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이차의 생산지 – 육대차산(六大茶山)

보이차의 생산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왜냐하면 보이차를 어떤 이론적 관점에서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범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세월을 보이현에 속해 있다가 근대에 이르러 따로 독립된 지역들이 있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 간에 약간의 갈등 요소로 인해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도 약간의 차이는 보일지라도 큰 차이점은 나타나지 않은 듯하다. 다행히도 보이차의 생산과 생산지 등에 관한 기록들이 옛 문헌에 많이 나타나니, 이를 근거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운남에서 차가 생산된다.’는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 의종(懿宗) 함통(咸通) 5년(서기 864)에 번작(樊綽)이 쓴《만서(蛮書)》에서 ‘차는 은생성(銀生城) 경계 여러 산에서 난다.’라고 기록한 부분이다.  ‘茶出銀生城界諸山’ 남송(12세기) 때 이석(李石)이 지은《속박물지(續博物志)》에도 이와 똑같은 기록이 보인다. 당시 ‘은생성’은 오늘날의 ‘서쌍판납(西双版納)’주와 ‘사모(思茅)’시 관할 구역에 속한다. 그리고 청나라 광서(光緖:1875~1908년) 연간에 찬술된《보이부지(普洱府志)》의 1, 7, 19권 등에 보면 ‘보이(普洱)는 은생부(銀生府)에 속한다.’(‘普洱古屬銀生府’)고 하였다.

위의 기록 중에 보이는 ‘은생(銀生)의 여러 산[諸山]’은 곧 ‘6대 차산’을 의미한다.

1799년 청나라 단수(檀粹)가 지은《전해우형기(滇海虞衡記)》에서 6대 차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보이는 여섯 차산에서 나오는데, 첫 번째가 유락(攸樂), 두 번째가 혁등(革登), 세 번째가 의방(倚邦), 네 번째가 망지(莽枝), 다섯 번째가 만단(蛮端), 여섯 번째가 만살(漫撒)이다.” ‘出普洱所屬六茶山, 一曰攸樂, 二曰革登, 三曰倚邦, 四曰莽枝, 五曰蛮端, 六曰漫撒’

또한《보이부지》에는 “유락(攸樂)산은 은생부의 남쪽 칠백오리에 있으며 나중에 가포산(加布山)과 산습공산(山嶍崆山)으로 나누어진다. 망지산은 은생부 남쪽 사백팔십 리에, 혁등산은 은생부 남쪽 사백팔십 리에, 만전(蛮磚)산은 은생부 남쪽삼백육십리, 의방산은 은생부 남쪽 삼백사십 리에 있으며 이상의 다섯 산은 모두 의방(倚邦) 토사(土司) : 원,명,청시대의 소수민족의 세습족장(제도))에서 관할한다. 만살산은 곧 역무산(易武山)이며 은생부 남쪽 오백팔십리에 있고, 역무(易武)토사에서 관할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문헌과 그 외, 기타 자료들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당나라 때 은생부(銀生府)는 경동성(景東城)에 위치하며, 경동(景東), 경곡(景谷), 진원(鎭原), 흑강(黑江), 보이(普洱), 사모(思茅), 강성(江城) 및 서쌍판납(西双版納)을 통할하였다.

송나라 때 대리국(大理國) 시절에는 위초부(威楚府:楚雄)의 아래에 사모(思茅)지구, 유라타부(有羅陀部:六順), 보일부(步日部:보이), 마룡부(馬龍部:흑강) 등을 두었다.

명나라 때엔 ‘보이’와 ‘사모’는 모두 여기에 소속되었다가 청나라 때에 이르자 보이(普洱)는 보이부(普洱府)로 승격하고, 그 아래에 삼청(三廳), 일현(一縣), 일사(一司)를 두고 관할하였다. 즉, 사모청, 타랑청(他郞廳:흑강), 위원청(威遠廳:경곡), 녕이현(寧洱縣:보이), 차리선위사(車里宣慰司:서쌍판납) 등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리고 6대 차산(茶山)을 사모청의 경계에 포함시키고 보이차 생산의 핵심지구로 지정하였다. 청(淸)·완복(阮福)《보이차기(普洱茶記)》에는 ‘소위 보이차는 보이부 경계 내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생산지는 사모청의 경계에 속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차마고도(사천)의 차를 운반하는 빼이지아오(背脚)의 조각상.

현재 6대 차산 중에서는 역무(易武)의 차생산량이 여전히 제일 많다. 옹정 연간(1723~1735년)에는 무려 수십만 명이나 되는 차상(茶商)과 차공(茶工)들이 이곳에 몰렸으며, 청나라 건륭 연간(1736~1795년)에는 또 석병현(石屛縣)의 한인(漢人)들이 대거 이곳으로 이주해 들어와 산에 차를 심고 재배하였다. 이로 인해 6대 차산은 산마다 차밭이 형성되고, 가는 곳마다 인가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흥성하게 되었다. 광서(光緖) 연간에는 역무차구(易武茶區)에 상주하는 인구만 10만 명, 마을 산채 63개 그리고 차를 사고파는 차행(茶行)과 차장(茶莊)이 20곳이나 생기게 되었다.

육대차산이 걸치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은 북위 21˚51´~22˚ 24´, 동경101˚ 21´~101˚ 38´이고 해발 630~2천100미터의 란창강(蘭滄江) 계곡지대이다. 연평균온도는 17.2℃이고 연평균강우량은 1천500~1천900㎜이다. 공기의 상대습도는 89%이며 비가 많이 오고, 습기가 많으며 일 년 내내 기후가 온난하고 운무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육대차산은 그야말로 보이차의 원산지 중에서도 최적합지가 된 것이다.

4) 보이차의 종류와 분류

보이차의 종류와 분류를 세분하여 논하자면 상당히 복잡하다. 예를 들어 차나무의 품종에서부터 시작하여 차나무의 원산지, 차나무의 야생과 재배, 차의 외형, 찻잎의 종류, 포장방법, 보관방법, 제작방법, 제조차창, 제작도구 등등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 분류를 따로 정하기도 하는 것이 마치 수많은 실타래가 서로 갈라지고 다시 엉키고 또다시 갈라지듯이 실로 매우 복잡하다. 어떠한 분류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종류는 달라지기도 하고 또 같아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차와 숙차(熟茶)일지라도 그 형태가 둥근 떡차의 형태면 모두 병차(餠茶)에 속한다. 또 같은 숙차라도 하나는 잎차이고 하나는 벽돌모양으로 긴압(緊壓)된 차라면 그것은 산차(散茶)와 전차(磚茶)로 구분되거나, 혹은 산차와 긴압차로 구분된다. 그만큼 보이차는 다른 어느 종류의 차보다도 그 종류와 분류 방법이 다양하여 상당히 복잡하다. 특히 보이차를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에게 있어서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비록 이렇게 종류와 분류방법이 복잡한 보이차이긴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몇 가지 방법의 예를 들어 그 종류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차나무의 종류와 찻잎의 크기에 의한 분류
보이차는 차나무 줄기의 크고 작음에 따라 교목(喬木)과 관목(灌木)으로 나누어진다. 교목형은 차나무가 굵을 뿐만 아니라 키도 상당히 높다. 나무의 본줄기는 굵고 거칠며 갈래로 뻗은 가지 부분이 높다. 교목형의 차나무가 북쪽으로 전파되어 보급되는 과정에서 북쪽의 기온이 낮고, 남쪽보다 비교적 거조한 기후의 영향으로 나무의 형태가 점점 변하여 작아지면서 관목형의 차나무가 되었다. 또한 찻잎의 크기에 따라 대엽종과 소엽종으로 나누어 제다한다. 과거 보이차는 주로 대엽종 위주였으나, 청나라 때 옹정(擁正)황제의 심복인 악이태(卾尒泰)가 운귀(雲貴)와 광서(廣西)의 총독으로 있을 때 보이차를 공차(貢茶)로 바친 이후, 보이차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거친 대엽종 위주로만 만들어지던 보이차는 소엽종으로도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 제자백가 시리즈 보이병차(12000개 한정 생산품).
(2) 보이차의 외형에 의한 분류
보이차는 주로 압착하여 만든 긴압차(緊壓茶)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그 성형(成形)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일반적인 차처럼 잎차로 완성되면 산차(散茶), 둥근 떡 모양으로 만들면 병차(餠茶) 혹은 원차(圓茶), 사각형의 벽돌모양으로 만들면 전차(磚茶), 사발모양으로 만들면 타차(沱茶), 버섯모양으로 만들면 향고차(香菇茶:일명班禪茶) 또는 긴차(緊茶)라고 한다. 병차를 일곱 편으로 한 묶음 묶어서 대나무껍질로 포장하면 칠자병차(七子餠茶), 사람 머리 크기 모양으로 만들면 인두차(人頭茶), 궁정이나 조정에 조공으로 바치던 차는 궁정보이(宮廷普洱), 혹은 공차(貢茶) 등으로 불려지고, 공차를 큰 박 모양으로 만들면 공과차(貢瓜茶)라고 한다.

(3) 발효방식에 의한 분류
보이차는 발효방식에 따라 장기간 보관 후, 찻잎 자체의 산화현상에 의해 후발효가 발생하는 생차(生茶)와 미생물발효의 숙차(熟茶), 악퇴차(渥堆茶)로 분류된다. 숙차는 제작과정에서 과학적인 인공발효법을 통해 제작되기 때문에 차성 본질의 자극성이 퇴화되어 입에 부드럽고, 쓴맛과 떫은맛이 경감됨으로써 시장에선 70%이상의 소비자들이 숙차를 선호하는 편이다. 생차는 장기간의 자연발효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오랜 세월을 인내하고 겨우 마실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10년 이상 혹은 20년, 30년, 40년 뒤에도 겨우 몇 편(片)을 보관할 수 있겠는가? 전문 수장가(收藏家)가 아니라면 수십 년 동안의 오랜 세월의 풍화를 통해 자연 발효된 청병(靑餠)을 맛보기란 그리 쉽지가 않을 것이다. 설사 시중에서 살 수 있다 할지라도 그 가격이 높아 일반서민들은 살 엄두조차 못 낸다. 어쩌다 운이 좋아 전문 수장가가 오래 묵은 보이차를 꺼내 마실 때, 그 곁에서 한두 잔 얻어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때문에 필자는 중국을 다녀올 적마다, 바로 마실 칠자병차 몇 편과 함께 먼 훗날 마실 값싼 녹타차(綠沱茶) 사오십 덩이를 사가지고 와서 종이 상자에 넣어 보관해둔다. 이미 15년이 넘은 것부터 칠 년, 오 년, 삼 년 된 것까지 있는데, 3년 지난 것도 벌써 향이 좋아지고 있다.

-박영환/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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