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연초록 물결이 온 산을 번져’ 오르고, ‘화락화락 부치는 대로 정직하게 바름을 선사하는 부채’에 기대어 여름을 지내며, 가을에는 ‘짓붉은, 붉은, 노오란, 샛노란 단풍잎들이 마당을 뒤덮고’. 겨울채비를 끝낸 ‘저 산 위로 눈이 쌓이고 바람이 지나가고 별과 달이 찬 빛을 뿌릴 것을 기다린다.’

저자 흥선스님은 이렇게 봄여름가을 겨울을 보내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계절에 맞는 옛시를 골라 정갈하게 번역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계절 변화의 섬세한 결을 따라 신중하게 고른 옜시 85편에는 시성이라 불렸던 중국 최고의 시인 두보도 중국의 여류 시인 설도도 있지만 김시습, 휴정, 삼의당 김씨, 박지원, 김정희 등 우리 옛 문인의 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흥선스님은 시구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는데 몰두하지는 않는다. 세심하고 고른 언어로 옛시를 낭송해주고 그 시의 여운에서 스님의 맑은 감성을 찾아낼 수 있다.

잠시 일을 내려놓고 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자. 세상의 움직임에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가다듬고 사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달그림자 이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연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윤선도, 주돈이, 안민영의 연꽃을 거쳐 요사부손의 하이쿠, 경주 흥륜사터 석조에 새겨진 글귀로까지 이어지고, 우리의 손발을 잠시 묶어놓는 게 장마의 미덕이니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가자며 김사인의 시 ‘장마’를 읽어주는 식으로 흥선스님은 옛시를 풀어간다.

흥선스님/눌와/16,800원

- 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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