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이 없는 세상이다. 좌도 없고 우도 없으며,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는데, 아름다움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니,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부처님의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경제가치 중심뿐이니, 돈이 모든 것의 주인이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때문이다. 이른바 자본주의 극성시대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언턱거리가 있겠으나 이 중생은 그것을 ‘백제 카르마’와 ‘궁예 카르마’가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이른바 외인과 내인이다.

“백줴 이게 뭔 날리댜?”

5·18쿠데타를 일으킨 군사깡패들이 광주 인민들을 마구 죽일 때 충청도 내포(內浦)쪽 사람들이 했던 말로, ‘백줴’는 ‘백제’ 내포말이다. 이른바 국어학자들은 ‘백줴’가 ‘벌건 대낮’을 가리키는 ‘백주에’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말밑이 그렇다고 본다.

“백줴 왜 이런댜?”
“백줴 그런 말은 허덜말어.”
“백줴 개갈안나넌 소리 그만 두라니께.”

죄 ‘님이 계신 곳’, 곧 임존성(任存城)이 무너지고 나면서부터 비롯된 말들이다. 이미 쫄딱 망해버린 백제를 입에 올려봐야 무슨 쓸 데가 있겠느냐며 애 끓이던 그때 사람들 마음은 1천356년이 지난 이제까지도 백제 테두리 사람들 가슴속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하마 없어져 버린 백제를 말해 봐야 애만 탈 뿐이니 백제 이야기는 숫제 입에 올리지도 말자는, 바랄모가 끊어진 데서 오는 긴 한숨소리인 것이다.

“구다라나이!”
천 척 배를 몰고 할아버지나라 건져 내려 온 2만7천 싸울아비들이 이제 전북 부안 앞바다인 백강싸움에서 대당 제국 병대한테 깨끗이 진 다음, ‘왜’라는 츱츱한 이름 버리고 ‘일본’이 된 열도백제에서 생겨난 말이었다. 모국인 반도백제가 망했으니, 할아버지 무덤에 참배도 저쑵지 못할 비류백제(沸流百濟)를 말해봤자 무슨 쓸 데가 있겠느냐며 자탄에 빠졌던 사람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쓸데없다’는 일본말이 생겨나게 된 까닭이라고 한다. ‘구다라나이’라는 말은 ‘값없다’, ‘시시하다’, ‘보잘 것 없다’, ‘쓸모없다’, ‘보람없다’라는 뜻이란다. ‘구다라’는 ‘백제’이고 ‘나이’는 ‘없다’는 말이라니, ‘백제는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백제것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내포 언저리 백제 울안 사람들은 이제도 이렇게 말한다.
“백줴 그래봤자 글력만 팽긘다니께.”

우리는 우리 겨레 뿌리가 되는 옛 할아버지들이 처음 만든 나라가 서력기원 2천3백33년 전 세워진 고조선이라고 알고 있다. 그것도 똑바른 이름은 알 수 없으므로 그냥 옛조선, 곧 고조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쪽 기록을 보고 말이다. 그래서 고조선에서 삼한(三韓)이 나왔고 마한·진한·변한이라고 불리우던 삼한이 자리잡았던 곳은 아리수 아랫녘인 충청·전라·경상도라고 알고 있다. 이 삼한으로부터 고구리(‘려’가 아니고 ‘리’로 읽음. ‘고구리’ ‘고리’의 ‘麗’는 ‘아름다울 려’가 아니라 ‘나라이름 리’로 읽어야 됨=필자주) ·백제·신라라는 삼국시대가 나왔는데, 고구리는 만주대륙에서 아리수 윗녘까지를 아우르면서 한족과 동북아시아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다투었고, 백제·신라는 동서로 나뉘어 서로 싸우다가 나당연합군한테 백제와 고구리는 무너졌는데, 신라만 대동강·원산 아랫녘을 차지하고 있다가 고리와 조선으로 이어져 오던 끝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으로 쪼개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마진변 삼한이 자리잡았던 데가 발해만 언저리였다는 것이다. ‘삼한’이라는 말 제몸이 그곳을 다스리던 세 목대잡이를 가리키는 말이지 나라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한’이 아니라 ‘삼칸’으로 우두머리 목대잡이를 말하는 ‘칸’이 ‘한(韓)’ 또는 ‘한(汗)’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칸’은 만주말과 몽골말로 군장(君長), 곧 황제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렇게 놀라운 말들이 실려있는 것은 《흠정만주원류고》라는 책이다.

천체물리학을 갈닦는 어떤 학자가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신라쪽 날씨 적바림을 컴퓨터로 맞춰보았다고 한다. 여러천년 전 기상관계 현황들도 한 치도 틀림없게 맞춰볼 수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곰나루와 서라벌쪽 날씨와 맞지 않더란다. 그래서 에멜무지로 중국대륙 쪽으로 옮겨보았더니 딱 떨어지게 맞더라는 것이다. 백제·신라 원둥치가 대륙쪽에 있었다는 틀림없는 본메본짱이 되는 것이다.

이제 산동성·산서성·직예성에서 장강 아랫녘까지 대륙백제 울안이었다고 한다. 백제가 다스리던 군(郡)은 50~60인데 소정방(蘇定方)이 얻은 것은 겨우 37군이어서 아직 그 5분의 2를 얻지 못했다고 하는 백제는 대원제국 때까지 이어졌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제까지 배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므로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설가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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