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2년, 견본채색, 總高 757×484.2cm, 畵高 681.8×457cm, 보물 제1608호.

국내 유일의 불교회화 전문 박물관인 통도사성보박물관이 4월6일부터 9월30일까지 제30회 괘불탱화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경북 성주 선석사 괘불탱화’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인 선석사는 신라 효소왕 1년(692)에 의상대사가 창건해 신광사라고 했던 절이다. 이후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懶翁 惠勤이 주지로 부임한 후 동쪽으로 터를 옮겼는데, 새 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고 해서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禪石寺)’가 되었다.

보물 제1608호인 이 괘불탱은 1702년에 조성됐다. 크기는 세로 709.0cm, 가로 457.0cm로 선석사 대웅전 불단 뒤 괘불함에 보관돼 왔다. 괘불함은 괘불함의 묵서(墨書)를 통해 괘불이 제작된 4년 후인 1706년에 비구 기영(冀暎)에 의해 제작됐음을 드러낸다.

그림의 위 부분과 아래 부분은 보상화당초문(寶相華唐草紋)으로 이루어진 그림 장황으로 표현했다. 장황(裝潢)은 글자와 그림에 미적 가치, 실용성과 보존성을 부여하기 위해 족자 액자 병풍 서첩 등으로 꾸미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같은 장황은 중앙아시아에서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온 긴 번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괘불탱의 화기는 그림 장황의 바로 위에 굵은 주선(朱線)으로 구획한 흰 바탕에 묵서로 기재했다. 화기 란 위에는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 왕비전하수재년(王妃殿下壽齋年) 세자저하수천추(世子邸下壽千秋)’라 쓰여 있다.

화기에 의하면 강희(康熙)41년 즉, 1702년의 4월에 ‘영산회도’를 봉안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증명에는 비구 밀영이, 지향 비구로 사언이 참여하고 있으며, 탁휘를 수화승으로 하여 법해, 설잠, 성징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 괘불탱은 화면 중앙에 석가여래가 서 있고 각기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양 옆에 위치하고 있다. 그 뒤로 가섭과 아난존자를 포함한 4명의 제자가 석가여래를 향해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다. 석가여래는 왼손을 가슴께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결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어 역시 엄지와 검지로 연꽃가지를 잡아 연꽃이 바깥쪽을 향하도록 들고 있다.

이와 같은 석가여래의 도상은 염화시중(拈華示衆), 즉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 그의 제자 가섭만이 석가여래가 말없이 꽃가지를 들어 올린 뜻을 알고 미소로 답했다는 내용을 그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이러한 도상은 법화경 변상도와 같은 불교판화와 전각 내 봉안되는 후불화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예가 많지 않다”며 “괘불탱화 중에 보관을 쓴 장엄신의 보살형 여래가 꽃을 들고 있는 도상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지만, 여래의 모습으로 꽃을 들고 나타나는 도상의 괘불은 ‘선석사 괘불탱화’가 가장 이른 사례”라고 소개했다.

-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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