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교수.
종교철학의 방법론적 변천도 철학사의 사조 변천과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여러 사례들이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역시 고전적인 그리고 궁극적인 물음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 그것은 진리에로 향하는 그 방향성이다. 즉, 바른 지식이란 무엇인가에로 향하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그들의 유일한 종교인 기독교는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철학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보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사유나 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도 아닌, 그냥 ‘있는 것’을 ‘있는 것’대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 아닌 방법’은 없을까?

20세기를 전후하면서, 유럽의 철학계는 ‘사태 자체’로 향하는 소위 대상에로의 전향(轉向)이 일어난다. 이런 철학 사조와 더불어 종교철학의 방법론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막스 쉘러(Max Scheler)이다.

쉘러는 《인간에 있어서 영원한 것》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분명히 함으로서 종교철학적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와 형이상학(철학)과의 차이점을 해명하려 하였다. 이런 그의 태도는 이전에 종교와 형이상학(철학)의 부분적 내지는 전면적 일치성을 주장하는 입장과 거리를 두었다.

종교와 철학의 차이점
구원욕구와 경이로움

그에 따르면 형이상학적 연구의 심리적인 원천이 ‘경이로움’이라면, 종교의 원천은 ‘구원의 욕구’라고 한다. 또 방법도 다르다고 한다. 형이상학이 ‘엄밀한 이성’을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종교는 수용적 태도에 의해서 ‘자신을 신에 내 맡기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쉘러는 종교와 형이상학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고 신적 존재를 인간의 의식 속에 ‘원초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렇게 그는 종교와 형이상학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그는 종교의 자립성을 옹호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형이상학자들이 ‘궁극적 제1원인자’가 그 철학의 핵을 이루듯이, 쉘러의 종교철학에는 역시 ‘신’이 그 핵을 이룬다. 그러면 신이란 무엇인가? 그에 따르면 ‘신’은 논리적으로 추론되는 것도 아니고, 종교 외적인 경험의 대상으로부터 추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신’은 자존적이며 무한정적이며 절대적인 활동성을 가진 원초적인 사태 그 자체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신의 본질’이다.

이런 ‘신’에 대하여 인간들은 소위 본질적 대상을 지향하는 종교적 행위를 한다. 물론 이런 종교적 행위는 지향하는 대상세계의 실재성을 긍정할 때에만 가능해진다. 쉘러는 이런 종교적 행위를 특성을 이렇게 제시한다. 첫째는 이 행위 속에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유한적 사물이 ‘세계’의 이념에로 총괄되고, 둘째 그 지향작용에 있어서 이 세계를 ‘초월’하며, 셋째 종교적 행위는 오로지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신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

물론, 종교적 행위와 신의 현존을 대응시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종교적 행위의 현존으로부터 신의 현존이 추리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하여 쉘러는 그것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폐쇄적인’ 경험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는 오류라고 반박하고, 또 근원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제시되는 것이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쉘러의 이런 종교철학적 입장들은 여러 측면에서 더 검증 되어야 할 요소들이 남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토마스주의자들에 의해서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교조주의적 그림자를 반성하게 하는 계기를 준다. 신토마스주의자들은 종교의 신을 형이상학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논증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채택한 형이상학으로 특정한 교리나 신앙을 필연적으로 교조화하는 오류를 드러낸다. 그 결과 ‘사태 자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내린다. 신은 그 자체로서 드러나는 것이지, 다른 그 무엇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신규탁(본지 논설위원.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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