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주시가 불교지명의 승암산을 가톨릭 지명인 치명자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도로표지판도 이미 ‘치명자산’으로 바꿔 달았다. 치명자산(致命者山)이란 조선시대 신유박해로 순교한 가톨릭 신자들이 묻힌 산이라는 뜻이다. 이에 반해 승암산(僧岩山)은 한자가 말해주듯 불교와 관련이 깊다. 벼랑의 모양이 마치 고깔을 쓴 스님들이 염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승암산으로 이름 붙여졌다. 승암산 중턱엔 신라고찰 동고사와 남고사가 있고 또 876년 창건된 승암사가 있다.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최근 이해할 수 없는 행정으로 불교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불교 고유 지명의 승암산을 치명자산으로 개명하고 종교간 예산집행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편향으로 일관한 것이다. 즉 동고사와 남고사에 대해 유지보수비 정도의 생색만 낸 반면 가톨릭에 대해선 평화의 전당 건립비 380억원과 기독교 근대선교기념관 125억원을 책정했다. 이러한 사실은 본지 인터넷판(9월28일) ‘전북 WPF에 불교 전면 불참선언’기사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북 순례대회 극과 극 입장차 보인 국내불교계’(10월9일)란 제목으로 후속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교계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함에 비해 교계의 움직임은 둔감함 그 자체였다. 우리는 이 사실과 관련해 지역 교계를 탓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히려 총무원장 선거에 모든 전투력을 집중한 교계 지도자들의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느낄 뿐이다. 템플스테이 예산을 삭감했을 때 보여줬던 공격성과 전투력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전북도와 전주시 종교편향행정은 마치 ‘내 이권이 아니면 말고’라는 불교계의 한심한 작태를 증명해 보이는 한 실험장면같이도 여겨진다. 된통 당하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지고 있는 지도부의 처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얼마나 더 당해봐야 정신 차릴지 실망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바다.

-불교저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