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이 틀린 알림판 또는 보람판 이야기를 했는데, 익은 진서말로 하자면 잘못된 ‘표지판’ 이야기가 되겠다. 그런데 이 표지판이 골칫거리이니, 많은 이들이 ‘표식판’이라고 읽고 쓰는 것이다. 몇 해 전 세계에서도 가장 좋은 공항으로 연달아 뽑혔다는 인천공항에 갔던 적이 있는데, 손짐을 찾기
이 중생이 망상번뇌하고 있는 곳을 가리켜 사람들은 벚고개라고 부른다.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십 리 안팎에 사는 사람들인데~. 자냥스럽게 말하면 우벚고개이니, 십 리쯤 밑에 아래벚고개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돌구멍 안 서북쪽 곧 인왕산 가까운 곳 동네를 우대라 부르고 동북쪽인 동대문과 광희문쪽 동네를 아래대라고 불러왔듯이 우벚고개가 맞는데, 어쩌다 타 보
“시방 사람들은 모두 이욕(利慾)이 서로 얽혔으며 심성이 포악하여 번뇌에서 깨어나지 못하므로 좋은 것을 보면 침을 흘리고 고운 여인을 보면 음심을 품으나 이루지 못하고 바둥거리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먹고싶은 것이 있으면 곧 먹고 색을 보아도 곧 취하므로 그 뒤는 꼭 여름날 소나기 오는 것과 같이 순간에 몰록 잊어버려 마음이 장편하도다.&rdqu
“성인이 나오셨다!” “미륵부처님이 내려오셨다!” 개경 하늘이 몇 달 동안 자욱한 티끌안개로 뒤덮였으니-난생 처음 내 땅을 갖게 된 농민들과, 노비라는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천민들과, 배보다 배꼽이 큰 장리쌀 장리돈에 코를 꿰어 죽지못해 살아가던 빚진 죄인들이 발을 굴러 뛰어오르고 손뼉 쳐 울며 입을 모아 부르짖
묘청(妙淸)만큼 슬픈 스님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역사를 말한다는 먹물들한테서 ‘요망한 중놈’이었다고 우집는 꼬집힘을 받고, 신단재(申丹齋)한테서 “이처럼 제멋대로 날뛰고 설치는 행동을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내부가 공고해지고 그 실력이 웅대하고 두터워진 뒤에 발표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꼬집힘을 받고 있다. 글
이른바 양극화시대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삶이 즐겁고 재미있어 죽겠다고 늴니리 지화자를 부르며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벤츠’타고 달리는데, 한쪽에서는 삶이 고달프고 팍팍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캄캄한 골목길을 비틀비틀 걸어간다. 모든 책임은 다 개인한테로 돌아간다. 배가 고픈 것도 개인 탓이고, 몸이 아픈 것도 개인 탓이며, 무직자가
흑백이 없는 세상이다. 좌도 없고 우도 없으며,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는데, 아름다움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니,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부처님의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경제가치 중심뿐이니, 돈이 모든 것의 주인이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때문이다. 이른바 자본주의 극성시대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언턱거리가 있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