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어린 여중생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생겼다. 너와 내가 없었고,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이때 국민의 분노의 표시로 등장한 것이 촛불이다. 이래 없던 평화적이고 질서정연한 시위였다.
아니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즐기며 국민들이 잊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 이었다. 정확하고 거침없는 자신들의 표현을 국민들은 스스로 문화적으로 승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촛불은 탄핵정국에 다시 등장했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을 하더니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주며 국민의 뜻을 정부에 또는 서로에게 알리는 도구가 되어 가는 듯하다.
이 촛불이 요즘에 더욱 뜨거워지고 언제 꺼질지도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방송, 신문, 인터넷 사람들의 주위에 항상 얘기 거리로 가장 큰 관심사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촛불이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의견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고시를 강행하려다 반발이 거세지자 그제야 말을 바꾸고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정부 관료들의 행태들은 더욱더 국민들의 믿음에서 멀어져가고 급기야는 대통령마저 국민 앞에 사과하는 사건을 만들고 만다.
하지만 이 사과마저도 진정한 사과이다 아니다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앞으로 이 촛불의 움직임이 모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국민이면 어린 학생들도 아는 이 사태는 처음엔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문제로 재협상이니, 추가협상이니 하는 문제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운하반대 정권퇴진 이라는 말로 까지 번져가며 문제가 커지자 대통령실의 수석비서진이 총사퇴하고 교체되고, 내각 각 부처 장관들이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사의를 어디까지 받아들이는 것인가 또한 중요한 관심사이다. 이미 이 사태는 협상, 재협상 이러한 문제들로 해결이 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과연 누가 이들을 여기까지 내 밀었는가?
누가 대통령을 여기까지 내 밀었는가? 누가 비서진을 여기까지 내 밀었는가? 누가 내각들을 여기까지 내 밀었는가? 누가 국민들을 촛불을 여기까지 내 밀었는가? 대통령은 소통이 부족했다고 말 한다. 국민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진정성을 대통령은 내각들은 느끼지 못해서 일까?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은 주가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착한일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그러하리라 그 때문에 즐거움이 그를 따르리. 마치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소통이란 진정성이란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소신을 정확히 전달하면 그것이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나를 욕했고 그는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이겼고 그는 내 것을 앗아갔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저 미움으로부터 벗어난다. 역시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촛불이 반대하는 것이라 욕하는 것이라 때리는 것이라 생각 한다면 소통은 벌써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의 근본인 마음에서 진정함을 찾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상대방의 의견을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비로소 소통이 되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퇴와 사과가 아닌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을 말하기 전에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서로의 말을 귀담아 듣고 이익과 타산을 버리고 생각 한다면 지금 거리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들은 아이와 함께 가정으로 돌아 갈수 있고 넥타이를 매고 거리를 나온 가장들은 편안한 가정으로 촛불을 들고 서있는 우리 어린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 본연의 학업을 받음으로서 항상 기대를 저 버리는 정치인들이 국회로 돌아가 드디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을 한번 해볼 수 있게 각료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경찰들이 민생에만 힘쓸 수 있도록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용/전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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