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우스님.
“불자의 도리는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일우스님(대구 성관음사 주지)은 최상승법문인 《법화경》에 그 길이 있다고 강조한다. 성관음사는 관세음보살 33응신을 목불로 모신 사찰이다.

“여래수량품에 보면 본래 부처는 무명을 아버지로 애락을 어머니로 한다고 했어요.”

무명업장이 있는 중생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라면 중생의 때를 벗기는 건 붓다의 가르침이다.

“한국불교에는 부처님이 안계십니다. 달마조사로부터 시작된 조사선 수행을 하다 보니 조사에 귀의하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게 없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의지하고 믿음이 있는 불자니까 부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고, 믿음의 주최가 되지 못하니까 애락에 빠지고 희로애락에 들어가니 절에 찾아와서 차맛을 보고 엉뚱한 소리하고 스님을 재면서 겉멋들린 불자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스님은 얄팍한 알음알이를 경계한다. 머리로만 아는 믿음은 제대로 된 불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을 주춧돌로 집을 지으면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 선만 추종하면 아무리 수도하고 명상해도 근본자성자리를 헤매고 있을 뿐입니다. 믿음이 오롯이 서지 않으니 힘들어 하는 겁니다.”

믿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스님은 진실을 말한다.

“21세기는 진실된 불자의 삶이 결여된 게 문제입니다. 이 세상은 업력이 같으니까 살아가는 겁니다. 동수정업(同修淨業)인 겁니다. 신행으로 주춧돌을 세우고 믿음 속에서 동수정업을 느꼈을 때 헤맬 일이 없습니다. 이번에 세월호 사고 같은 국가재닌이 일어난 것에는 나의 업력도 작용한 겁니다. 너와 내가 없는 하나입니다. 둘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남의 아픔 보듬어 내 아픔으로 가져가는 게 하나가 되는 겁니다. ‘내 탓’이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참회를 해야죠. 자기 잘못은 무릎 밑에 감추고 남의 허물 까발리면 그건 종교인이 아니에요.”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하기 위해서 스님은 당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씀한다.

“스님은 중생을 인도해 부처님이 되도록 피안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네주는 역할입니다. 스스로 건너가려고 애쓰는 사람은 당연히 건너가겠지만 머무르려는 중생마음을 붙들어 같이 넘어가게 하려는 게 스님이 할 일이죠.”

스님이 중생을 깨달음의 강을 건너게 하는 인도자라면 중생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걸까?

“무명과 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중생놀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부처님 가르침 대로 로딩을 다시 해야죠. 부처님은 한 번에 갈 수는 없으니까 돌아가려는 중생을 붙들고 ‘조금만 가자’, ‘저기 가면 네가 원하는 게 있다’ 하면서 쉬게 하고 달래가면서 이끌고 갔습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복력을 가져와야 합니다. 나는 중생의 업력으로 살아서 지혜와 복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각자 힘든 거를 풀어내고 부처님 지혜와 복력을 담아가면 죽을 판이 살 판나게 바뀝니다. 부부는 화합하고 자손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거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없어집니다.”

스님은 믿음을 계속 강조했다. 21세기는 믿음을 주춧돌로 중생의 삶에서 부처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화경으로 결집해야 불성의 종자가 확실히 생깁니다. 믿음 하나로 들어가고 헤쳐가고 만들어가는 거예요.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라고 나옵니다. 공한 도리를 내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공입니다. 숫자를 봐도 0이 없는 1, 2, 3, 4는 존재하지 않아요. ‘0’이 기준이고 잣대가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무한대이고 중도예요.”

스님은 또한 불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불교를 믿는, 수행하는 사람이 아닌 부처님의 자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식을 잘 가르쳐 성장하면 독립을 시키지만 부모 자식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처님 자식으로 믿음을 회복해야합니다. 요즘 불자들은 각종 경전을 배우고 교리를 익히면서 머리로는 알아도 정작 믿음은 부족해요. 믿음 없이 머리로만 알려고 하니까 색견이 되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시대는 한 됫박도 안되는 쌀을 공양미로 올리고 기도했어요. 이분들이 기도한 복덕으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요즘의 믿음은 거래식 믿음입니다. 내가 한만큼 알아주겠지 하고 기대하다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끼니 화를 내는 겁니다. 불자들이 머리로만 알고 생각으로만 아는게 문제예요. 모르는 사람은 불교가 어려워서 그런다고 하는데 부처님은 불가촉천민부터 하늘신까지 모두 알아듣는 말씀을 하셨어요. 모르는 어려운 말씀을 쏟아내는 건 죽은 불교예요.”

죽은 불교를 벗어나 이 시대에 걸맞는 올바른 불자의 길은 무엇인지 여쭈었다.

“머리로 하는 불교가 아니라 먼저 부처님과 일대일 소통을 해야합니다.

요즘 가장 답답한 것에 대해 부처님과 마주 앉아서 진실하게 털어놓으세요. 독백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해보세요. 말을 하다보면 가슴이 울컥하며 뜨거운 눈물이 나옵니다. 가슴이 열리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믿음으로 희열을 맛보게 됩니다. 그런 분은 당연히 부처님을 찾게 되죠. 이렇게 믿음이 바탕이 되면 천수경을 열심히 염송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나서야 법화경 공부를 시키죠.

우리는 부처님의 선의를 먹고 사는 겁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자식이자 권속 즉 가족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지혜와 복력을 주시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부처님오신날 덕담 한 말씀을 부탁했다.

“날이면 날마다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중생이 그걸 모르니까 날을 정한 거예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자비입니다. 자비와 연기, 인드라망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원융한 삶을 살도록 하셨어요. 그러니 감사해야죠. 지금 참사가 일어나 절망하고 좌절했지만 아픈 사람을 보듬고 이제 희망을 봐야지요. 희망과 용기, 새로운 삶을 노래할 수 있으면 그만한 봉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사회를 상생하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늘 불심 충만한 생활을 하십시오.”

-강지연 기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