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성품에서 여래는 보통의 부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삼세에서 똑같이 부르는 영원한 부처로서 그 첫 명호를 여래라 한다. 이때의 여래는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여래이니 여래성품(如來性品)이라 한다. 여래성품이라 한 것은 구경의 과로서 수승한 명호이고, 성(性)이란 지극한 이치의 근본 이름이다. 비단 지극한 과로서의 이름을 여래라고 할 뿐만 아니라, 중생 본성 역시 이름을 여래라고 한다. 여기서 여래는 과(果)를 나타내고 성(性)은 인(因)을 나타내는데, 그 인(因)쪽에서 보아 여래성품이라 하였다. 또 성품의 이치로 보면 갖가지 선악과 삼승의 성품이 갖추어 함장되어 있는데 수승한 것을 들고 하열한 것을 버려 여래성품이라 하였다. 또 여래는 보통의 이름으로 무릇 중생들은 모두 미래의 여래며, 사의개사(四依開士:삼현 사선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가 오히려 여래이며, 시방제불을 다 여래라 부른다. 한 부처에서 보면 화신 응신 보신 법신을 다 여래라 부른다.

지금의 경문에서는 여래장의 여래를 말한다. 이십오유(二十五有)가 다 아(我)가 있고, 아가 똑같으므로 여(如)라 이름하며, 여로 사람을 나타내므로 래(來)라고 한다. 항상 무너지지 않는 이름을 성품으로 하여 여기로부터 이름을 세워 여래성품이라 한다. 이 여래장은 곧 불성이다. 여래장의 뜻은 제 논사마다 차이가 있다. 논사들은 불과가 미래에 있을 것이요 지금 즉시 있지 않으므로 장(藏)이라 이름 하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불성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또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사구로 평등 청정하고 다툼이 없으므로 여(如)라 한다. 또한 이 사유(四有) 인연 때 일문 중에 사실단을 지으니 사실단이 교묘히 중생에게 보이므로 래(來)라 하며, 항상 변하여 바뀌지 않으므로 성(性)이라 한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얻을 수도 없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 품은 이러한 여래장이 중생들에게도 있는지에 관해 밝히고, 다음으로 이러한 여래장이 곧 선업을 일으켜 불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먼저, 일체 중생에게 여래의 성품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첫째는 본래부터 있으나 중생들이 보지 못함을 밝히고, 다음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여래장의 있고 없음에 대한 12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

첫째의 중생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여래장에 대해서 순금독의 비유와 아이에 젖을 주는 어머니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먼저 중생들이 여래장이 본래부터 있는가의 문제이다. 아직 생사의 고해에 있는 중생을 이십오유라 하는데, 이들에게도 과연 부처가 될 수 있는 여래장이 있는지에 대해 가섭보살이 질문하는 것으로 경은 시작한다. 이십오유란 삼계의 유루법의 세계로 곧 욕계의 4주 4악취 6욕천, 색계의 범천 무상천 나함천 사선천, 무색계의 4처이니, 육도 생사윤회의 중생을 가리킨다. 우리는 흔히 중생들은 무아(無我)이고, 부처의 세계는 아(我)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십오유의 중생에게 내[我]가 있는지에 대해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질문하자, 부처님은 나[我]는 곧 여래장이요, 여래의 씨앗으로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니 곧 불성이라고 하면서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번뇌에 덮혀 있어서 이 여래장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한다. 경에서는 이런 중생을 가난한 여인이 자신의 집에 순금으로 된 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중생들에게 인연에 따라 대상에 대해 미혹(迷惑)하고 신·구·의 업(業)을 일으켜 결국 생로병사의 고(苦)를 일으키니, 불성이 있지만 번뇌에 가려져 있어서 마치 여인이 황금독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때 어떤 사람이 이를 알고 깨우쳐 주듯이 여래는 중생에게 부처가 되는 본각의 광명 곧 불성을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여래장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중생들에게 아(我)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생들에게 아가 있다고 가르치면 삿된 아의 병을 일으키므로, 무아라는 약을 주어 가르치고, 마침내 참된 진아(眞我)를 설하는 것이라는 취지이다.

비유하면, 여인이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아이가 병이 있어 의사를 찾으니 의사가 생소와 우유 석밀의 3가지로 약을 만들어주고 약을 먹인 뒤에는 젖을 주지 말고 약이 소화 된 후에 젖을 먹이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쓴 맛을 젖꼭지에 바르고 아이에게 독약을 발랐으니 먹지 못한다고 하였다. 아이가 약을 먹고 소화되자, 어머니는 쓴 맛을 씻어내고 젖을 주려하였다. 아이는 쓴 독약이 있다고 오지 않았다. 이에 어머니는 달래기를, 먼저는 네가 병이 있어 약을 먹였으므로 독약을 발랐으나 지금은 약이 소화되었으므로 독약을 씻어내었으니 걱정 말고 와서 먹으라고 하였다. 여기서 아이가 병이 생긴 것이 중생들이 사견에 빠져 삿된 아[邪我]의 병에 든 것을 가리키고, 의사가 약을 처방한 것이 부처님이 무아(無我)의 약을 설한 것이며, 어머니가 사실을 밝혀 젖을 준 것은 《열반경》에서 중생에게 참된 불성[眞我] 여래장이 있을 밝히는 것이라고 한다. 아기가 어머니의 부르는 말을 듣고 젖을 빨듯이 중생들도 여래의 비밀법장(여래장)이 없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십오유의 중생들에게 본래 아가 있음을 논의를 통하여 밝힌다. 먼저, 중생들이 무아(여래장이 없음)임을 주장하는 12가지 이유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죽고, 머물다 무너지고, 중생의 갖가지 차별이 있다는 것은 항상 하고 영원한 불성의 아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4과를 들어 논란을 제기한다. 이어서 중생에게 영원한 성품이 있다면 어째서 살생하고 도둑질 등 십악을 저지르고, 술 취한 후 아득하고 허황하겠는가 2인(因)을 들어 의문을 제기한다. 또 아의 성품이 영원하다면 보고 듣는 등의 장애가 있을 수 없으며, 영원한 아가 있다면 재난을 피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아가 항상 하다면 지난 일을 잊지 않으며, 내가 항상 하다면 노쇠한 지난 일을 기억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4가지 과를 제기한다. 또한 내가 항상 하다면 어디에 있을 것이며, 그런 아는 몸에 두루 존재할 것이라고 2난처를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여래는 장사의 비유와 설산의 낙미의 약의 비유 등 2가지를 들어 12난제에 답하고 있다. 첫 번째 비유는 어느 임금의 집에 장사가 있어서 양미간에 금강주가 있었는데 떠받는 내기를 하다가 구슬이 살 속으로 들어가 부스럼이 생겼다. 이에 의사를 데려다가 치료하니 장사는 구슬이 없어진 줄 알고 의사에게 따졌다. 이에 의사는 가죽 속에 들어가 있다고 거울을 보여 확인시켜주었다. 중생들도 이와 같아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여 영원한 아인 불성이 있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탐·진·치에 가려 육도에 떨어지며, 가지가지 업으로 제대로 보고 듣지 못하여 중생의 참 성품을 알지 못하고 불성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비유는 깊은 설산의 숲속에 달고 매우 맛이 좋은 낙미(樂味)의 약이 있었다. 어느 전륜성왕이 이 약을 받으려고 나무통을 만들어 받았다. 그 전륜왕이 죽은 뒤 약이 흘러나와 가는 곳마다 변하여 시고 짜고 맵고 싱거웠으나 박복한 사람들은 공을 들어 땅을 파보아도 구할 수 없었다. 다른 전륜왕이 나와서 숲속에 있는 약의 진정한 맛을 얻을 수 있었다. 여래의 비밀법장의 맛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은 무명이 두터워 제대로 이를 알지 못하고, 숲속에 본래 한 맛이었던 약이 흘러 여러 맛으로 변하듯 불성이 번뇌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맛을 내니 지옥 축생 아귀 인간 등 이십오유의 중생이 생겨나지만 끊어지고 깨뜨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기운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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