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산스님 작품 Bul-lip-mun-ja 11(不立文字) 11 200x90cm(Understanding beyond Words)Mixed Media 2014 중 일부.

▲ 김명규 작가의 작품. 2014 136x160cm Mixed materials, One day on dream.

존재와 무(無). 물질과 꿈. 전혀 다른 두 가지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불교의 공(空) 사상을 화폭으로 옮긴 정산스님과 현실 너머의 무한한 세계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풀어낸 김명규 작가가 만났다.

스페이스선+에서 6월2일까지 열리는 추천작가전 ‘무념을 위한 상념’ 전에서 존재에 대한 지독한 고뇌 끝에 탄생한 두 작가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말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소통을 꿈꾸는 정산스님은 ‘불립문자’ 시리즈를 선보인다. “꽃은 말없이 피어나지만 인간은 거기서 무언가를 느낀다”는 정산스님은 그 말 없음의 경지에서 ‘불립문자’를 표현해낸다.

미술평론가 김윤섭 소장(한국미술경영연구소)은 “정산스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소통의 상징인 ‘문자’를 바탕으로 그 문자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말과 문자는 소통을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의사 표현이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평범하지 않은 작품에 담아낸다.

정산스님의 작품은 한자에 먹으로 붓글씨를 쓰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글씨가 쓰인 종이를 여러 번 잘라 그 조각으로 최종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스님은 글자가 소통의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진정한 소통과 교감을 위해 글자에 머무르지 말고 글자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라는 것이다.

스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진실을 말한다”는 전제를 깔고 작품을 창조했다. “꽃이 빨갛고 잎사귀가 푸른 것도 그대로 진실을 말하고 있으므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물고기와 새도 그 나름으로 자기가 존재하는 체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 스님은 “인간이 그것들과 접하면 자연히 시(詩)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유마거사의 말에서 작품 제작의 근본 의도를 찾는다. 유마거사는 ‘침묵이 우뢰와 같다’고 말했다. 스님은 “우뢰와 같은 큰 음성이 침묵이라는 것은 사실 무언(無言)이 아니라 진실의 목소리지만, 음계(音階)가 다르므로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바로 스님이 ‘불립문자’ 시리즈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문자를 넘어선 소통, 그 근거는 우레와 같은 침묵에서 비롯됐다.

김윤섭 소장은 “정산스님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외형보다는 내면의 상징을 먼저 이해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동안 발표된 작품 전체에 일관된 철학적 배경이 바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개념이기 때문”이라며 “수많은 시간을 불교의 수행자로서 살아오면서 깨닫게 된 종교적 신념을 ‘공’ 사상으로 함축하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일상에서의 소통과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고 정산스님의 작품을 설명한다.

정산스님의 작품이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면 김명규 작가는 현실세상 너머, 의식 세계 저 편의 무한한 공간 속 상상의 세계에서 영원불멸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김 작가는 “우리는 물질세계가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대신 꿈으로 또는 상상으로 무한한 세계를 생각한다”며 “나는 영원불멸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꿈꿀 수 있고, 이번 나의 작품은 이러한 무한세계를 동경하며 구체화 시키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고 소개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섬이 있다. 그림 속 섬들은 바위섬처럼 먹의 번짐으로만 표현돼 있다. 중력을 잃어버린 세계는 구름과 함께 물고기와 동물들이 떠다닌다. 기기묘묘한 바다빛, 현실감이 사라진 하늘은 원형이 지닌 진실을 잃어버린 채 작가의 기억 속에서 재창조된다.

“이 땅위의 형상은 유한한 형태에 불과하고 이 세계는 잠깐의 환영에 불과하다”는 김 작가는 “현실을 재현해 그림으로 그리는 일은 꿈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의해 초라하게 느껴진다”며 “완전한 초현실 세계로 들어가는 일에 아직은 부담스럽지만 변형과 시공간을 초월해 완전한 이미지를 다시 탄생시킬 일도 먼일은 아니기에 초조하지 않다”고 작가노트에서 고백한다.

작가에게 무한 추상영역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형태든 존재든 그 자체로 의문거리이다. 때문에 그 의문이 작품으로 풀려나오는 때까지 작가의 화면은 변형을 멈추지 않는다.

‘무념을 위한 상념’전은 회화와 설치, 두 개의 형태로 진행된다. 정산스님과 김명규 작가의 작품이 빚어내는 하모니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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