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思議 解脫力 부사의 해탈력
此卽成吾善知識 차즉성오선지식
四事供養敢辭勞 사사공양감사로
蔓兩黃金亦銷得 만량황금역소득

부사의 해탈의 힘 이것이 곧 그대로
스스로 선지식을 이루어 주는구나.
네 가지 공양하는 수고로움 마다하랴.
만량의 황금어치 시은도 녹이리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해탈의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이야 말로 나를 선지식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선지식에게 네 가지 공양을 아낌없이 꾸준히 바치는 수고로움을 감내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만량의 황금이라도 쓰고 말 것이다.

不(덧말:부)思(덧말:사)議(덧말:의) - ‘굉장하다’라고 찬탄하는 말.
解(덧말:해)脫(덧말:탈)力(덧말:력) - 『유마경』에서는 ‘부사의해탈법문(不思議解脫法門)이라고 하였다.
此(덧말:차)卽(덧말:즉)成(덧말:성)吾(덧말:오) - 이것[부사의해달력]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선지식일 수 있게 한 것이다.
四(덧말:사)事(덧말:사)供(덧말:공)養(덧말:양) - 음식, 의복, 와구, 의약(飮食, 倚伏, 臥具, 醫藥)의 네 가지
敢(덧말:감)辭(덧말:사)勞(덧말:로) - 부사의해탈법을 가르쳐 주는 선지식에게 대해서는 어떤 공양이라도 아낄 것이 없다.
蔓(덧말:만)兩(덧말:량)黃(덧말:황)金(덧말:금) - 이렇게 된다면 매일 만량을 받아쓴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다 녹일 수 없을 것이라는 뜻.

[해제]
영가 스님은 여기서 상식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반야의 부가사의한 해탈력의 힘을 찬탄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해탈력 앞에는 무시겁 이래로 쌓인 어떤 온갖 죄업장이라도 따뜻한 햇볕이 마치 두터운 어름이라도 눈이나 서리를 녹이듯 모든 죄업장을 소멸하여 본래 청정무구한 자성을 들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회계에 “백겁동안 쌓는 죄라도 한 생각 바로 돌리면 몰록 한꺼번에 녹아 없어지는 것이 마치 마른 풀이 아무리 높이 쌓여 있어도 불 한번 붙이면 순식간에 다 타서 없어지듯(百劫積拾罪 一念頓湯盡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이라 하였듯이 우리에게는 본래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본성을 갖추어 가지고 있으며, 부사의 해탈력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해탈의 힘으로 일체중생을 해탈케 하려는 선지식에게는 항상 아낌없이 열심히 음식, 의복, 와구, 의약 등의 네 가지 공양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와 같은 공양을 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한 방울 물이라도 그 시은을 녹여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이나 진정 모두를 해탈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분에게는 어떤 공양을 얼마나 공양하였다 하더라도 지나치다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粉骨碎身未足酬 분골쇄신미족수
一句了然超百億 일구요연초백억
法中王 最高勝 법중왕 최고승
河沙如來同共證 하사여래동공증

온 뼈를 가루내고 이 몸을 부수어도
아직도 받은 은혜 제대로 갚지 못해
한마디 깨달음에 백억을 뛰어넘어
최고로 수승한 법 다함께 수용하네

해탈의 한 마디는 백억의 말보다도 뛰어난 것이니, 이러한 가르침 받은 은혜는 뼈를 가루내고 이 몸을 부수어 바친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해탈법이야 말로 가장 수승하여 참으로 모든 법 가운데 으뜸이며, 이 법은 항하 모래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도 역시 모두 다 이 해탈법을 증득하셨도다.

粉(덧말:분)骨(덧말:골)碎(덧말:쇄)身(덧말:신) - 『반야경』에는 상제보살이 『반야경』 설함을 듣고 감격하여 가르침 주신 분에게 자신의 뼈를 뚜드려 부수어 그 속의 골수를 내어서 공양 올렸다고 하였으며, 『열반경』에는 바른 법을 목마르게 구하다가 마침내 사람의 피를 먹는 야차(夜叉)가 진리의 소식을 전하는 사구게(四句j偈)의 반을 읊음을 듣게 된 설산동자(雪山童子)가 “모든 것이 무상하니, 그것이 다 생하고 멸하고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諸行無常 是生滅法)”하는 게송의 뒷부분을 마저 듣기 위해서 야차가 그대의 피를 먹게 해 준다면 나머지를 일러 주리라 하는 요구에 응하여 게송의 후반인 “생하고 멸함이 다 없어지면, 번뇌가 다한 열반적정의 경지야 말로 진실한 법락이다(生滅滅己 寂滅爲樂)” 하는 뒷글 일러주는 것을 듣고 주변의 여기저기에 글을 써서 남긴 뒤에 나무에 올라 스스로 몸을 야차에게 던진 순간 야차는 불법을 옹호하는 제석천왕으로 변신하여 설산동자의 구법을 도왔다고 하였다. 이같이 해탈법을 깨닫게 해 준 은혜야 말로 온 몸을 바쳐 공양하더라도 그 감사함을 표하기에 부족할 정도라는 뜻이다.
또 선문의 『조당집』 제 19권 ‘임제장’에는 임제 스님이 황벽 스님의 지시로 대우 스님에게 가서 비로소 확실하게 깨달음을 얻게 된 뒤에 황벽 스님에게 돌아와서 그러한 사정을 말씀드릴 때에 “한 방이 맞은 그 바람에 문득 단번에 부처의 경지에 들게 되었으니, 그렇게 입은 은혜는 비록 백겁동안 온 뼈를 가루 내고, 이 몸을 부수어 공양하며, 또 그 분을 업고 수미산을 돌기를 한 없이 행한다 하더라도 이 깊고 높은 은혜를 갚기에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一(덧말:일)句(덧말:구)了(덧말:요)然(덧말:연) - 이 한마디 글귀란 앞에 그대로 여래이니, 이렇게 보는 이의 이름이 관음이라 한 생각 깨달으면, 업장이 본래 없고 미하여 못 깨치면 묵은 빚 갚게 되네(不見一法?如來 方得名?觀自在 了?業障本來空 未了應須還夙債) 한 곳을 가리킨다.
法(덧말:법)中(덧말:중)王(덧말:왕) - 『종경록』 제19권에 “가장 높고 수승한 법 가운데 법은 항하사 같은 제불과 깨달음이 같다(法中王 最高勝 河沙如來同共證)”라고 인용되어 있는데, 선문(禪門)의 조계육조의 법이 그와 같다고 하는 뜻이다.
河(덧말:항)沙(덧말:사)諸(덧말:제)佛(덧말:불) - 인도 갠지스 강 즉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여래 부처님들도 다 함께 그 경의 법이 정법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니, 여러 경전들의 최후의 부분만 촉루품(囑累品) 또는 권지품(勸持品)에 의례히 나오는 말이다

[해제]

일구에 요연[一句了然]하다는 것은 본분의 세계를 단 한 마디의 법거량 즉 선문답에서 단번에 깨달아 그 본질을 남음 없이 파악하였다는 것이니, 참선 수행의 길잡이인 화두에 나타나니 예컨대 ‘조주 무자(趙州無字)’ ‘정전 백수자(庭前栢樹子)’ 또는 ‘시심마(是甚?)’ 등이 유명한 대표적인 일구이다. 참선 수행자가 각고의 정진 끝에 높은 정신적인 경지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이미 깨달은 선지식과의 법거래에서 이 일구에 바로 계합되는 그 자리에서 본분의 세계가 직관되면서 이제까지의 지녔던 모둔 의문이 한꺼번에 녹아내리게 된다.
이것을 영가 스님은 백억의 세계를 뛰어넘는다 하였으니, 이것은 백겁동안이란 무한정의 기간을 수행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 같은 깨달음이 한 번에 열려서 진실한 세계가 철저하게 분명해지는 말하자면 철통을 밑바닥까지 뚫어내는 깨달음의 경지가 열리게 되는 열쇄가 일구에 있으니, 마치 천년만년 동안 어두움에 잠겨있던 그 어두음을 밝히는데 또 다시 천년만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고야 말리라는 불퇴진의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성냥불 한번 힘차게 그어대어 불이 팍 밝혀졌을 때 그 순간 이미 비록 천년만년을 묵어온 암흑이라도 온데간데없이 자취도 남기지 않고 밝은 세상이 환하게 그대로 분명히 들어나는 것과 같은 하겠다.
법 가운데 왕[法中王]은 바로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왕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이며 많은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니, 법의 세계에서는 온갖 구애에서 벗어나 참으로 자유자재한 경계에 도달한 분이므로 법왕이라고도 하며 삼계의 대도사라고도 하고, 부처님에게는 반드시 그 법을 칭송하는 열 가지 이름 즉 여래십호(如來, 應供, 正遍智, 明行足, 善逝, 世間解, 無上士, 調御丈夫, 天人師, 佛世尊)가 붙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 거룩한 깨달음의 경지는 한 부처님만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수없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도 같은 진실한 내용을 모두 다 증득하고 있는 것이다.

我今解此如意珠 아금해차여의주
信受之者皆相應 신수지자개상응
了了見無一物 요요견 무일물
亦無人兮亦無佛 역무인혜역무불

나 이제 여의주를 알아서 얻었으니
이것을 믿는 사람 누구나 상응하리
분명히 밝게 보면 하나도 본래 없네
사람도 본래 없고 부처도 역시 없다

내가 이제야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여의주를 비로소 꺼내어 얻었으니, 이것을 믿고 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 혜택을 입을 것이다. 분명히 깨닫고 보니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도 없고 부처 또한 없도다.

我(덧말:아)今(덧말:금)解(덧말:해)此(덧말:차)如(덧말:여)意(덧말:의)珠(덧말:주) - 이제 여의주를 알아 얻었다는 것은 영가 스님이 『증도가』를 내놓게 된 것을 가리킨다.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여의주를 알았다는 것은 누구나 본래 지니고 있는 불성의 실체를 확실하게 알았다는 것이다. 보통으로는 사람들이 여의주 지니고 있음을 모르고 그저 힘들다 괴롭다 죽고 싶다 하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자기 자신이 여의주 그 자체인 것이어서 배고프면 먹고 고단하면 자고 살다가는 죽는단ㄴ 자유가 있음을 알 때 무집착의 대자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인환 스님/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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