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칠보사(주지 송담 스님)에는 여느 절집과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오백 살 먹은 느티나무도 좋고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삼청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길도 정겹지만 더 멋진 것은 한글 글씨다. 대웅전 현판은 ‘큰 법당’, 여섯 기둥에 붙은 주련도 정겨운 우리 한글이다.
“둥글고 가득찬 지혜의 해 / 캄캄한 번뇌 없애버리고 / 온갖 것 두루두루 비치며 / 모든 중생들 안락케하는 / 여래의 한량없는 그 모습 / 어쩌다 이 세상 오시나니”
현판과 주력은 모두 2004년 세인의 곁을 떠나신 석주 큰스님의 작품이다. 당시 현판과 주련을 한글로 쓴다는 것은 지극히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이를 취재했던 기자는 스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한글로 현판과 주련을 쓸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러나 스님의 대답은 너무도 소탈했다. “내가 무식해서 한문을 잘 몰러.”

삼청공원 입구 갈림길에서 삼청터널 방향으로 직진하자 바로 ‘칠보사’ 가는 푯말이 나왔다. 그 푯말을 따라 한옥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동내를 지나 조금 올라서자 칠보사 대웅전 처마와 경내로 들어서는 문(門)이 보였다. 칠보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족히 수백 년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고, 그 옆으로 종각 하나와 대웅전 오른쪽으로 요사 2동이 앉아 있었다.
사실 삼청동은 옛 한양 도성 안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으로 꼽혔다. ‘삼청’이란 산 맑고(山淸) 물도 맑으며(水淸) 그래서 사람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人淸)는 뜻이다. 그래서 시인과 묵객들은 ‘삼청’을 소재로 많은 서화(書畵)를 남겼다. 이재(李栽?1657~1730)는 ‘뛰어난 삼청 하늘 속 골짜기여(絶勝三淸洞裏天)’, 이달(李達?1539~1610)은 ‘삼청은 대궐 모습 그대로(三淸留寶殿)’, 이관명(李觀命?1661~1733)은 ‘푸른 산 벽은 천년을 지켜왔네(蒼壁護千年)’라고 했다.
‘이렇게 좋은 세워진 사찰이라니!’라는 생각에 칠보사 총무스님(도홍 스님)께 ‘칠보사’의 연원을 물었다. 그러나 그 대답에는 아쉬움이 배어있었다. 도홍 스님에 따르면, 칠보사 연혁은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했다고 한다. 백방으로 연원을 수소문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1958년 청신녀 칠보화 보살이 800여만 원을 들여 부지와 건물을 매입해 수리한 후 대웅전 6칸, 염불당 3칸, 삼성각 3칸 규모의 ’칠보암‘을 개원하며 석주 스님에게 ’무주상보시‘했다는 기록이다.
이후 석주 스님은 ‘칠보사’로 개명해, 1968년 2월부터 1972년 4월까지 경내 전각을 헐고 대웅전을 15칸으로 다시 짓고, 부처님을 새롭게 개금(蓋金)하고 후불탱과 함께 봉안했다. 또 종각을 신축하고 새롭게 제작한 범종을 걸어, 지금의 사격을 이루었다.
물론 칠보사와 관련해 세간에는 ‘1958년’ 이전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도홍 스님의 설명이다. 세간의 기록에 따르면, 칠보사 자리에는 원래 삼각사(三覺寺)가 있었는데, 만해 스님의 유일한 제자이신 춘성(1891∼1977) 스님이 1932년경 경기도 광주군 성부산에 있던 봉국사로 이전하며 ‘삼각사’를 폐했다고 한다.
또 칠보사 부처님에 대한 세간의 이야기도 있다. 칠보사 부처님은 1905년 경기도 광주군 청량산의 영창대군 묘 곁에 있었던 ‘법륜사(봉선사 말사?지금은 폐사)’에 봉안된 부처님을 이운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수행과 포교는 사찰의 크고 작음에 걸림이 없다. 정법이 살아있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용기가 불교를 살리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와 사람’살림으로 이어진다. “모두 이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영화로울 때 치욕이 닥칠 것을 알지 못하고, 왕성할 때 그만둘 줄 알지 못하고, 명리만 탐할 뿐 피할 줄 알지 못하고, 얻을 것만 생각하고 잃을 것을 걱정하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 지 알 수 없다”는 석주 스님의 말씀이 아련하다.
석주 스님은 2004년 세인을 곁을 떠나셨지만, 아직도 칠보사에 주석하시는 듯했다. 석주 스님의 뜻을 잇고자 노력하는 스님들이 칠보사를 지키며, 봉사모임인 ‘보현회’를 지원하는 등 사부대중의 신행력을 키우는 데 적잖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맑고 용맹스런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사부대중에게 커다란 행운이다. 가까운 날, 칠보사가 ‘도심 포교 도량’으로 각광받기를 서원해 본다.

칠보사 | 서울 종로구 삼청동 4번지 | (02)732-1424

오종욱/본지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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