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4월 23일 백양사 인근 모 관광호텔 스위트룸. 수산당 지종대종사 49재 하루 전날 서울의 유명사찰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등이 한 자리에 모여 포커도박을 벌였다. 이 장면은 모 스님이 몰래 설치해 놓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곤 며칠 되지 않아 누군가에 의해 유포됐다. 이것은 종단 지도부의 존립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악재였다.

총무원 부실장들은 5월 10일 도박사건에 대한 공동책임을 지고 ‘일괄사표’를 제출했다. 종정 진제 대종사도 하루 앞선 9일 동화사 동별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자 “시줏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했다. 당시 자승 총무원장은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봉암사를 중심으로 한 전국선원수좌회가 백양사 도박 건이 중앙일간지에서도 비중있게 보도하자 총무원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때 자승 스님은 수좌회가 요구한 8개 사항을 전폭 수용함으로써 도박파장을 비껴갈 수 있었다. 8개 요구사항이란 첫째 자승 총무원장은 현 종단사태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여야 하나, 종단의 혼란이 가중됨을 방지하기 위하여 쇄신위를 설치하여 종단을 개혁하고 정상화 시킨 후 퇴임하기 바란다를 비롯해 △첫째항에 대한 방법과 일정 공개 △은처승 퇴출 △재정투명화의 제도적 장치 △선거법 개정 계파정치 구태 일소 △비승가적 방법의 폭로비방 금지 △도박연루자 엄벌 △종단개혁 위한 강력한 후속조치 등이다.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난 지금 도박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현재진행형에 있다. 자승 총무원장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언약은 9월 16일 재임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식언(食言)이 되었다. 장주스님이 7월 8일 포항시청에서 폭로한 종단 고위직 승려 11인과 관련자 5인 등 16인 억대도박 명단도 종단 깊숙한 곳까지 상처를 주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장주스님의 폭로는 음해성 모략이라는 역공에 폭발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종단 기득권 세력이 똘똘 뭉쳐 장주스님을 한낱 ‘무모한 돌발행동자’로 몰아가는 등 도박의 의미를 축소했다.

실제로 승려의 억대해외원정도박건은 SBS의 궁금한 이야기 ‘Y’와 〈신동아〉9월호에서 보도했지만 철옹성같은 종단 기득권 세력에게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이러한 미미한 파장은 자승스님의 재임출마를 가능케 했다. 나아가 백양사 도박 건으로 지난 해 해체선언했던 모든 계파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간판을 다시 앞세워 재등장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한 마디로 도박 따윈 청정승가를 생명으로 하는 조계종에선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반증이다. 그냥 반증이 아니라 역설적 반증이다. 청정승가가 아니므로 도박이 뭐 문제가 되느냐 하는 반증인 것이다. 왜? 조계종단은 현재 오도사문(汚道沙門)이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도사문이란 4종(四種)사문의 하나로서 출가 수계의 몸이지만 계율을 지키지 않고 수행을 게을리 할 뿐 아니라 승가의 도를 더럽히는 사문을 일컫는다. 부처님께서는 대장장이 춘다로부터 “세상에 몇 종의 사문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4종류의 사문이 있다고 답한다. 첫째가 승도사문(勝道沙門)이다. 도가 뛰어나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아라한을 말한다. 승도사문은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밝히는 힘을 갖는다. 둘째가 설도사문(說道沙門)이다. 불교의 학설과 이론을 바르게 아는 출가자를 지칭한다. 셋째는 활도사문(活道沙門)이다. 이들은 도에 따라 생활하므로 정해진 계율을 잘 지키고, 학업과 수행에 정진하지만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한 범부 사문이다. 승가는 활도사문의 힘을 바탕으로 활력을 갖는다. 넷째가 바로 오도사문으로서 은처 도박 폭력 사이비 승려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오도사문은 권력에 탐착하고 명리에 집착한다. 비록 출가사문이라 하지만 무리를 이루어 범계(犯戒)를 당연시하고 오히려 활도사문들을 비웃는다.

포커도박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뼈저린 통찰과 반성이 없다는 것은 조계종단을 낙담케 하는 주인(主因)이다. 한 때 유명사찰의 주지로 행세하던 아무개 스님이 지금은 정선 카지노에서 막일이나 하는 급사로 일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도박으로 인생을 망치는 일은 비단 밀양 표충사 J스님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지금도 각 지역별로 혹은 본사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도사문들로 이루어진 도박판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왠만한 스님들은 다 알고 있다. 단지 쉬쉬하고 있을 뿐 이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감정 또한 없다. 그만큼 범계불감증이 교계 전반에 퍼져 있다는 증거다. 때문에 도박이든 폭력이든 은처든 사이비든 이를 경계하거나 벌하려는 분위기 또는 정서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이번 장주스님의 도박 폭로는 결코 작거나 예사로이 넘겨야 할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선거국면에 덮여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도박이 청정승가세력을 능욕하는 일임에도 눈 먼 거북이 희롱하듯 어물쩍 또 넘어가고 있다. 도박을 계기로 오도사문을 제거할 획기적인 제도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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