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에 깔렸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더듬어 찾아내었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진작 굳게 다짐하였던 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건물 앞에서 망을 보았다. 아무래도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유학생들은 미숙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길을 잃어 일본 경찰의 눈에 띄면 곤란하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 안에 등불 몇 개를 놓아두고 겨우 모이는 자리였다. 눈에 크게 띄지는 않았으나 역시 주위에 순찰을 다니는 경찰들의 수가 꽤 되었다. 나는 이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들의 경로를 유학생들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덜미를 잡힌 전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에 동주와 일본으로 오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그 시점부터 미리 교토 근처에 모임을 가질 장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유학을 오기 몇 달 전부터였다. 동주에게는 모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었다. 관심을 가졌더라면 나를 적극적으로 따르려고 했을 것이다.

연희전문학교를 재학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밤이 늦도록 모임이 이루어졌다. 나는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집 앞 멀리서부터 소리를 죽였다. 아직 촛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보니 마음이 불안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당시에는 집안에 그 사실을 아는 이도 없었다. 나는 마루 앞을 계속해서 서성거렸다. 헛간에 들어가서 잠을 잘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때 불이 켜져 있던 방문이 살짝 열렸다. 동주였다. “안 들어오고 뭐하니?” 동주가 말했다. “너야말로 아직까지 자지 않고 뭐하니?” 나는 문 쪽으로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동주는 말없이 방문을 닫았다. 나도 조용히 동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동주는 책상 앞에 앉아 공책을 폈다. “지금 시간까지 글을 썼니?” 내가 동주에게 물었다. 동주가 잠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동주에게 내 행적을 이야기할 마음이 있었다. 동주가 나에게,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냐고 물어봐 주기를 바랐다. 동주는 잠시 동안 내 눈을 맞추었다.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주의 책상을 둘러보았다. 동주가 몇 번이고 필사한 백석 시인의 시집이 보였다. 한 눈에 봐도 너덜너덜하였다.

나는 동주의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거 시를 쓰기만 하면 뭐하니, 발표를 해야지.” 동주가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멋쩍게 웃었다. “당선이 되어야 발표를 하지.” 코를 몇 번 훌쩍였다. 멀리서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멀찍이 떨어졌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쓰고만 있다면, 그 실력이 뛰어난다 한들 알아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언젠가부터 동주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교문 앞에 학생들이 왁자지껄 모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몇몇 헌병들이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인파 사이에 내 동료가 보였다. “이게 어쩐 일이니?” 내가 동료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동료가 학교 앞에 커다랗게 붙은 전보에 눈을 떼지 않고 이야기 하였다. “몽규야, 당분간은 모임을 자제해야 될 것 같다.” 나도 전보를 바라보았다. 마을 곳곳에 창씨개명을 하라는 전보가 붙었다. 연희전문학교에서는 이미, 창씨개명의 유무를 학생 한 명씩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경찰들의 순찰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헌병들을 살폈다. 헌병 몇 명이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재빨리 눈을 돌렸다. 나와 눈을 맞추던 헌병 하나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야, 몽규야. 이쪽으로 온다.” 동료가 말했다. ‘침착하라. 침착해.’ 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숨을 잠시 죽였다. 내 존재를 의식하고 다가오는 듯하니, 눈에 띄지 않게 도망갈 수는 없었다. 헌병이 손에 들린 종이 중 하나를 직접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말없이 그 종이를 건네받았다. 개명한 이름을 적어내라고 준 종이였다. 헌병이 몇 초간 나를 훑고는 뒤를 돌며 말했다. “월요일까지요. 잘 생각하시오.” 종이를 받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저 놈들 앞에서 보기 좋게 찢어버리고 싶었다. 동료가 긴장한 숨을 몰아쉬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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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곳에 한국인 유학생이 많다는 사실은, 교토로 온 후에 알게 되었다. 뜻을 모으는 자리에 가끔씩 동주가 참여하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처럼 경찰들의 감시를 피해 만나는 일에는 아니었다. 나도 동주가 위험에 가담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촛불 몇 개에 의지하여 넓은 지도를 더듬었다. 동료들과 소련의 현재 상황을 파악해가며 만주 쪽에서 투입될 독립군의 정세를 확인하였다. 이제 시작이었다. 나는 희망을 잃지 말라고 동료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이 역력했다. 일렁이는 촛불의 움직임만 바라보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학생독립신문을 주최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신문을 만들기 위해 나는 동료들과 기숙사 한쪽에 모여 독립군의 정보들을 모았다. 그날은, 문학 면을 채우기 위해 학생들을 불렀다. 그 사이에 동주가 있었다. 나는 동주가, 나라를 위한 시를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여기저기 쌓여있는 종이들을 뒤적거려 몇 장을 꺼내들었다. “그래, 이것 좀 읽어 봐라.” 학생들은 각자 하던 것을 멈추고 이쪽으로 와서 종이를 받아들었다. 두 사람 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었다. 종이를 받은 학생들은 집중하는 눈빛으로 글자를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이거 좋다. 누가 쓴 거디?” 나는 입꼬리를 싱긋 올리며 턱으로 동주를 가리켰다. 동주는 고개를 올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어지는 칭찬에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렇게라도 동주의 실력을 알아주니 기분이 좋았다. “윤 시인이다. 윤 시인.”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이 발각되었다. 몇몇 동료들이 붙잡혀갔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주변의 지리 정보를 꿰뚫고 있어서, 우선 경비가 잠잠해지는 대로 뿔뿔이 흩어져 있기로 하였다. 동주가 지내는 방의 창문을 두드렸다. 곧이어 동주가 조심히 창문을 열었다. 내 몰골을 보고는 잠시 놀란다. “너 몰골이 왜 그러니?” 나는 설명 대신에, 문을 잠시 열어주라고 말했다. 방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국인 유학생 모임이 발각됐어. 여기 오래 있을 수 없어.” 내가 바닥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얼굴에 상처가 나 딱딱하게 피가 굳은 부분이 아리다. 동주가 내 눈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 생각이니?” 나는 동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주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은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야. 만주로 가는 계획은 아직 유효해.” 동주는 천천히 눈을 내리며 내 얼굴 곳곳에 난 멍 자국을 훑는다. “나랑 같이 가자. 응?” 나는 동주와 눈을 맞추려고 애를 썼다. 동주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길게 뜸을 들이다 입을 뗀다. “못 가. 너 먼저 가.”

눈 쪽에 부어오른 멍 자국들이 욱신거린다. 눈두덩이 화끈거린다. “지금 못 가는 이유라도 있는 거니?” 동주가 애써 나를 외면한다. “너는 시를 쓰는 이유가 무엇이니? 정말로 나라를 위한 것이니?” 나는 문을 열고 자리를 떴다. 동주는 창문을 살짝 열고 멀어지는 내 그림자 자취를 눈으로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새벽하늘이 밝아오기 전까지 나는 기차에 올라타야 한다. 어둠 속에서, 대답 없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던 동주의 표정이 자꾸만 스친다.

*

동주가 먼저 후쿠오카 형무소에 들어왔다. 내가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고, 나를 따라 귀향하려던 중에 잡힌 것으로 보인다. 가끔 형무소 안에서 스칠 때가 있다. 동주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였다. 얼핏 스치는 모습으로 안부를 확인해야 했었다. 얼굴이 창백하였다. 이마 위로 미세한 주근깨 같은 것들이 가득 생겨났다. 말이라도 한번 나누어보고 싶었다. 그동안 잘 지낸 것이냐고. 약속을 지키려고 해주어서 고맙다고. 동주의 얼굴을 손으로 쓸고 싶었다. 모진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따금씩 눈을 감으면, 고향 안에서 누렁이가 멀리서 짖고, 귀뚜라미가 울고, 동주가 조용히 연필을 깎는 모습이 그려진다. 일렁이는 촛불 하나를 의지 한 채 한 자씩, 꾹꾹 눌러 가며 써 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동주의 시 중, 하나가 귓가에 낭송된다.

“잃어 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결국에는, 우리 둘 다 걷고자 하는 길이 같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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