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걀링의 웅장한 나팔 소리로 티베트 새해 기도를 올리는 쫄라캉 남걀사원 겔룩빠 승려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9)는 그의 생애 처음으로 외국에서 티베트 새해 로사를 맞았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방미 일정을 소화중인 달라이라마의 새해맞이 행사는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었지만 이미 인도 시각으로는 저녁이었다. 마치 안정된 티베트 망명정부 반세기 체제를 전 세계에 공고하려는 듯한 정치적 인상도 풍겼다. 달라이라마의 부재 속에서 다람살라는 3월 2일 티베트력 2141년 나무말의 해를 시작했다.

검푸른 새벽, 동트기 이전부터 쫄라캉 남걀사원으로 향하는 티베트인들의 발길은 분주하다. 티베트 본토에서 ‘달라이라마의 귀환’을 부르짖으며 126명에 이른 분신으로 그 어느 해 보다 암울한 기운이 감돌던 지난해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새 해 첫 날 만큼은 저마다 기분을 내 보려는 듯 비단으로 지은 전통 옷에 해당 출신 마을을 상징하는 산호 장신구와 모자로 한껏 멋을 낸 이들로 사원 안은 들뜬 기운이 감돌았다. 삼엄한 검문으로 그간 쫄라캉을 쉽사리 찾지 못했던 외국인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티베트불교 의식과 어울렸다.

겔룩빠 소속의 승려들은 걀링(티베트불교 의식에 쓰이는 전통 나팔)을 불며 새해맞이 기도를 올렸다. 법고와 다마루(남성과 여성의 두개골을 합해 만든 작은 북) 바라 요령 범라의 울림은 티베트불교의 여신 빨덴하모(Palden Lhamo)를 권청하고 붓다의 설법을 찬탄하며 만물의 평안을 빌었다. 빨덴하모 기도는 지난 400년간 티베트 정치와 불교를 주도해온 겔룩빠 정권 가덴포당의 고유한 색채가 담긴 불교의식이다.

비어있는 달라이라마의 법좌에는 야외에서 걸치는 법복 꾼다가 정갈히 놓여 있다. 마치 달라이라마의 숨결이 자리한 듯 가부좌한 형상이다. 티베트인들의 주식인 보릿가루 짬빠를 하늘에 올리며 서원을 비는 체마의식을 하고 나서야 대중들은 달라이라마의 법좌에 예경을 드렸다. 야크버터로 빚어 색을 입힌 정교한 길상 똘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양물로 올려 진 티베트인들의 과자 캅새가 대형 탑으로 높이 쌓여 불전을 장식하고 있다.

평소엔 대중에게 허락되지 않던 대중법당 2층의 달라이라마 기도법당도 공개되었다. 정교한 불상들과 간소한 법구들이 모셔진 법당 내부를 돌며 티베트 불자들은 꽃 공양을 대신해 백색 스카프 카따를 올리고 버터등을 밝혔다.

인도에서 태어난 빼마(4)는 티베트 캄빠의 전통복식을 따라 춥바를 입고 어머니와 사원을 찾았다.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묻자 소녀 빼마는 “엄마의 땅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순간 가슴 속부터 울컥 솟아오르는 뜨거운 덩어리에 목이 메어 더 이상 다른 질문을 이을 수가 없었다. 망명정부라는 티베트의 현실에서 성장해야 하는 소녀의 바람이 티베트 본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엄청났다.

▲ 업경대를 정화하며 세상을 비추는 빨덴하모 기도 의식이 봉행됐다.

달라이라마는 지난 2월 21일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워싱턴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 시간여 회동에서 중국의 시짱자치구 25%를 티베트령으로 인정하는 방안에 대해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캐나다의 퀘벡 주정부와 같은 운영 체제로서 언어와 문화는 프랑스식을 따르되 캐나다 법에 준하는 자치법 재정을 허용하며 화폐는 캐나다달러를 공용하는 식이다.

당시 중국정부는 내정간섭으로 일관하며 달라이라마 그리고 티베트망명정부와 협조하는 미국정부를 공개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영토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 대 티베트 자존 구역을 건립하려 하는 망명정부의 제안은 계략이라고 비유하며 즉각 논평했다. 2010년 이후 중단된 달라이라마 특사단의 중국정부 교섭단은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지도자 직무 은퇴 이후 총리 롭상상게 박사에 의한 중앙티베트행정부가 조직되면서 바로 해체됐다. 그러나 망명정부의 중도정책 우메람(Umaylam)은 여전히 고수한다는 의지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재건과 존속에 있어 상당 부분이 미국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 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정부 백악관은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언어를 보호하고 인권 자치를 지지 하는 성명을 지속적으로 중국에 표명해 왔다. 반면 티베트인권 수호라는 카드를 활용해 미국은 중국과 티베트의 현안에 항시 주도적으로 대면하는 위치가 되었다.

인도정부의 입장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티베트인의 망명 터전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이상을 무국적자로 방치하며 자국 내의 이방인 혹은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티베트인을 인도의 자국민으로 포용하려는 의지는 비추지 않는 반면 군사 인력과 관광 홍보의 목적에 있어서는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 그리고 티베트 불교문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가 허락한 땅에 머물고 미국의 원조에 의지하면서 그 사이에서 숨통을 트이고 있다. 여든에 이른 노장 달라이라마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그의 여정에 총력을 기울이며 티베트와 티베트불교의 차원을 넘는 인류애의 가치를 전하는데 주력한다. 전 세계로 흩어진 티베트인들을 하나도 결속 시키는 이름 ‘달라이라마’. 민주주의 내각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 인도 다람살라의 새해는 그들의 어머니 땅으로 좀 더 가까워지는 올 한해가 되기를 기도하며 저마다 정겨운 인사를 나눈다. “로사 따시델렉 따시쇼.”

-인도 다람살라=가연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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