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의 ‘생애와 사상’처럼 수행자 개인이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스스로 알고 인정하며, 역사인식을 잃지 않으면서 수행 정신을 확립할 때, 한국 불교계가 당면한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문제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박재현 교수는 21일 오전 10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세미나’에서 ‘현대 한국사회의 당면 문제와 경허의 사상’을 발제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 박재현 교수.
박교수는 “현재 불교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추문과 타락상 등 지나친 세속화의 문제는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의 문제가 불교계에서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정치, 사회와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오해 내지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종교는 정치, 사회, 문화 현상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최근 발생한 불교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박교수는 현대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염치의 상실(윤리적 형이상학의 실종) △욕망 지상주의의 점령(행복의 신화) △권력지향의 팽배로 보았다.

우선 “‘염치’는 한 집단의 도덕적 공감대라는 외부검열을 통해 당사자의 자기검열을 압박, 마침내 스스로를 단속하게 하는 것으로 ‘사회윤리’라고 볼 수 있다”며 “광복 이후 일제 잔재 청산 실패와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염치가 상실하고 새로운 사회윤리를 확립하지 못하면서 규범허무주의를 맞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염치가 상실되면서 그 빈자리를 ‘행복’, ‘공리(公利)’를 가장한 ‘욕망 지상주의’가 들어서게 됐는데 한국 사회가 욕망 지상주의에 점령되면서 윤리적 회의주의가 발생, 윤리적 기준이나 도덕적 가치를 모색하려는 사회적 동력조차 상실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 사회는 윤리가 실종되고 욕망의 충족이 절대선(善)으로 여겨지면서 사회구성원들이 ‘권력’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근대 이후 권력은 법치(法治)의 형태를 띄면서 사회구성원들에게 화해, 소통 등의 ‘자연인으로서 인격’과 기구, 위원회, 재판 등의 ‘사회적 인격’으로 분리하도록 요구했다”며 “현대사회는 이중인격을 충분히 내면화하는 사람이 잘 적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조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교수는 “종교는 역사적으로 사회를 정화하는데 힘썼다”며 이를 경허선사의 사상과 행동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박교수는 한국사회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경허선사의 사상과 행동을 △북행(北行), 자리비워주기 △방함록과 역사의식 △수행 정신의 확립을 통한 윤리의식 확보로 보고 있다.

▲ '현대문제와 경허의 사상' 발제자 박재현 교수와 토론자 변희욱 강사(서울대 철학과).

경허선사의 북행을 ‘자리비워주기’라고 말하는 박교수는 “경허선사의 북행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식견과 안목을 지닌 수행자가 불교계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 자리를 비워준 것이다”며 “경허선사의 자리비원주기는 부질없는 권력지향에 대한 비판의식과 권력의 내면화에 대한 경계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경허선사는 방함록을 통해 역사의 핵심적 기능을 ‘감계(鑑戒)’ 즉 사람들이 자신을 역사라는 거울에 비춰 스스로 경계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개인의 개별적 수행이나 깨달음의 경지보다는 사회적 역할과 의미에 비중을 뒀다고 볼 수 있다”며 “경허선사는 방함록을 쓰면서 선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의식과 그에 기반한 윤리의식의 함양하도록 유도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경허선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에서 외부의 권력에 맞서고 수행자 개인의 마음속에서 욕망 추구하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행정신 확립을 강조했다”며 “수행자는 강한 역사의식과 욕망, 권력에 경도되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과 윤리의식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박교수는 “경허선사의 역사의식이나 행동을 현재 우리가 본 받아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윤리의식의 실종과 사회구성원의 과도한 권력지향성에서 비롯됐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사회윤리 이념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날 세미나에는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교육원장 현응스님, 포교원장 지원스님, 종회의장 향적스님, 수덕사 주지 지운스님 등이 참석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는 신규탁 교수(연세대학교)의 사회로 △이상하 교수(한국고전번역원)의 ‘경허의 문학’ △효탄스님(전 전국비구니회 기획실장)의 ‘경허의 법맥과 그 계승’ △김방룡 교수(충남대학교)의 ‘경허의 간화선과 수행관’ △신규탁 교수의 ‘한국불교의 중흥조, 경허’ 등이 각각 발표됐다.

-손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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