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감선사 진영.

“진감선사와 범패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가운데 학계의 정설이 된 ‘진감선사가 한국불교음악 범패의 시조’라는 학설은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고산문화재단(이사장 영담스님)이 21일 오후 2시 동국대 덕암세미나실에서 ‘진감선사 혜소의 생애와 사상-진감선사 혜소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최헌 교수(부산대 국악과)는 이 같이 주장했다.

‘진감 혜소와 한국의 범패-연구사 검토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한 최헌 교수는 진감선사의 일생에서부터 이혜구를 비롯해 한만영, 송방송, 권오성, 박범훈 등 진감선사와 신라 범패에 대해 연구했던 학자들의 견해를 조목조목 되짚으며 진감선사의 범패에 대해 학자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진감선사 범패의 원류는 지금까지 원인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소개된 신라 적산원(赤山院)의 향풍(鄕風), 고풍(古風), 당풍(唐風) 가운데 당풍의 범패일 것으로 추정한 이혜구의 의견을 많은 학자들이 따랐다. 하지만 송방송은 고풍에 대해 이혜구나 한만영이 서역에서 들어온 것이라 추정했던 견해와 달리 모두 당풍의 것이지만 당대 이전의 고풍과 당대의 신풍으로서의 당풍으로 구분해 해석을 달리했다.

박범훈은 현대의 짓소리를 진감선사가 가르친 당풍 범패로 추정했지만 백일형은 짓소리가 장인굴곡(長引屈曲)하기 때문에 진감선사의 범패는 염불형태의 음악일 것이라고 유추했다. 김순미는 진감선사가 가르침 범패는 오늘날 우리나라 범패의 근원이라고 단정했다.

이렇게 학자들의 연구를 조목조목 되짚은 최헌 교수는 진감선사의 범패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진감선사를 한국 범패의 시조로 여기고 있지만 자료가 더 발굴될 경우 시조가 아닐 수도 있을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지적했다.

“진감선사의 범패에 대해 폄하도 안 되지만 확대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밝힌 최헌 교수는 세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나는 범패의 정의 및 기능에 대한 문제이다. 화청 등을 범패에 포함할 것인지, 아니면 홋소리 짓소리만을 범패로 볼 것인지의 범패의 정의 문제와 예불 재 등에서의 음악 구분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당풍 범패의 도입 시기 문제이다. 진감선사가 수입한 범패가 당나라 범패로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인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라시대의 범패와 현대의 범패와의 연계관계 추측에 대한 비판이다 현대 짓소리에 범어와 한문으로 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각각 고풍과 당풍을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 진감선사대공탑비.

 이어 ‘진감선사 혜소와 한국의 선불교-연구자 검토를 중심으로’를 발표한 조범환 교수(서강대 사학과)는 △혜소와 쌍계사에 대한 네 편의 논문을 중심으로 연구사 검토 △한국선불교에서의 진감 혜소의 위치 고찰 △혜소와 쌍계사에 대해 어떤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세 주제로 주장을 펼쳤다.

특히 혜소와 쌍계사에 대한 연구를 더 깊이 해야 하는 이유를 여섯 가지로 들었다. 첫째가 혜소의 생애와 중국 유학 그리고 귀국 전까지의 행적에 대한 검토다. 당 유학 자체가 낮은 신분으로 여겼던 혜소의 신분이 보다 높았을 것이라고 조범환 교수는 추정한다. 둘째는 혜소와 흥덕왕에서부터 시작된 신라왕실과의 관계다. 26년간의 유학 후 귀국한 혜소를 신라왕실은 적극적으로 보호했던 것. 셋째는 범패가 아닌 혜소의 선사상에 대한 검토이다. 창주 신감의 법을 받았으므로 창주 신감의 선사상을 검토하는 한편 성주산문의 무염선사의 사상과 유사성이 발견되는 만큼 같이 연구해야한다고 조범환 교수는 말한다. 넷째는 쌍계사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기반에 대한 검토이다. 이와 함께 차와 관련된 검토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는 쌍계사와 지역 세력과의 관계, 여섯째는 혜소 사후 쌍계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범환 교수는 “진감선사에 대해서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한국선종 불교와 관련된 여러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고산문화재단에서 마련해주기를 희망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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