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적폐 청산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대중들이 손피켓을 흔들고 환호하고 있다.

굵은 빗방울도 대중의 적폐 청산 염원을 외면하지 못했다. 오후 내내 쏟아지던 빗방울은 촛불법회가 시작되기 전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치고, 푸른 하늘까지 언뜻 언뜻 내비쳤다. 사부대중의 발걸음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이어져 1,200여 명이 넘는 동참대중이 보신각 광장을 가득 매웠고, 포털사이트 다음의 실시간 검색에서는 ‘보신각 촛불법회’가 1위에 올랐다.

청정승가공동체구현과종단개혁연석회의와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가 주최한 ‘조계종 적폐 청산 제5차 촛불법회’가 24일 오후 6시 30분 열렸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촛불법회는 이전 촛불법회와 마찬가지로 1부 문화공연과 2부 촛불법회로 나뉘어 진행됐다. 문화공연에서는 뮤지컬 가수 이수진 씨와 가수 송병희 씨가 촛불법회 분위기를 돋웠다.

“불교 중흥의 횃불을 들어야 할 시점을 맞았다.”

이날 촛불법회의 하이라이트는 원인 스님(김천 수도암 선원 회주)의 법문이었다.

스님은 “수좌들이 세상일에 관심을 접고 산중에서 수행만 하고 살다보니 한국불교가 위기에 빠져 들었다”고 탄식하고, “사부대중이 함께 깨어나 1700년 불교 중흥의 횃불을 들자”고 말했다.

스님은 “잘못된 것을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은 불의에 동의하는 것과 같다”며, “법을 위해 몸을 잃는 각오로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개혁 방안으로 △재정 통합 △권승 방지 △은처승 예방 △은상좌제도 폐지 △종단개혁위원회 설치 등 5가지를 제안했다.

스님은 “부처님 법에서는 평등공양(平等供養) 등차보시(等差布施)라 했는데, 지금 한국불교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라며, “사찰재정을 통합해 스님들이 수행과 포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또 “부처님은 오욕락을 극도로 경계하셨는데, 언제부턴가 총무원장, 종정, 본사주지를 하겠다며 명예를 좇는다고”고 권승들을 비판하고, “종회를 해산해 절감한 예산을 승가복지에 투입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원인 스님(김천 수도암 선원 회주)이 법문하고 있다.

이어 “수행승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재정 관리는 법사들에게 맡기면 된다. 계율을 지키지 못할 사람들은 법사승이 되면 된다”며 은처승 예방을 강조했다.

스님은 은상좌 제도의 폐해도 지적했다. “한국불교의 은상좌 제도는 패거리 문화, 문중 패악을 낳는다”는 스님은 “은상좌 제도를 폐지하고 수계에서부터 열반까지 종단이 복지를 책임지면 은사 역할은 크게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님은 끝으로 종단개혁위원회를 설치해 한국불교 중흥의 밑거름을 될 제도를 만들고, 개혁을 상시 추진·점검할 것을 제안했다.

대중들은 원인 스님이 법문하는 중간 중간 박수를 치며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크게 호응했다.

원인 스님의 법문에 앞서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무대에 올라 ‘여는 말씀’과 ‘연대의 말씀’을 했다.

박병기 교수는 “우리가 바라는 불교는 상식적이고 부끄럽게 하지 않는 불교”라며, “스님에게는 청정비구의 수행정신이 통용되는 불교, 재가자에게는 일상의 삶에서 청정한 삶을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불교가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을 기점으로 부끄럽지 않은 불교, 절에 가고 싶은 마음을 내게 하는 불교, 스님을 찾아뵙고 싶은 마음을 내게 하는 불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적폐 청산을 위한 종교인과 불자, 기독교인, 사부대중, 민중들의 노력이 세상을 바꾸는 근본”이라며, “종교가 바뀔 때 아름답고 멋진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 다름을 인정하고 웃으며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법회는 이경규 학생(동국대 문예창작 16)과 송재형 용주사신도비대위 사무총장, 문영숙 씨의 자유 벌언, 가수 이성호 씨의 공연, 문지연 참여불교재가연대 간사의 ‘발원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 조계사 건너편 도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불자들.
▲ 거리행진에 나선 불자들이 조계사를 향해 도로를 건너고 있다.
▲ 명진 스님이 촛불법회 동참 불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명진 스님의 인사말에 호흥하고 있는 불자들.
▲ 단식 동참을 선언한 효림 스님이 쪽지에 적어온 ‘단식을 시작하며’.
▲ 촛불법회에 동참한 불자들이 조계사 앞에서 총무원 청사로 쓰이고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향해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석가모니불 정근을 끝으로 거리행진에 나선 동참 대중은 1~3차 촛불법회 때처럼 우정국로를 따라 가며 ‘적폐청산, 자승 OUT’ 구호를 외쳤다. 행진 대열이 모두 조계사 일주문 앞에 다다르자 동참 대중들은 한꺼번에 명진 스님 단식장이 있는 우정총국 앞으로 도로를 건넜다. 동참 대중은 ‘적폐 청산 자승 퇴진’ 구호를 연호했고, 이윽고 조계종 적폐 청산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명진 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진 스님은 “이곳은 3년 전 적광 스님이 끌려가 무차별 폭행을 당했던 자리”라며 “적광 스님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폭행한 스님들은 종단 요직을 꿰차고 있다. 이러한 자들의 행태가 멈춰질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이어갈 것”라고 밝혔다.

명진 스님의 발언이 끝난 뒤 마이크를 넘겨받은 효림 스님(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전 의장, 세종 경원사 주지)은 명진 스님과 함께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스님은 “지금 조계종에는 공금 횡령, 금권선거, 도박, 은처, 폭력 등의 적폐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저도 오늘부터 명진 스님과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효림 스님 발언 직후 동참 대중은 그 자리에서 사홍서원을 끝으로 5차 촛불법회를 회향했다. 조계종 적폐청산 6차 촛불법회는 31일 오후 6시 30분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다.

한편 조계종적페청산시민연대는 이날 촛불법회에 앞서 오후 6시 기자회견을 열어 “자승 총무원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개입했다”며 “조계종 선거법 위반으로 호법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민연대는 “24일 불교광장 소속 종회의원 8인이 자승 원장의 선거 개입 중단을 촉구했고, 자승 원장이 특정 승려를 원장 후보자로 내세우기 위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한 것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며, “조계종 선거법 제7조 1항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하고 명백히 선거에 개입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시민연대는 “호법부의 객관성 있는 철저한 조사와 결과 발표를 기대한다”며, “이번 호법부 고발 조치는 한국불교가 적폐 청산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어 종단 내 중요한 사법절차”라고 밝혔다.

시민연대는 이튿날 호법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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