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품에서는 붓다가 순타의 공양을 받으면서 참된 법공양을 설하는 내용이었다. 이 품에서는 중생들이 붓다의 열반에 대해 슬퍼서 탄식함을 들으시고, 중생을 위하여 열반에 드는 여래 열반의 참된 뜻을 밝힌 다음, 열반에 대한 중생들의 집착과 의심을 제거하도록 하였다.

이 품이 애탄품이라 한 것은 중생들은 붓다의 열반에 대해 쓰라린 마음을 품고 애석하다하여 ‘애(哀)’라 하고, 그 슬픔을 말로 탄식하여 ‘탄(歎)’이라 한다.

이 품은 전체적으로 대중들이 열반에 들지 말기를 붓다께 삼청(三請)하고, 붓다가 이에 대답하여 중생에게 삼수(三酬)하며, 끝으로 붓다가 중생들의 편벽된 집착과 의심을 파하는 삼편(三偏)을 설한다고 한다.
먼저, 삼청이란 붓다가 열반에 들려고 하자 대중들이 세 가지로 걸쳐 열반에 들지 말기를 청한다. 첫째 애석한 마음으로 청하고, 둘째 기원드리는 마음으로 청하며, 셋째 원망하는 마음으로 청한다.

첫째는 중생들을 버리고 열반에 든다는 사실에 애석함을 드러내어 세상에 더 주하도록 청하는 내용이다. 땅이 크게 진동할 때는 붓다가 보살로서 도솔천에서 염부제로 내려올 때(탄생), 출가할 때, 아뇩다라삼보리를 이룰 때(정각을 성취할 때), 법의 수레를 굴릴때, 열반을 드실 때인데, 이때는 땅이 크게 두루 진동할 뿐 아니라 중생들의 마음도 크게 동요한다. 이와같이 붓다가 열반에 드실 때 크게 진동하므로 크게 애석하여 열반에 들지말라고 청한다.

그 애석함은 신선을 멀리 여의는 것, 어미잃은 송아지, 병난 사람이 의사가 없는 것, 법의 의사가 없는 중생, 임금없는 나라 백성, 큰 진동, 지혜의 해가 꺼지고 불법의 물이 메마르며, 장자네 아들이 부모를 잃음과 같다고 하였다.

둘째는 붓다가 열반에 들 때 일을 분석하여 주(住)하기를 청한다. 곧 여래가 열반에 들면 인 천과 축생에 이르기까지 구할 자가 없고 모두 괴로움에 빠져있으므로, 동녘의 해가 떠올라 어둠을 없애듯 붓다의 신통광명으로 괴로움을 없애주시기를 청한다.

셋째는 중생의 처지를 들어 붓다가 열반에 드는 것을 원망하는 내용이다. 버림받은 임금의 아들이나 법관에 붙들려 옥에 갖힌 자, 의사가 약방문을 친아들에게만 가르쳐주고 다른 제자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것, 험난한 길에 고초를 당하는 것과 같이 붓다가 열반에 드는 것과 같이 원망스러우므로 중생에게 감로의 바른 길을 지도하며 오래 세상에 머무르고 열반에 들지 말기를 청한다.

붓다는 이 세 가지 청에 대해 세 가지로 답한다. 첫째, 열반에 대해 애석한 마음에서 청한 것에 대해서는 모든 법이 그러하여 생주이멸하므로, 마음을 활짝 풀고 근심하거나 괴로워말며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바른 생각에 마음을 매어두면 저절로 즐거움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둘째, 붓다의 열반으로 중생을 구할 수 없다는 여러 가지 일을 분석하여 청한 데에 대해서는 제법에 대해 의혹이 있으면 모두 물으라고 하였다. 곧 제법이 공한가 무상한가 고인가 등등을 물으면 모두 답하고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다. 셋째, 원망하여 청한 일에 대해서는 불보 법보 승보 만나기가 어려움을 들어 이를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하고, 여래의 열반은 해탈법도 아니고, 여래법신도 아니며, 마하반야도 아님이 싼쓰크릿트어 이(伊: ∴)자와 같아서 마혜수라(摩醯首羅) 얼굴의 세 눈과 같이 세 점이 있어야 하듯이 여래가 열반에 드는 것도 해탈 법신 반야가 다르지 않으니, 여래도 세 가지 법에 있으면서 중생을 위하여 열반에 든다고 하는 것이다. 산쓰크릿트 이자를 원이삼점(圓伊三點) 이자삼점(伊字三點)이라고도 말하며, 싼스크릿트 3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들 3점은 세로로 있어도 가로로 있어도 따로 있어도 이(伊)자를 이룰 수 없듯이 여래의 열반은 3덕을 원융하고 평등하게 갖추어 어느 한쪽이 더 중하고 덜 중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원이삼점에 대해서는 세 점이 가로나 세로가 일치하지 않고 삼각의 관계에서 불일불이(不一不異) 또는 비전비후(非前非後)를 나타낸다고하여 삼법(三法)이 삼즉일(三卽一), 일즉삼(一卽三)임을 비유하는 글자라고도 한다. 따라서 각기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三寶)를 상징한다고 하여 이를 삼보륜(三寶輪)이라고 한다. 또는 이 세 점은 각기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삼법인(三法印)을 상징한다고도 설명한다. 또한 이 세 점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삼신불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보통 사찰에서는 양지붕 사이에 큰 원을 그리고 점 세 개를 넣어 이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 품에서는 이(伊)자를 이루듯이 여래의 열반의 내용인 법신 반야 해탈의 삼덕이 상즉(相卽)하고 불리(不離)의 관계에 있음을 비유한다. 관정은 󰡔열반경소󰡕에서 별교교리가 격별되어 있어 융즉하지 못함을 구이(舊伊)와 같고, 원교이치가 융즉(融卽)함을 신이(新伊)와 같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끝으로, 중생의 집착과 의심을 파하는 내용이다. 중생들은 무명과 번뇌로 가려워져 있어서 네 가지 전도심을 내니, 나에 대해서 무아(無我)라고 하고, 항상함을 무상(無常)하다고 하며, 청정한 것을 부정(不淨)하다고 하고, 안락한 것을 괴롭다[苦]고 한다. 나란 부처란 뜻이고, 항상함은 법신이며, 안락함은 열반이란 뜻이고, 청정하다는 것은 법이란 뜻이다. 이와 같이 바로 본다면 치우친 이치와 수행과 가르침을 파하고 여래열반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현명한 의사가 병에 따라 우유약을 쓰는 것처럼 붓다도 중생의 의혹과 집착을 없애주기 위해 열반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기운/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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