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인연(因緣)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일상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인연이라 부른다. 하지만 불교에서 인연은 단순한 관계설정이 아니다. 불교에서 인연은 일편적인 원인과 결과에 의한 법이 아니다. 불교는 인연을 말하지만 이는 연기법으로 이해돼야 한다.

모든 존재를 각각의 개별존재로 보는 존재론의 관념과 인과법은 인간의 망상이자, 허상이라는 것이 연기법의 가르침이다. 연기론은 연기법을 세상의 이론으로 제시하는 것이며, 연기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곧 ‘인식의 혁명’이자. 부처가 되는 길이다.

선용국의 《연기론 인식의 혁명》은 내용은 불교적이지만, 목적은 불교를 위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인간과 세상의 존재방식에 대한 담론을 열고자 했다. 고색창연한 종교적 언어가 아닌 동시대적이고 일반적 언어로 담론을 열어가고자 했다.

핵심은 ‘연기법의 현대적 해석’이다. 연기법은 불교의 법이지만 불교라는 틀에 메어있는 법은 아니다. 우리가 믿고 있던 방식의 오류를 근본적으로 헤집는 법이 연기법이다. 선용국은 삶의 고통은 물론 세상의 모든 부조리, 어리석음이 인식의 오류, 즉 연기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선용국은 “연기론의 담론 형성을 위해 불교 밖의 언어와 형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선용국은 그 방편으로 ‘상대객관’이라는 주제를 함께 쓴다. 상대객관은 “인식의 현상에서 발생하는 인식자와 대상의 존재값이 상호의존적인 값이라는 걸 의미한다.”고 선용국은 설명했다. 선용국은 “인식의 대상에서 발견하는 존재값은 인식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인지의 문제는 철학사에서 중심 주제가 될 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상대객관의 문제는 특정종교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주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선용국은 연기법과 상대객관의 전개를 위해 인식론적 논증과 과학의 양자론을 도입했다. 과학과의 비교가 종교적 교리를 세상의 이치로 일반화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선용국은 보았다.
선용국은 이 책을 쓴 이유를 “존재와 세계의 실상을 밝혀 공존의 상생과 조화를 가르친 붓다의 법은 이제는 특정종교를 벗어나 세계로 일반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고, “그런 기반 위에서 올바르게 존재함을 위한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의 틀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총론, 생각 만들기, 인연과 연기, 연기와 과학, 연기와 종교, 연기의 패러다임 등 여섯 단원으로 지어졌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도표를 다양히 활용했다. 하지만 선용국이 강조한 동시대적이고 일반적인 언어로 담론을 열어가자는 소망은 불교와 철학을 이미 공부한 전문층에 한정되고, 불교나 철학을 모르는 이가 보기엔 여전히 일반적 언어를 찾기 어렵다.

“유아의 존재는 결정론적 세계를 이루고, 이는 기계론적 우주관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아의 존재(불확정성의 존재)는 비결정론적 세계를 이루고 이는 유기체적 우주관으로 이어진다.”
이런 해설을 이해할 일반 독자가 얼마나 될까? 어떻게 연기론이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가 될까?

선용국/하늘북/12,000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