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양극화시대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삶이 즐겁고 재미있어 죽겠다고 늴니리 지화자를 부르며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벤츠’타고 달리는데, 한쪽에서는 삶이 고달프고 팍팍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캄캄한 골목길을 비틀비틀 걸어간다.

모든 책임은 다 개인한테로 돌아간다. 배가 고픈 것도 개인 탓이고, 몸이 아픈 것도 개인 탓이며, 무직자가 되고 실업자가 되는 것도 다 개인 탓이므로 세상살이가 힘든 것은 모두 네가 못나서 그런 것이니, 흙수저 물고 태어난 네 운명을 탓하라고 한다. 너만 똑똑하고 잘났으면 얼마든지 교수도 될 수 있고 사장도 될 수 있고 장군도 될 수 있고 국회의원도 될 수 있고 변호사 검사 판사도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른바 정토신앙이라는 것이 널리 펴졌던 천 년 전 신라 때와 똑같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없는 세상이다. 되기가 어려운 만큼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니, 먹물들이 즐겨 쓰는 말투를 빌리자면 이른바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언턱거리가 있겠으나, 나는 그것을 ‘궁예카르마’가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얼락배락한 궁예 삶을 이야기 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 이야기만 하겠다. 그 출신성분과 그가 썼다는 20여 권 불경에 대한 것이다.

궁예를 신라 왕손으로 만든 것은 왕건이었다. 궁예가 원수 삼던 신라를 끌어안은 바탕 위에서 후삼국일통을 이뤄낸 거룩한 난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루박고자 궁예를 굳이 신라왕손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별볼일 없는 출신성분이지만 훌륭한 새나라를 세우겠다는 거룩한 뜻에 손잡았으나 끔찍하게 사나운 정치를 하는 것을 보다 못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일으킨 혁명’이었다는 것을 깍듯하게 비다듬고자 신라왕손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궁예 진짜 출신성분은 무엇일까?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신라 끝 무렵 들불처럼 일어났던 농민반란군 가운데 한사람 자식으로 보인다. 내남적 없이 똑고르게 살 수 있는 평등세상을 만들고자 애태웠던 그 삶으로 봐서 그렇다. 아마도 지리산을 두리로 해서 일떠섰던 ‘붉은바지 농민군’ 자식이었을 것이다. 썩고 병든 신라왕실을 둘러엎고 새세상을 열어젖히고자 일떠선 아버지 미좇아 다니며 관군한테 돌팔매에 이징가미도 날리고 화살낱이라도 나르다가 토벌대에게 쫓기던 끝에 한쪽 눈을 잃었을 것이며, 그래서 지리산과는 멀리 떨어진 강원도 영월에 있던 세달사라는 화엄종 절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미륵사상으로 쇠덮개 두른 궁예혁명군은 싸우는 족족 이기는 상승부대였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미륵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무치게 애타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장군과 싸울아비들이 한마음으로 한몸되어 미륵다라니 모뽀리하며 앞으로 나갔으니, 천하무적이었다. 궁예가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비뢰성 싸움에서였다. 양길을 역사무대에서 사라지게 만든 비뢰성은 이제 경기도 양평땅으로 보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치는 양평 두물머리 언저리로, 이 싸움을 이겨내면서부터 궁예는 비로소 중부권 젖줄인 아리수물길을 품안에 넣게 된 것이었다.

궁예가 “스스로 미륵부처라 일컬으며 머리에 금고깔을 쓰고 몸에는 방포를 입었으며 맏아들은 청광보살이라 하고 다음아들은 신광보살이라 하였다”는 것을 가지고 마치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려는 과대망상증환자 쯤으로 깎아내리고 있는데, 이것은 석가와 미륵의 다름에서 그 까닭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석가는 현세 곧 이제 여기에 온 부처이고, 미륵은 내세 곧 앞으로 올 부처를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따논자리를 지켜내려는 수구기득권 세력이 받드는 부처가 석가모니이고, 몰리고 쏠려 죽지못해 살아가는 90퍼센트 위 인민대중이 받드는 부처가 미륵이라는 말이다.

22년 동안 황제자리를 지키며 미륵대제국을 열어가고자 신 벗을 사이 없이 냉가슴 앓던 궁예황제를 벼랑 끝으로 내몬 《궁예미륵경》에는 어떤 알맹이가 들어 있었을까?

한마디로 줄여 무상몰수 · 무상분배가 《궁예미륵경》 경제정책 고갱이였을 것이다. 모든 논밭을 나라 것으로 하여 농군이 농사지을 수 있는 일힘과 식구 수에 따라 똑같이 노느매기하자는 것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생산수단을 고르게 나눠가짐으로써 헐벗고 굶주리거나 가멸진 높낮이가 없어지고, 그럼으로써 고루살이가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이런 꿈나라를 만들겠다는 궁예를 기득권 지배계급에서 수구대연합을 이뤄 되받아쳐 오니, 왕건쿠데타가 일어나게 된 뒷그림이다. 천년 넘게 선종스님 궁예가 ‘나쁜놈’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소설가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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