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4년(세종 6) 왕은 경주 봉덕사와 개성의 연복사(演福寺)의 대종(大鐘)을 헐지 말도록 명하였다. 봉덕사는 신라 제34대 왕인 효성왕(孝成王)이 이버지 성덕왕을 위해 지금의 경주시 북천(北川)가에 창건하였다. 776년(혜공왕 6)년 완성한 큰 범종은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다가 이루지 못하고 혜공왕 때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혹은 ‘에밀레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종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 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세종이 연복사종과 함께 봉덕사종을 헐지 말라고 명한 것은 당시 동전(銅錢)을 주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 조선은 왕조초기에 동전을 법적인 화폐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주원료인 동(銅을) 공급하기 위하여 전국의 절에 남아있는 큰 종과 당간(幢竿)과 같은 동주(銅柱)를 징발하였다. 집권초기 세종은 불교 종파를 선교(禪敎) 양종으로 통폐합하고, 스님들의 도성출입 금지와 선종과 교종에 소속된 36개의 절만 남겨둔 채 철폐하거나 허물어버렸다. 더욱이 동을 주원료로 제작한 절의 의식구(儀式具)는 동전 주조의 좋은 원료로 활용되었다. 징발된 동은 주전소(鑄錢所)로 이용하고 있었던 경기도 양평의 사나사(舍那寺)에 모아졌다.

세종은 대부분의 불상과 범종을 동전 주조에 이용하였지만, 당시 불교의 역사성과 그 가치를 대변하고 있었던 봉덕사종은 온전히 보존했던 것이다.

오경후/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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