 있는 기사를 싣지도 못했다. 편집이 세련되지 못할 뿐 아니라 눈길을 끄는 광고조차 없다. 보시는 분에 따라 시대에 뒤졌다고 보실 수도 있고, 촌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들 멋을 모르겠습니까, 맛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의 여건이 그러니 이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