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아니면 결코 전해지지 않는다 ― 《황석공소서》

1. 네가 지미 추(jimmy choo)의 신발을 싣는 순간 너는 영혼을 판 거야

곱게 차려 입은 신데렐라는 왕자님의 파트너가 되어 황홀한 시간을 보냅니다. 드디어 12시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황급히 계단을 내려오던 신데렐라는 구두 한 짝을 떨어뜨리지요. 고의인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만…… 단지 왜 하필 신발인가요? 꼬랑내 나는 신발이 뭐가 좋아서…… 향기가 은은히 베어있는 스카프라든가 곱게 수놓은 손수건 등이 훨씬 더 운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신데렐라이야기에서는 유리구두라는 기막힌 아이템을 만들어냈지만…… 그래도 하필이면 신발?

곰곰이 살펴보면 신발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넘쳐납니다. 콩쥐팥쥐에는 꽃신이, 신데렐라의 원형이 실려 있는 중국의 설화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가죽신이 나옵니다. 죽은 달마의 관에는 낡은 짚신 한 짝이 있고요.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포스터. 이 영화에서 구두는 새로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티켓과도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네가 지미 추(jimmy choo)의 신발을 싣는 순간 너는 영혼을 판 거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포스터. 이 영화에서 구두는 새로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티켓과도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대사이지요. ‘런웨이’라는 패션잡지사에 출근한 첫날, 주인공 앤디를 머리끝에서부터 훌터보는 편집장 미란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신발에 가 꽂히고……그 경멸 섞인 강렬한 눈빛에 앤디는 거부했던 구두를 신습니다. 바로 지미추의 하이힐이지요. 또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의 남친 빅은 캐리에게 구두를 신겨주며 청혼합니다. 도대체 신발 이야기가 어찌 이리 많이 나오는 걸까요?

그리스 신화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이올코스의 왕이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어린 왕자가 바로 이아손―영어명은 제이슨(Jason)―입니다. 이아손이 어릴 때 삼촌인 펠리아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펠리아스는 조카인 이아손이 성인이 되면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오히려 왕위계승권을 갖고 있는 이아손은 더 위험한 지경에 처한 겁니다. 다섯 살배기 이아손은 친척의 도움으로 왕궁을 빠져나와 펠리온 산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인 켄타우로스족의 현인(賢人) 케이론에게서 무술을 익힙니다.

다 자란 청년 이아손은 드디어 산을 내려와 이올코스로 향합니다. 잃어버린 왕위를 되찾기 위해서지요. 이때쯤 나라 안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어린 아이들은 소문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다녔습니다.

“모노산달로스가 내려와
이올코스의 왕이 된다네.”

펠리온 산에서 내려와 이올코스에 들어서려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아손이 강가에 닿았을 때, 마침 한 할머니가 강변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려는 것 같아 도와주려고 다가가자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나를 업어서 건네주려느냐? 아니면 내가 너의 긴 머리카락을 잡고 건너랴?”

할머니의 퉁명스런 말투에 은근히 화가 치밀었지만 이아손은 꾹 참고 공손하게 대답합니다.

“마땅히 업어서 건네 드려야지요.”

할머니를 업고 강물에 들어서자, 얕은 줄 알았던 강물은 꽤나 깊고, 가깝게만 느껴졌던 저 쪽 강가는 가도 가도 멀어지기만 하는 거였습니다. 더구나 등에 업힌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져 갔습니다. 강 한가운데서 자칫 미끄러진 이아손은 겨우 중심을 잡았지만 신발 한 짝이 그 와중에 벗겨져 떠내려가려고 합니다. 신발을 다시 신으려고 한쪽 발을 들려는 찰나, 할머니가 호통을 칩니다.

“이놈아, 사람이 중하지 가죽신이 중하냐? 까짓 가죽신 때문에 이 할미를 물에다 처박으려고 그래?”

할머니로 말미암아 본의 아니게 외짝 신발을 신은 사나이―모노산달로스―가 되어, 이아손은 이올코스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바로 헤라여신이었지요. 그리고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납니다. 바로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Argonautica)》중에서 모노산달로스, 즉 외짝 신을 신은 사나이 이야기입니다.[이윤기, 《그리스로마신화》인용‧참조]

이 신화에서 신발은 왕이 될 사람을 가리키는 징표입니다. 왕의 자격을 상징하는 기호인 것이지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나 콩쥐의 꽃신도 모두 그 자리에 합당한 자격을 보증하는 징표입니다. 이 자격증이 있어야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의 또 다른 영웅 테세우스가 아버지인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를 찾아가는 것도 아버지가 감추어둔 신발과 칼을 찾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요.

지금은 시내버스를 탈 때 대개 교통카드를 이용하지만, 한 때 토큰(token)이란 게 사용되었습니다. 토큰은 징표란 뜻을 갖습니다. 버스도 신발과 같은 하나의 이동수단이라면 토큰은 곧 이동수단을 소유하거나 승선할 수 있는 권리를 증명하는 징표입니다. 그러므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디가 하이힐을 싣는 행위는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버스에 승선할 수 있는 티켓을 끊은 것과 같은 것이지요. 전혀 다른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여행. 산골아이에서 왕의 자리로, 부엌데기에서 왕자님의 옆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자격의 징표가 바로 신발입니다.

2. 그 사람이 아니면 결코 전해지지 않는다

자리나 신분의 이동, 혹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신발이 매우 적절한 것이라면, 일체의 이동수단은 결국은 신발의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로드무비류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오토바이나 자동차는 물론 배나 비행기 등등의 모든 운송수단은 신발의 확장된 의미체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타이타닉호는 그 배에 승선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실어다 주는 도구이고, 영화 《인디에어》에서 비행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삶이 영위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을 제공해 줍니다.

이러한 일체의 탈 것을 ‘승(乘)’이라고 합니다. ‘대승(大乘)’은 ‘큰 탈 것’, ‘소승(小乘)’은 ‘작은 탈 것’이지요. 옛날에는 이게 수레이고 배였지만, 현대는 버스이고 비행기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인 황제(黃帝)는 최초로 수레와 배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로써 중국인들에게 이동의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고, 그 혜택에 힘입어 일찍부터 찬란한 고대 문명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황제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은 각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신발의 이미지가 어떤 이유로 동서고금을 통하여 이처럼 광범위하게 이야기되는 것일까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인간은 누구나 욕망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를, 외로운 사람은 애인을 욕망하지요. 강변 모래밭 옆에 작은 오두막 짓고 엄마랑 누나랑 살고 싶다는 시인은 분명히 서울 콘크리트 벽 틈에서 홀로 긴 밤을 지새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욕망은 현실에서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그 어떤 것, 혹은 어떤 세계를 희구하는 것이지요. 나를 이 불만족스런 현실에서 소망하는 이상적인 세계로 데려다 줄 수 있는 것, 그 이동수단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담는 기호이기에 신발로 대표되는 일체의 운송수단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욕망이 지향하는 세계로 데려다 줄 배나 비행기는 누구라도 탈 수 있는 걸까요? 당연히 그 토큰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 김홍도, 〈이교수서(坭橋受書〉. 장량이 황석공으로부터 이교에서 비서를 전해받는다는 고사를 그린 작품.
진시황제의 암살에 실패한 장량(張良)은 강소성 하비현(江蘇省 下邳縣)에 숨어 절치부심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장량이 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장량에게 다리 밑에 떨어진 신발을 주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장량은 신발을 주워다가 공손하게 노인에게 바쳤는데……노인은 또 신발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고 다시 주워 달라고 합니다. 그러기를 세 번. 은근히 치솟는 부아를 억누르며 장량은 더욱 공손한 자세로 신발을 갖다 바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 번의 시험을 거치고 장량은 노인으로부터 비서(秘書)를 전수 받게 됩니다. 노인은 바로 황석공(黃石公)이고, 비전(秘傳)의 병서(兵書)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삼략》, 혹은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라고 합니다. 이 비전의 책을 얻은 장량은 결국 한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합니다.

이야기의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함의는 ‘비인비전(非人非傳)’, 즉 ‘그 사람이 아니면 전수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멀리 이아손과 테세우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신데렐라와 콩쥐, 그리고 현대의 앤디에 이르기까지 신발은 새로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지만, 그 탑승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봐야 합니다. 누구에게 그 토큰이 주어지냐고요? 욕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거냐고요? 대승(大乘)의 이념이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니 누구라도 그 수레에 탈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대선이 끝났습니다. 대선이야말로 모든 구성원들의 욕망이 부딪히는 곳입니다. 민주주의는 각자가 지향하는 세계를 위해 한 표를 던지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만약 결과에 의해 누구는 환호하고 누구는 좌절한다면 어찌될까요? 이번 대선은 거의 51:49에 근접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수치인데……그렇다면 51%의 국민이 환호하는 거야 그렇다쳐도, 49%의 국민은 좌절해야 하나요? 결코 아니겠습니다만, 애석하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결과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30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좌절의 정도는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이들의 낭패감이 5060세대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5060세대와 2030세대는 아버지와 자식 세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간의 갈등과 분열이라면, 이는 비극이지요. ‘젊은 것들이 뭘 안다고…’하는 말과, ‘도대체 우리들에게 해준 게 뭐 있다고…’라는 말이 부딪히기 시작하면 파국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바랍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일수록 ‘젊은이라면 좀 반항적이고 파격적이어야지. 그래야 나라든 사회든 발전하는 거야. 젊은이들이 진보적인 건 당연해!’라고 말할 수 있기를… 진보적인 젊은 세대들은, ‘어찌되었든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도 아버지들의 고생덕분이지. 인정! 나이 들어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자연스런 거잖아.’라고 생각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절대로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특별한 신발을 신은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 자기편만 태우고 반대편을 외면한다면, 이는 소승조차 되지 못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누구라도 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욕망하고 꿈꿀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라도 있기 때문입니다. 꿈과 희망조차 사라진 좌절감이 사람들을 삶을 내던지는 절벽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니 꿈 꿀 수 있는 권리마저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지도자가 아닙니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밤에, 우리 모두가 다 함께 탈 수 있는 큰 배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문갑/철학박사,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