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나오셨다!”
“미륵부처님이 내려오셨다!”

개경 하늘이 몇 달 동안 자욱한 티끌안개로 뒤덮였으니-난생 처음 내 땅을 갖게 된 농민들과, 노비라는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천민들과, 배보다 배꼽이 큰 장리쌀 장리돈에 코를 꿰어 죽지못해 살아가던 빚진 죄인들이 발을 굴러 뛰어오르고 손뼉 쳐 울며 입을 모아 부르짖는 소리였다. 산과 내로 경계를 삼고 있던 지주들에게 개경은 15일, 외방은 40일 안에 자진신고하게 하여 두 달 안에 토지개혁을 끝낸 신돈이었다. 이것을 거울삼아 7백 여 년 뒤 토지혁명을 이뤄냈던 것이 해방 다음 해 3월 5일부터 열흘 안에 신고를 받아 3월 말까지, 그러니까 25일 만에 끝내버린 평양정권이었다.

이런 불세출의 혁명가를 정사(正史)라는 이름의 이른바 모든 역사책과 교과서 그리고 문학작품이며 텔레비전, 방송 연속사극에 이르기까지 ‘무식하고 요사스러운 중놈’으로 그려지고 있는 신돈이다. 조선왕조 5백년의 원죄인 신돈(辛旽)은 그러나 하산한 뒤 이름이고, 절에서 이름은 변조(遍照)이니-두루 변, 비칠 조. 변조법계(遍照法界) 제중생(諸衆生)이라는 장엄염불 한 자락처럼 시방세계 중생들에게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겠다는 간절한 비원(悲願)을 담고 있는 이름인 것이다.

그때에 유행하던 도참사상인 《도선비기》에 보면 ‘진사성인출(辰巳聖人出)’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진년(辰年)과 사년(巳年) 사이에 성인이 나온다는 말인데, 신돈이 공민왕 사부가 되던 해가 을사년(乙巳年)이다.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이 지닌 의미는 한마디로 토지개혁과 인간해방이다. 나라 안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농민을 비롯한 기층인민들 피와 땀을 빨아먹고 있던 한줌도 못되는 권문세족들 물적 토대를 그 뿌리에서부터 뽑아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압박과 설움에 울부짖고 있는 인민들을 해방시키자는 것이었다. ‘사람의 땅과 자유의 나라’로 만들어 그렇게 밑에서부터 다져진 겨레힘으로 고구리 옛 땅을 되찾아내자는 것이었다. 신돈이 평양으로 서울을 옮길 것을 강력히 주장했던 까닭이 다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이 쥐고 있는 권력의 물적 토대인 토지를 빼앗기게 된 권문세족들이 순순히 밥그릇을 내놓을 이치가 있는가? 원나라가 비록 쇠약해지기는 하였으나 고리한테 주는 영향력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원나라에 등을 댄 권문세족들은 서로 힘을 모아 중소지주 출신 사대부 계급과 동맹을 맺으면서 공민왕에게 대항하고 신돈에게 반격을 가한다. 신돈 도움으로 중앙 정계에 뿌리를 내리게 된 신진 사대부계급에서 신돈한테 칼끝을 들이대게 되는 것 또한 ‘밥그릇 싸움’ 이치이다. 불교와 성리학(性理學) 차이이기도 하고. 여진족에게 밀려 장강 이남으로 쫓겨가게 된 한족이 자구책으로 내세운 세계관이 바로 성리학 곧 주자학이며.

이에 독자적인 세력기반이 없었던 급진 개혁주의자 신돈은 실각, 처형되고 그 뒤 공민왕 또한 권력투쟁 제물이 되어 암살되고 말았으니, 전배 궁예와 묘청 뜻 이어 나라체제를 새롭게 정비한 다음 고구리 옛 땅을 다물(多勿)하겠다는 큰 뜻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변조 스님 신돈 죽음으로 우리 민족 북진 의지는 꺾여지고, 고리는 막을 내린다. 고리시대 역사를 엮어낸 이들 지상명제는 이성계한테 민족사 법통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배암발 한마디.
충북 영동에 가면 영국사(寧國寺)라는 옛절이 있다. 영국사 뒷산이 천태산(天台山)인데, 그때에는 지륵산(智勒山)이라고 하였다. 슬기로운 미륵뫼였던 것이다. 이곳은 변조미륵을 미좇던 미륵패승려들 제바닥으로 변조미륵을 구하려는 몇 차례 움직임이 있었고, 그래서 서둘러 목을 잘라 버렸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몰사죽음 당하였는데, 뒤따르는 미륵패들이 세웠을 것으로 짐작되는 ‘백비(白碑)’가 그 미륵뫼 자락에 세워져 있다.

이성계 역성쿠데타가 열매를 맺으면서 주자이데올로기에 쫓긴 불교는 저자를 떠나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게 되는데, 이때부터 ‘당취(黨聚)’라는 불교비밀결사체가 움직이기 비롯한다. 지륵산 미륵패가 땡추 첫한아비이고, 그 목대잡이가 바로 신돈이었다.

봉건통치배, 곧 부당하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 마군이들에게 꺾여진 궁예와 묘청과 신돈, 그리고 당취 곧 땡초스님네들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덧붙임 : 곁방에서 불난다고 이른바 ‘최순실 사태’로 입질에 오르게 된 변조스님이시다. 따디미 최퇴운과 선무당 최순실 부녀를 신돈보살마하살과 견주는 이른바 집권당 국회의원이며 종교문제연구가며 정치평론가라는 이들인데, 스스로 ‘역사에 판무식꾼’임을 자랑하는 꼴이니, 우리겨레 역사에서 맨처음 경제혁명과 인간혁명을 이뤄냈던 불세출 혁명가가 바로 변조 스님 신돈보살이었던 까닭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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