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바위 부처님으로 불리는 팔공산 신앙의 중심 관봉 석조여래좌상.
고 김상현 동국대 전 명예교수의 유고 논문이 실린 《정토학연구》 20집이 나왔다. 유가족들의 양해를 얻어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종수 HK연구교수의 책임 하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유고논문을 발췌한다.

‘통일신라시대 팔공산의 불교신앙’은 통일신라시대 오악의 하나인 중악으로 신라의 중심이라 일컬어졌던 팔공산을 집중 조명한다. 신문왕은 팔공산이 있는 달구벌로 도읍을 옮기려고 시도할 정도로 팔공산은 신라인들의 사랑을 받고 의지가 되었던 영산이다.

신라인들은 산악을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소박한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도산의 성모, 가야산의 정견모주, 지리산의 성모 등은 대표적인 산신으로 오랜 옛날부터 숭앙을 받았다.

그렇다면 팔공산의 불교신앙은 어땠을까. 고 김상현 교수는 △심지의 《점찰경》 신앙 △동화사의 미륵신앙 △화엄사찰 미리사와 교종 사찰 부인사 △지장사의 지장신앙 △관봉 석조여래좌상으로 조망한다.

신라 제41대 헌덕왕의 왕자로 출가한 심지는 속리산의 영심이 진표의 불골간자를 이어받아 법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팔꿈치와 이마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수행해 영심으로부터 간자를 받았다. 심지가 행한 수행은 마당에 앉아 땅을 치며 참회하는 망신참법이다. 심지는 진표의 불골간자를 받아 팔공산으로 돌아왔다. 이를 고 김상현 교수는 “진표의 점찰교법이 영심을 거쳐 심지에게 이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화사로 이어진 미륵신앙 역시 “심지가 열렬한 미륵신앙자였던 진표의 점찰교법을 이어오면서 미륵신앙도 같이 계승했을 것”이라고 고 김상현 교수는 주장했다.

화엄사찰 미리사는 팔공산에 있었던 사찰로 화엄십찰의 하나다. 현전하는 미리사 관련 자료를 거의 없다. 다만 최치원이 《법장화상전》에서 화엄십찰이라고 밝혔기에 8세기에는 이미 창건되었을 것으로 창건시기를 가늠해볼 뿐이다. 부인사의 경우 신라 선덕여왕 창건설을 따르며 1991년부터 선덕여왕숭모재를 지내고 있다.

팔공산 관봉 서쪽 지맥인 노족봉 남쪽 기슭에는 북지장사가 있다. 고려시대까지는 지장사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남지장사로 인해 북지장사로 명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 김상현 교수는 “신라의 지장신앙은 점찰교법과 관련해 행해지기도 했는데, 동화사를 중심으로 점찰교법이 행해진 것은 이미 9세기 전반이었던 만큼 북지장사 역시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팔공산 불교신앙의 중심은 갓바위 부처님으로 불리는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조성됐다. 갓바위 부처님은 1934년 편찬된 《화성지》에 의하면 관암미륵불이라고 불렸다. 1962년 동아일보는 신라 효공왕 때 구전설화를 소개하며 약사불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고 김상현 교수는 “갓바위 부처님의 존명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 것은 이 불상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의 신앙심이 투영된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한편 한국정토학회는 14일 《정토학연구》 《대각사상》 제20집 출판기념회 및 회장단 이취임식을 열었다.

신임 회장 신규탁 교수(연세대 철학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토학회 화장을 맡아 과분하다”며 “전임 회장 성운스님께서 복지 실현으로 학회 외연을 확장시키신 결과 정토학회가 발전된 만큼 앞으로 정토학을 발전연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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