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하룻밤 수청 들지 않는다고 죽이겠다는 변사또나 이부종사(二夫從事) 못한다며 차라리 죽이라는 춘향이나 그 사도-마조키즘적 변태성은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열녀라는 명예가 중하기로서니 목숨보다 더 중하지는 않을 터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겠단다.


목숨 던지기로는 심청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15살 꽃다운 처녀가 늙은 애비 눈 뜨게 해준다고 바다 속에 몸을 던진다. 소설은 그렇다 치고 이런 이야기 들으며 눈물 콧물 솟아내는 조선의 백성들도 정상은 아니다. 어린 처자를 그토록 허무하게 희생시키는 세태에 분노하지는 못할망정 감동이 물결친다. 비정상이라면 변태이니, 조선의 백성들 또한 사도-마조키스트임에 틀림없다. 하면 어쩌다 그 순진무구한 백성들이 변태가 되었나?

백성을 변태로 만든 근원

‘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事有終始)’라 했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이다. 하여 조선의 백성을 변태로 만든 근원을 찾아보니, 우리민족이 존경해 마지않는 세종대왕 어전에 닿게 된다.
친형제를 죽이고,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는 일등공신이었던 처갓집을 도륙내면서까지 태종은 왕권강화에 올인했다. 그렇게 세운 탄탄한 기반 위에 태종의 아들 세종은 조선왕조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 중의 하나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이다. 삼강이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니, 임금을 향한 충성과 어버이를 향한 효도와 지아비를 향한 정절, 이름하여 충‧효‧열(忠孝烈)을 가리킨다. 이 각각의 덕목을 잘 드러내는 사례들을 모아 그림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림책을 만든 것은 글자를 모르는 무식쟁이들에게도 공‧맹(孔孟)의 도(道)를 알게 하려는 대왕의 하해와도 같으신 은혜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백성들을 무지몽매로부터 밝은 성인의 나라로 이끌려는 세종의 교화(敎化)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듯하다. 조선은 효자‧효부, 열녀들이 넘쳐나는 도덕국가가 되었다. 노부모를 봉양코자 허벅지살을 베고 손가락을 자르는 할고(割股)단지(斷指)의 풍속이 각지로 퍼졌으니, 곳곳에 세워진 정문(旌門)이 그 증거이다.

독한 놈이나 하는 할고단지

그런데 말이 할고이고 단지이지 평범한 백성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 같은 분도 할고하다가 너무 아파 끝내 살을 떼어내지 못하고 도로 붙이고 말았음을 고백하고 있지 않는가. 애꿎은 허벅지만 벤 채 아픔만 곱씹으며 자신의 불효를 꾸짖고 있었던 것이다. 할고단지는 아무나 못한다. 독한 놈이나 명예와 벼슬을 바라며 할고한다고 한 사람은 소동파(蘇東坡)였다. 《명종실록》 10년 3월 29일 기사에 의하면 거짓된 할고단지가 많음을 뻔히 알면서도 효자·열녀로 상신된 사람들에게 정문을 하사하고 있다. 그 이유로 백성들이 유교적 통치이념을 따르게 하려는 속내를 드러내면서 말이다.

교육효과가 대단히 좋아서였는지 조선은 《삼강행실도》 증보판에,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까지 연달아 간행하고 있다. 증보판인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중 〈이씨단지(李氏斷肢)〉는 임진왜란 때 왜놈들에게 겁탈을 당하지 않으려고 나무를 꼭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 사지가 절단 당하여 죽은 이씨부인에게 정문을 하사하는 내용이다. 이런 정문을 특히 열녀문이라 하는데, 이 문을 하사 받으면 그 집안의 남자들에겐 병역이 면제되는 등의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다. 그러니 삼천리 조선 반도에 너도 나도 할고단지에 자결하려는 부녀자들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타의에 의해 곡기(穀氣)가 끊긴 한 많은 여인들이 한 둘이 아니었음도 불문가지이다.

사상적 통제국가 조선

하여 정문을 바라보는 방외인(方外人)은 눈물이 난다. 자해로도 부족하여 자결로 이어져야만 했던 게 도덕국가 성인의 나라를 사셨던 우리 할머니였기에 말이다. 이런 나라가 되어야 열녀 춘향, 효녀 심청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은 매우 잘 짜여진 사상적 통제국가였다. 교육에서 관리임용까지, 중앙에서 지방 곳곳까지, 공교육에서 사교육까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성인의 말씀만이 머릿속에 심어지고 가슴에 새겨졌다. 유교적 통치이념은 집요하고도 철저하게 백성들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고 조직되었던 것이다.

조선과도 같은 봉건 군주국가에 있었던 사상통제가 21세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인 듯하다. 처음에는 언론매체를 완전히 장악하더니 이제는 국정원, 국방부, 보훈처에 교육부까지 전방위적이며 노골적으로 국민들에게 사상교육을 시키겠단다. 그리하여 국민들의 머릿속에 매우 훌륭한(?) 가치관을 심어 놓겠다고 대놓고 으름장이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업무를 국정원이 총괄지휘하는 모양새이다.

현란한 변주곡 언제 끝나나

이 정부 들어 국정원은 선거개입 문제부터 시작하여, NLL 대화록 문제, 사초폐기 논란, 그리고 간첩 증거조작사건까지, 그 현란한 변주곡을 연일 들려주고 있다. 옛날 독재시절에도 정보기관이 이처럼 전면에 나선 적이 있었나 싶게 말이다. 국정원에 의한 증거조작사건의 본질은 정부기관이 국민들에게 특정한 이념을 심어놓으려는 의도를 갖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소위 적을 상대로 해야 하는 심리전을 국민을 상대로 수행한 일이 현재 벌어지고 일련의 사건의 뿌리이며 출발점이다. 도대체 자유민주국가에서 가능한 발상인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런 일련의 정부행태에 대해 그 어느 단체보다 더 크고 분명한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할 곳이 바로 불교계다. 왜냐하면 불교야말로 중생들의 의식 속에 있는 일체의 이념이나 관념을 망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망념을 의도적으로 퍼트리고 심어 놓으려는 자들을 불교에서는 마(魔)라 부른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마들이 날뛰는 데도 불교계의 지도자들께선 말이 없으신가?

망념행태에 왜 말이 없나

불자라면 더욱 더 이번 국정원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똑바로 지켜봐야 한다. 중간급 간부 한두 명을 희생양 삼아 그들의 마각을 감추려고 하는지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나아가 국민의 마음에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을 심어놓으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이 정도의 자유조차 누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자유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설마 열녀문이 다시 세워질까? 왠지 그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워나는 오늘이다.

<철학박사 ·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