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종교학자가 흥미로운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동·서양의 역사를 통틀어 종교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의 수를 계산해 보니, 그 유골 무더기가 지구를 몇 바퀴씩이나 돌고 또 돌 정도라는 것입니다. 종교하면 곧 떠올리게 되는 사랑·평화 등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조사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종교가 인간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어떤 종교라도 그 교리에서는 인간에게 불안한 삶을 떨치고 질서와 희망 그리고 성숙(成熟)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종교는 존재 해방과 성숙의 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특정 종교가 속박과 경직, 기만의 덫으로 세간을 왜곡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인간 구속의 벽이 되면, 이성의 합리성과 개방성은 독선과 독단의 ‘옹고집’으로 변질되기 십상입니다. 종교적 관념에 갇히는 순간, 생명끼리 보듬으며 소통시키던 사랑의 감수성은 일순간 배타적 독기(毒氣)로 굳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분명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존재 해방과 성숙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걸어가면, 삶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수준을 높여주며 깊은 평안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성(理性)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열고 또 차원 높여주며[지혜], 사랑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틔워[자비]야 합니다.

현 정부의 편향된 종교관에 세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모이고 있습니다. 종교를 속박과 기만의 덫으로 왜곡하는 행적이 더 이상 은폐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혹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종교적 독선이 그럴듯한 언어에 기대어 기승을 부리지는 않는지, 정부 스스로 종교적 괴위(乖違;평행이 깨짐)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법진 스님/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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