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 근현대불교사학자가 26일 개최된 만해학회 세미나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만해의 사상을 불교와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 철학과 정신분석학 등 현대사상으로 분석하는 세미나가 26일 오전 10시 서울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지금까지 만해 한용운에 대한 접근은 스님으로, 독립운동가로, 문학가로 연구하고 분석 평가한 것들이 주류였다.

만해학회는 이번 제13회 세미나 ‘만해사상의 현대적 지평’에서 만해의 정신이 현대사회에서 어떤 지위와 의미를 갖는지 집중 탐구했다. 이날 배포한 《만해학보》 2013년 통권 13호에 발표된 논문은 모두 7편. 이 가운데 ‘하이데거와 만해’를 연구한 이승훈 명예교수(한양대)는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세미나에 불참해 모두 6명의 학자가 만해의 사상을 분석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논문의 요점이다. 

만해사상과 현대사조 -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
본고에서 초점으로 삼은 것은 만해사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해사상의 본질, 정립에 영향을 준 현대(당대)사조(사상)와의 관련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해사상이란 무엇인가. 사상이란 단순한 견해 생각 인식과 달리 문학, 역사, 불교 등의 방면에 걸쳐 있는 만해의 행적과 사유를 총괄, 관철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 《조선불교유신론》과 〈조선독립의 서〉를 만해사상 추출의 기본대상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만해는 ‘자유’를 ‘만유(萬有)의 생명’이라고 선언했다. 때문에 자유와 평화가 없는 사람들을 죽은 시체와 같고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고 봤다. 만해는 “우주의 이상적인 최고 행복의 실재는 자유와 평화”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했다.

만해의 사상은 자유, 평화, 평등, 구세로 볼 수 있다. 부연하면 대중불교의 건설이 만해가 그리는 불교개혁의 최종단계가 아닌가 한다. 만해는 불교는 일체중생의 불교이기에 승려만의 불교가 아니고 구세적이라고 봤다.

자유, 평화, 평등, 구세의 만해사상과 현대사상, 현대사조와의 관련성을 시론적으로 전개함에서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는 만해사상에 영향을 준 현대사조, 서양철학, 서양철학가, 동양철학 등이다, 둘째는 만해사상에 영향을 주었던 지역별, 국가별의 내용이다.

만해는 유교적인 가치관이 유년, 청년 시절에는 투철했다. 만해 그가 세계문명, 불교개혁, 독립운동에 작용한 것의 한 측면에는 이런 유교적인 잠재성, 충효, 국가와 민족 등의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의식은 단순히 불교적인 가치관만으로 설명될 것은 아니다. 만해사상을 거론함에 있어서 만해의 유교적 경험, 가치관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만해는 전통과 근대의 가교에 서 있었지만, 자신의 의식 및 지향은 근대 쪽으로 상당히 기울었다. 만해가 외국에 체류한 것은 일본에 6개월, 중국(만주)에 1개월, 시베리아에 1주일 정도에 불과했다. 만해가 신문명, 현대사조, 국제 정세 등에 연결했던 가교는 언론(신문, 잡지)과 책이라고 보인다.

《조선불교유신론》과 〈조선독립의 서〉를 통해 그의 개념을 훑어보면 만해는 완전한 근대인, 현대인이었음이 분명하다. 만해는 일본 중국 태국의 불교에도 깊은 조회가 있었다. 일본에서 4개월간의 유학을 통해 《불교대전》 《채근담 강의》를 펴냈다. 승려결혼 주장과 《조선불교유신론》의 집필 및 발간에서 일본에서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만해는 백담사, 건봉사에서 양계초의 《음빙실문집》 《영환지략》을 통해 문명을 처음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볼 때 중국에 대한 문제는 중요하다. 만해는 양계초 외에도 태허를 비롯한 중국 근대불교 사상가와의 교섭은 어떻게 볼 것인가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해의 인도와의 관련성은 불세출의 시집인 《님의 침묵》이 인도의 시성 타고르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만해의 인도불교에 대한 관심은 《불교》 87호(1931.9)에 기고한 〈인도 불교운동의 편신〉이 주목된다.

《불교》 89호(1931.11)에 〈타이의 불교〉라는 만해의 기고문을 보면 태국불교의 연혁, 승단생활, 사원 및 승려, 관리, 국민교육 등에 대한 정리가 나온다. 만해는 세계 종교계, 불교 동향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만해사상의 본질은 앞서 말했던 자유, 평화, 평등, 구세다. 만해사상은 그 어원, 개념 자체가 근대성, 현대성을 띄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현대사조와의 관련성은 동아시아불교를 비롯한 세계 각국 불교와의 연관성에서 추론했다. 마지막으로 만해의 전통성, 유교성의 문제다.

탈식민주의자로서 만해 한용운의 사상 읽기
-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 교수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 교수
만해 한용운은 서양의 이분법과 실체론을 지향했지만 그 바탕은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지 않고 연기와 중도로 보는 불교 사상이었다.

탈식민주의는 하위주체나 선지식인들이 자신의 생활과 삶, 의식과 무의식에 침투된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규율체계, 문화양식, 상징, 권력의 억압 등의 ‘식민성’을 제국과 다른 패러다임과 방식으로 극복하는 실천운동이자 식민담론과 지배담론을 ‘전복적 읽기’를 하여 내부로부터 파열시키는 담론투쟁이다.

억압은 개인이나 집단이 불안이나 구속, 정신증상에서 벗어나 의식화하거나 해방하려는 욕망이나 의지 및 행위를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저지하는 것을 뜻한다.

만해는 일본이란 제국이 단순히 땅만 차지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그는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제국이 빼앗아간 것이 “땅과 집, 추수, 저녁거리” 등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격, 생명, 인권, 정조”라고 구체적인 낱말을 제시하며 노래한다.

만해는 이런 일본의 제국주의의 정책과 억압에 따라 조선인이 헌병이 쓴 모자의 그림자만 보아도 독사나 호랑이를 본 것처럼 피하고 주눅이 든 것이 합방 후 조선 민족의 생활이라며 억압이 내면화한 양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만해가 내면화한 제국의 억압에 대해 저항한 논리는 ‘자존’과 ‘자유’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평화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from freedom)이자, 무명을 탈피해 진정한 자아와 궁극적 진리와 깨달음에 이르는 적극적 자유(to freedom)이다. 만해는 일본 제국이 억압하고 있는 실상을 직시하고 제국의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만이 아니라 무명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고 독립자존을 되찾는 적극적 자유행위를 추구하되, 이것이 타인의 자유와 자존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할 것을 주장했다.

만해는 제국의 폭력에 맞서 승리하는 길은 정의와 도의다. 만해는 제국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거나 이에 폭력으로 저항하는 방편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제국의 폭력성을 내면화한 피식민지 민족의 폭력성 또한 거부한다. 그는 불교의 평등론을 평화론으로 발전시키며, 더 나아가 이를 만인과 만국에 대한 박애의 구세주의로 승화한다.

만해가 정의와 도의를 내세우며 평화적 방식으로 이의 대안을 모색한 것은, 저항론, 준비론, 외교론 등 당시 일제의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주목을 요한다. 폭력에 대한 근대적 각성과 대응을 서구적 방식으로 표출하지 않고 전통의 불교 사상에서 이를 모색한 것 또한 탈식민의 관점에서 볼 때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만해는 조선의 자존독립과 신문명 수용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했다. 당시 일본제국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한국을 철저히 수탈하면서 식민지적 근대화를 추진했다.

만해는 단재, 백암 등과 더불어 전통의 가치를 고수하는 가운데 근대적 개혁을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했다. 만해는 승려로서 불교적 세계관과 가치를 고수하는 가운데 양계초 등에 의해 영향을 받아 근대적 개혁을 수용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불교는 이분법이 아니라 중도, 실체론이 아니라 연기론, 진리의 확정성이 아니라 불확정성, 합리성이 아니라 이성 너머의 초월성,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평등성, 자유주의가 아니라 보살행과 해탈의 대자적 자유를 추구한다. 불교사상가이자 승려였던 만해는 이런 불교의 패러다임과 방편으로 서양의 근대적 논리와 가치를 수용했다. 바로 이 요인으로 인해 만해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국에 저항하고 대다수 계몽적 지식인이 식민지 근대화에 매몰된 것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런 지향은 당시로서는 그 자체로 서양의 근대성과 다른 ‘차이의 근대성’이며, 21세기 오늘의 맥락에서도 근대성의 성찰로서 탈현대성과 상통하는 점이 많아 탈현대적 지평을 펼친다.

라깡의 정신분석으로 본 만해
- 김종주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 라깡정신분석치료연구소장

김종주 박사, 라깡정신분석치료연구소장.
만해에 대한 정신분석적인 관심은 《님의 침묵》이란 시집에서 시작된다. ‘사상가이자 행동가’인 강렬한 의지의 스님께서 어떻게 실연당한 여성처럼 시를 쓰셨는지 정신분석적으로 해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고은의 《한용운평전》을 비롯한 책들을 참조해 만해의 생애를 재구성함으로써 정신분석적으로 ‘분석’을 시도했다. 그것이 1982년 《심상》 11월호에 실린 ‘인간의 순환성’이란 글이다.

전통적인 정신분석에서 문학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의식의 내용’에 해당하는 ‘텍스트의 잠재 내용’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인간의 순환성’을 쓸 때만 해도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자끄 라깡의 존재를 몰랐다. 라깡을 알게 되고 1993년 <떠도는 능기:이어도의 정신분석>을 통해 라깡의 정신분석을 소개했다.

《라깡 정신분석 사전》은 “정신분석은 무의식의 발견에 기초하여” 프로이트에 의해 시작된 이론이며 임상이라고 정의한다. 라깡은 무의식이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본능이 아니라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봤다.

만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이 무의식의 그런 모습과 같다.

라깡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정신분석을 한다.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는 세 가닥의 실로 만들어진 매듭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중에 라깡은 보로메오 매듭(이탈리아 귀족 가문인 보로메오가 통일된 세력의 상징으로 그들의 문장에 맞물린 세 고리를 사용했다)을 사용해 세 영역의 관계를 그려 보인다. 세 고리 중 어느 하나라도 깨지면 그 구조가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배열 형태를 보인다.

‘만해 한용운 선생 특집호’로 구성된 《나라사랑》 1971년 제2집에서 염무웅은 ‘만해의 시에 대하여-님이 침묵하는 시대’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만해의 님은 욕망의 원인 대상인 ‘타대상’이다. 보로메오 매듭의 세 고리가 겹치는 한 가운데에 쐐기처럼 박혀 있는 ‘타대상’은 욕망의 대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 쪽에 더 가깝다. 염무웅은 “시인을 님의 발견으로 이끈 계기는 님과의 ‘이별’”이라고 말하면서 ‘이별은 미의 창조’라는 작품을 읽어낸다. 시적 역설과 불교적 변증법이 만해시에 무한한 역동감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다.

염무웅은 침묵이 소리와 다르지 않고 님의 부재가 님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라는 것이 만해의 “문학이자 동시에 그의 종교였다”고 본다. 만해의 문학은 종교에 겹치고 그 두 가지는 서로의 전경과 배경을 이루게 된다.

염무웅의 논리는 ‘오셔요’의 끝 연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만해의 진정한 탁월성은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이란 “세 가지가 각기 서로를 전제로 하는 놀라운 종합을 이룩한 데에 있으며, 그것은 실로 각기 다른 분야의 활동에 대해 드물게 높은 차원의 심오성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안병직은 한용운의 독립사상의 핵심을 “자유주의에 입각한 불교사회주의”라고 규정한다. 만해는 칸트로부터 자유의 개념을 확고히 정립하는 것 같다.

만해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야만 상태의 유물로 보면서 그것은 ‘자유의 정신’에 의해 지배되는 상태가 아니라 ‘필연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다. 만해가 말하는 필연성이란 ‘욕망’의 지배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만해 독립사상의 핵심은 자유주의이다.

조지훈은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이라는 만해의 세 가지 성격을 정삼각형의 구성에 비유하고 있다. “불교의 온축과 문학작품으로써 빛과 향기를 더했고 선교쌍수의 종장으로서 선생의 증득은 민족운동과 서정시로서 표현됐으며 선생의 문학을 일관하는 정신이 또한 민족과 부처를 일체화한 ‘님’에의 가없는 사모였기 때문”이라고 설명돼 있다.

한용운의 불교적인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연구 성과로 보이는 《조선불교유신론》은 “불교개혁정신을 대표하는 저술일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불서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저술”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결론에 만해가 밝혔듯 ‘충동’에 의한 저술이 되기도 한다.

들뢰즈와 만해의 《님의 침묵》
- 전형철 시인, 서울여대 초빙강의교수

전형철 시인, 서울여대 초빙강의교수.
만해는 근대인인가, 탈근대인가? 이 언명은 그간 만해 한용운의 사상 전반에 걸쳐 주요한 담론으로 작용한 핵심이다 만해는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 등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에 그에 대한 평가와 해석 또한 그와 같은 심급으로 이루어졌다. 한용운이라는 존재는 들뢰즈의 표현대로라면 ‘고원’이라 할 수 있고, 처음과 끝이 아닌 이쪽과 저쪽의 이분법으로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존재다. 각각의 표징을 분리해서도, 구도의 삶을 살았던 종교인으로 시인과 활동가의 삶을 포섭하거나 시인이나 운동가로 나머지 둘을 비끄러매도 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으며 그것이라고 명명하는 그 중간에 생성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한용운의 삶은 기본적으로 ‘유목’이었고, ‘기관 없는 몸체’의 도주선이다. 만해는 승려의 존재에서 탈영토화해 운동가로 재영토화됐으며 47세의 만년에 이루러 다시 시인으로 재영토화됐다.

질 들뢰즈 또한 그 사상의 체계를 단순하게 추출하기에는 그 대지가 드넓으며 영토 또한 여전히 탈-재영토화의 과정을 통해 생성의 방향으로 열려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근대’에 대한 인식이었다. 한용운과 들뢰즈에게 ‘근대’란 시대를 파악하는 매우 주요한 열쇠말이다.

들뢰즈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수용해 “되돌아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고 되돌아오는 것은 유사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의 복귀이고, 다시 말해서 유사성을 벗어나는 것의 복귀이다. 영원회귀 안의 반복은 같은 것이지만, 오로지 차이를 통해 언명되고 차이나는 것을 통해 언명되는 한에서만 자기 자신과 같은 사태이다”라고 말한다.

한용운에게 ‘님의 귀환’이란 결국 원래 나를 떠나기 전의 ‘님’의 돌아옴이면서 동시에 그 이전의 ‘님’과는 차이를 지닌 존재의 귀환이라는 ‘사태’ 또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님의 침묵》의 기다림은 단순히 수동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내적 생명으로서의 탈주선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들뢰즈식으로는 사이의 삶을 ‘횡단’하는 것이며, 어떠한 척도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진정한 ‘타자-되기’이다.

사랑이라는 추상기계는 그것이 하나의 지배적 신념으로 고착화될 때 권력이 된다. 그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들뢰즈의 철학이고 한용운의 사상이며 그 실현이 그들의 글씨기이다.

서구 초현실주의 시와 만해의 시
- 백원기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백원기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듬해인 1919년부터 20년 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문학과 예쑬의 전위적인 운동을 말한다. 1924년 브르통, 엘뤼아르, 아라공 등에 의해 《초현실주의 혁명》이라는 기관지가 발간되면서 한결 구체화됐다.

자동기술법으로 창작된 초현실주의 시와 선사들의 선문답이나 선시의 관계성, 그리고 중생과 더불어 함께한 ‘평상심시도’를 표현하고 있는 만해의 선시를 비교해본다.

초현실주의가 통찰과 인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정과 파괴의 연속을 행하는 우연과 무형식, 반형식이라는 형식으로 자유만을 위한 자유를 지향한다면 선은 목표는 분별이나 구별 이전의 분별로 구속되어 있지 않은 참‘나’를 찾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공동 제작한 작품들과 서로 질문해서 만든 ‘문답놀이’ 작품들을 보면 선사들의 문답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선사들의 문답과 초현실주의자들의 ‘문답놀이’에서 일상적 상식과 논리를 넘어선 초논리성의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선은 초현실주의처럼 기존의 형식, 가치, 체계에 대한 부정이 되기도 하지만 참 ‘나’, 즉 절대 순수하고 무구한 자유로운 세계를 찾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양자의 입장이 현실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다분히 공통점을 지닌다 할 것이다.

만해는 이성의 통제가 없는 초현실성을 인정하여 이를 화엄의 사상과 선적 직관의 심미안을 통해 시를 창작함으로써 동양적인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시적 세계를 개척했다 할 수 있다.

만해와 간디
- 김종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김종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만해는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고 간디는 인도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만해가 간디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은 대표적인 민족독립 운동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가 두 사람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주된 이유는 두 사람이 모두 정치적인 투쟁만 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종교사상가였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또 두 사람의 시대적 환경을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식민지의 경험과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만해와 간디는 서로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각기 자신들의 조국 독립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만해는 불교승려로서 한국불교의 독립성 쟁취를 위한 투쟁에서 시작해 민족운동가가 됐고, 간디는 인도의 힌두교를 비롯한 종교전통에 기초한 종교적 삶을 살면서 종교적 진리의 실천으로 정치 투쟁을 했다.

인간을 욕망을 가진 존재라고 본 만해는 욕망의 추구가 지나쳐 무절제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만 아니면 문제가 안 된다고 봤다. 반면 간디는 철저한 금욕주의자다.

-강지연 기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