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생이 망상번뇌하고 있는 곳을 가리켜 사람들은 벚고개라고 부른다.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십 리 안팎에 사는 사람들인데~. 자냥스럽게 말하면 우벚고개이니, 십 리쯤 밑에 아래벚고개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서도 돌구멍 안 서북쪽 곧 인왕산 가까운 곳 동네를 우대라 부르고 동북쪽인 동대문과 광희문쪽 동네를 아래대라고 불러왔듯이 우벚고개가 맞는데, 어쩌다 타 보게 되는 마을버스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에서는 꼭 위벚고개라고 말한다.

‘절 아닌 절’이라는 뜻으로 이 중생이 붓으로 써서 새겨놓은 ‘비사란야(非寺蘭若)’ 빗돌 나서면 청운면에서 양동면으로 넘어가는 우벚고개였다. 찔레꽃 내음 눈물 나고 칡꽃향기 숨막히며 산나리꽃 가슴 아픈 좁좁한 외자욱 산길이어서, 느리게 포행하며 화두 들기 딱 좋은 곳이었다. 양평삼사에서 결사항전하던 승군들이 왜병에게 쫓겨 두물머리 건너 만주로 갈 때 제천에 있다는 호좌창의진 찾아 몇 사람 승병들이 의병과 함께 넘어갔던 우벚고개였다. 가슴 미어지는 그 ‘승병길’이 얼마 전 이차선 콘크리트길로 덮여버림으로써 ‘화두’ 또한 끊어져 버리었으니, 억!

불타버린 양평삼사와 함께 전사하신 승병들께 향불 한 점 사뤄올리는 마음 매홉은데~ 시방도 봄날이면 비사란야쪽 산마루에 물너울처럼 일렁이는 벚꽃들에 숨막히니, 예로부터 벚고개라고 불리어 온 까닭이다. 그런데 얼마 전 면인지 군인지 어느 행정관서에서 일주문에 무슨 철판으로 된 딱지를 달아 놓았는데, 손바닥만한 긴세모꼴에 이렇게 적혀있다.

벗고개길
baek dong-gil
74-19

어어? 굳이 국어사전까지 찾아보았지만 나무이름에서 온 것이므로 ‘벚고개’가 맞는다. ‘벗고개’라면 동무고개 또는 친구고개가 되겠는데,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주문에 달아 놓은 주소판만이 아니라 저 아래 마을 곁을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세워놓은 알림판에도 ‘벗고개천’으로 되어 있다.

우벚고개 너머가 양동면이다. 본디 지평읍내 위가 되므로 상동면이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군면폐합에 따라 양동면이 된 곳이다. 양평읍내쪽에서 오다 보면 청운면 거진 다 와서 양동면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너럭바위택이나 됨직한 바윗돌에 마을을 알리는 글귀가 오목새김 되어 있으니-<의향의 고장>

의향(義鄕)이라면 의병(義兵) 옛살라미, 곧 의병의 고향이라는 말일 터인데- 그렇다면 ‘의병의 고향의 고장’, 다시 말하면 ‘의병의 고향의 고향’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야말로 ‘역전 앞에 처갓집’이 되는 것이다. 빗돌을 세운 원몸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말이 안되는 적어두기이다.
“질은천량 지녀 즈런즈런하던 탕창짜리들은 의병을 내쳤고, 진잎죽에 짠지쪽일망정 보리곱살미 한술이라도 여퉈주는 것은 물 탄 재강에 먼산나물로 지옥살이 이어가던 농투산이들이었지요. 지평면은 물론이고 ‘의향의 고장’이라는 문장 안 되는 빗돌 세워놓은 양동면에 김백선 장군 자취 알려주는 알림판도 없고 알림표도 없으며, ‘역사양평’을 자랑한다는 숱한 알림책자며 좀책 그 어디에도 김백선 장군 성명삼자는 없습니다.”

<녹색평론>이라는 생태인문잡지 2010년 5·6월호에 내보였던 ‘용문산 총댕이 김백선 장군’이라는 글 끄트머리에 붙였던 글이다. 어언 일곱 해가 지나갔지만 벗들은 여전히 여여부동(如如不動)이다. 양평군에 그 글을 읽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무슨 움직임이 있을 줄 알았다. 그 빗돌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으며,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를 하게 되면 무얼 먼저 하시겠는지요?”
제자가 여쭈었을 때 공자(孔子)가 했던 대답이다. 굳이 공자님까지 찾을 필요가 없다. 불교 핵심윤리 가운데 하나인 팔정도(八正道)를 보면 되겠다.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바르게 말하자는 정어(正語)말이다.

‘의향의 고장’이라는 말을 한 김에 아래위로 중복된 ‘겹말’ 몇 가지를 들어보면-
논밭전지·사시사철·문창호지·새신랑·허연백발·긴장죽·짧은단장·젊은소년·늙은노파·넓은광장·큰대청·속내의·겉외모·국화꽃·계수나무·생채나물·연시감·청천하늘·조수물·양지종이·사기그릇·마메콩·모찌떡·뽀이아이·뻐쓰껄계집애.

긴단장·작은대청·발수건·머릿수건·○○회사사장·○○학교교장·황희황정승·이완이대장 같은 겹말은 숫제 농본주의 전통사회에서 쓰던 애교로 넘어가야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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